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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국립민주묘지 3곳처럼…“효창공원, 기억·교육 공간으로”

등록 2018-08-22 05:01수정 2018-08-22 07:37

효창공원을 독립공원으로 ⑤ 국립민주묘지를 본보기로

국립묘지, 김대중 정부 거치며 ‘민주’로 확대
문재인 정부, 국립묘지에 ‘독립’ 가치 더해
단순한 국립묘지 아닌 추모·교육 공간으로
광주 북구 운정동에 있는 국립5·18민주묘지. 사진 가운데 높이 솟은 것이 40m 높이의 5·18민중항쟁추모탑이다. 김경욱 기자
광주 북구 운정동에 있는 국립5·18민주묘지. 사진 가운데 높이 솟은 것이 40m 높이의 5·18민중항쟁추모탑이다. 김경욱 기자
백범 김구 등 독립운동가 8명의 묘역이 조성된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옛 효창원)을 국가가 관리하는 ‘독립운동기념공원’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국립 5·18민주묘지와 4·19민주묘지, 3·15민주묘지 등을 적극적으로 참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들 묘지가 국가 차원의 공간으로 승격되면서 추모, 기억, 교육 등 복합적인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16일 효창공원을 독립운동기념공원으로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오랜 시간 국립묘지의 가치는 ‘호국’이었다. 그 원형도 국군묘지다. 국립묘지는 한국전쟁과 분단, 베트남전쟁 등에서 희생된 장병들을 위한 곳이었다. 6·25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54년, 이승만 정권은 전사한 장병들을 안장하기 위해 서울 동작동에 국군묘지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동작동 국군묘지는 1965년 박정희 정권에서 국립묘지로 승격됐고, 1996년 국립현충원으로 이름이 바뀐 뒤, 2006년 국립서울현충원이 됐다. 1970년대 이곳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1976년 박정희 정권은 충남 대덕군(현재 대전시)에 국립묘지를 추가로 설치할 것을 결정했다. 국립대전현충원이 만들어진 이유다. 2002년까지만 해도 국립묘지는 바로 이들 2곳의 현충원을 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통령과 독립운동가 등의 묘역이 추가됐지만, 이곳 국립묘지에 잠든 이들 대부분은 군인들이다.

국립묘지에 변화가 생긴 것은 김대중 정부 들어서다. 이때부터 부당한 국가폭력에 저항하거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희생된 이들의 묘역도 국립묘지가 됐다. 광주의 5·18묘지와 서울의 4·19묘지, 경남 창원(옛 마산)의 3·15묘지가 국립묘지로 새롭게 지정됐다. 민주화 운동 희생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예우도 뒤늦게 이뤄지기 시작했다. 2006년 1월, 노무현 정부는 이들 세 묘역의 이름을 ‘국립묘지’에서 ‘국립민주묘지’로 바꿨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국립묘지의 가치를 ‘호국’에서 ‘민주’로 확대했다면, 문재인 정부는 ‘독립’이라는 또 하나의 가치를 더하고 있다. 먼저 조국 독립을 위해 생을 바친 독립운동가 52명이 묻힌 대구 신암선열공원이 지난해 9월 국립묘지로 지정됐다. 국립신암선열공원은 1955년 당시 대구 남구 시립공동묘지 일대에 흩어져 있던 독립운동가 무덤을 경상북도와 대구 등 지방정부가 지금의 위치로 이장하면서 만든 독립운동가 전용 묘역이다.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지난 5월1일 국립묘지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광주 북구 운정동에 있는 국립5·18민주묘지. 김경욱 기자
광주 북구 운정동에 있는 국립5·18민주묘지. 김경욱 기자
국립민주묘지 3곳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곳은 국립5·18민주묘지다. 16만7770㎡(5만750평) 부지에 5·18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과 행방불명자 등 775명의 묘소가 조성돼 있다. 묘역의 관문인 ‘민주의 문’으로 들어서면 ‘민주광장’(7574㎡)이 나오고, 왼쪽에는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의 ‘5·18 추모관’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는 5·18 당시 계엄군의 무자비함과 희생자들의 가슴 시린 사연들을 확인할 수 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의 주검을 감싼 비닐과 피 묻은 태극기, 도청을 지키다 계엄군의 진압 작전으로 목숨을 잃은 시민들의 유품, 계엄군이 사용한 소총과 대검, 진압봉 등이 이곳에 전시돼 있다.

추모관을 나와 민주광장을 지나면 너른 ‘참배광장’(1만2563㎡)이 열린다. 그 끝에는 분향, 헌화할 수 있는 참배단과 40m 높이의 5·18민중항쟁추모탑이 자리하고 있다. 추모탑 너머가 희생자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참배광장 동쪽으로는 묘역에 안장된 희생자들의 영정 사진을 안치한 고인돌 모양의 ‘유영봉안소’가 마련돼 있고, 광장 서쪽으로는 어린이와 학생들이 체험학습을 할 수 있는 학습관이 조성돼 있다.

묘역은 불의한 국가권력에 희생된 시민들의 비통하고 애달픈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묘역에 놓인 사진 가운데는 새하얀 면사포를 쓴 웨딩드레스 차림의 신부도 있고, 고등학교 교복 차림의 앳된 얼굴들도 있다. 80년 5월 광주에서 남편을 마중 나갔다가, 다친 시민들을 위해 헌혈을 하고 돌아오던 길에,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지키다가, 계엄군의 총격에 목숨을 잃은 이들이다.

국립5·18민주묘지 유영봉안소에 안치된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영정 사진. 김경욱 기자
국립5·18민주묘지 유영봉안소에 안치된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영정 사진. 김경욱 기자
경남 창원의 국립3·15민주묘지는 1960년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맞서다 희생된 이들을 안장한 곳이다. 3·15의거는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폭정과 조직적인 부정선거에 항거해 ‘독재 타도’를 외치며 옛 마산 중고생과 시민들이 중심이 돼 일어난 시위로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당시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과 발포로 김주열 열사 등 12명이 숨지고 200여명이 다치거나 체포, 구금, 고문을 당했다. 12만8005㎡(3만8721평) 규모로 조성된 묘역에는 현재 3·15의거 희생자 40명이 안치돼 있다.

이곳은 옛 마산시(현 창원시)가 1968년 구암동 애기봉에 희생자들을 위한 묘역을 조성하고, 이듬해 마산 등에 흩어져 있던 희생자 묘 13기를 이장하면서 만들어졌다. 1998년부터 진행된 성역화를 거쳐 2002년 국립묘지로 승격돼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민주묘역 3곳 가운데 규모는 두번째로 크다.

경남 창원의 국립3·15민주묘지의 참배광장. 3·15 희생자들이 조각된 ‘정의의 벽’ 너머로 희생자들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유영봉안소가 보인다. 국립3·15민주묘지 제공
경남 창원의 국립3·15민주묘지의 참배광장. 3·15 희생자들이 조각된 ‘정의의 벽’ 너머로 희생자들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유영봉안소가 보인다. 국립3·15민주묘지 제공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국립4·19민주묘지는 4·19혁명 희생자와 공로자 413명이 안장된 곳이다. 묘지 면적은 9만6837㎡(2만9293평)로 3곳의 민주묘역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다. 1960년 4·19혁명은 한 달 앞서 일어난 3·15의거가 도화선이 됐다. 4월19일 전국에서 ‘이승만 하야와 독재 타도’를 외치는 시민들의 시위가 벌어졌고, 정부는 거리로 쏟아져 나온 학생들과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고 계엄령을 선포했다. 경찰의 발포로 시민 186명이 숨졌고, 6천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국민들의 분노가 거세지자 결국 4월26일 이승만 대통령이 퇴진하면서 자유당 정권은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 역사상 첫 시민혁명이었다.

희생자들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한 유영봉안소에서는 교복 차림의 수많은 앳된 얼굴들이 참배객의 눈을 붙든다. 당시 경찰 발포에 희생된 중고등학생들이다. 묘지 동북쪽에 마련된 4·19혁명기념관에는 4·19혁명과 관련한 영상자료와 당시 각 대학과 고등학교에서 발표된 4·19 선언문 등이 전시돼 있다. 4·19민주묘지 관계자는 “이곳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부정부패한 독재 권력에 항거하다 희생된 분들이 잠들어 있다”며 “이곳은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역사의 장”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국립4·19민주묘지. 가운데 높이 솟은 기념탑 뒤가 4·19혁명 희생자들이 묻힌 묘역이다. 김경욱 기자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국립4·19민주묘지. 가운데 높이 솟은 기념탑 뒤가 4·19혁명 희생자들이 묻힌 묘역이다. 김경욱 기자
전문가들은 효창공원을 국립 ‘독립운동기념공원’으로 조성하는 과정에서 이들 3개 민주묘지를 참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시준 단국대 교수(사학)는 “효창원은 백범 김구가 임시정부 요인들과 독립운동가들의 유해를 모셔온 사실상 대한민국 최초의 국립묘지”라며 “민주묘지 등을 참고하여 효창원을 추모와 기억, 교육의 장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시정부에서 비서장을 지낸 차리석 선생의 아들 차영조(74)씨도 “효창원도 묘역만 정비해선 안 된다. 애국선열들에 대한 ‘추모’,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기록’, 임시정부의 정신과 업적을 대대로 가르칠 수 있는 ‘교육’의 장소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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