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국가태풍센터 통제실에서 화상회의를 마친 예보관들이 2014년 태풍 너구리의 진로를 놓고 분석 작업을 벌이는 모습.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3일 오전 10시10분 기상청 누리집에 속보가 떴습니다.
태풍 현황과 전망
제 19호 태풍 솔릭은 23일 9시 현재 북위 33.3도 , 동경 125.6도 위치 , 강한 중형 태풍으로 서귀포 서쪽 약 90㎞ 부근 해상에서 시속 7㎞ 북진 중 .
제19호 태풍 ‘솔릭’의 이동 속도가 예상보다 느려지면서 서울 부근을 통과하는 예상 시점이 24일 새벽에서 아침 시간대로 변경됐습니다. 전날 밤까지 태풍 솔릭은 23일 오전 9시께 목포 남서쪽 약 150㎞ 부근 해상까지 진출한 뒤 다음날 오전 1시께 당진, 오전 3시 수원, 오전 4시 서울 남쪽 20㎞ 지점, 오전 5시 남양주 등을 통과할 것으로 예상됐지요.
그런데 기상청은 23일 오전 10시 ‘태풍 정보’를 새로 발표하면서 솔릭이 애초 예상했던 것보다 동쪽으로 더 일찍 전향해 24일 오전 4시께 전북 군산 앞바다를 거쳐 충남 서천으로 상륙할 것으로 예상을 변경했습니다.
이렇듯 시시각각 바뀌는 태풍 예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궁금증을 해결하려 4년 전 7월8일, 국가태풍센터를 향한 적이 있습니다. 태풍 너구리가 제주와 일본을 향해 북상하고 있던 시기, 바다의 괴물을 만나기 위해 짐을 꾸린 것이죠.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국가태풍센터.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대국민 태풍 120시간, 즉 5일 예보 정보를 제공하는 국가태풍센터는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만든 정보는 국민의 안전과 재산보호를 위하여 사용되지요. 태풍 감시, 예측, 연구 업무를 수행하며 태풍 발생 때부터 소멸 때까지 예측 정보를 제공합니다. 국가태풍센터는 북서태평양 지역에서 발생하는 모든 태풍을 관측하는 전초 기지입니다.
세 번 차를 갈아타고 한라산 중산간 해발 246m 지점에 도착하자 푸른 나무들 사이로 2층짜리 국가태풍센터가 보였습니다.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에 자리한 센터 외부로 지나다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죠. 외부인 출입이 제한된 센터 1층 관리실에서 신원을 확인하고 2층 통제실로 올라갔습니다. 예보관들이 위성 정보 등을 바탕으로 태풍의 강도와 방향을 결정하는, 센터 내에서도 핵심적인 구역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곳에서 하루 두 차례 기상청 본청, 국가기상위성센터 등과 화상회의를 벌여 예보와 특보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우리가 접하는 태풍 예보의 원산지인 셈입니다.
통제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벽면에 놓인 가로 5.5m, 세로 2m 대형 모니터, 대형 모니터 좌우에 자리한 6개의 소형 모니터 화면이 보였습니다. 이 화면은 시시각각 변합니다. 태풍의 눈이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예보 분석 시스템 자료, 구름과 바람의 흐름을 드러내는 수치 모델 예측 자료, 태풍의 강도를 가늠하는 자료 중 하나인 해수면 온도, 빗방울을 탐지하는 레이더 자료들이 화면을 메웠습니다. 예보관들의 눈은 실시간 변하는 대형 화면 속의 위성 정보에 꽂혀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고작 정직원 14명이 전부인 센터는 24시간, 365일 태풍을 감시하는 불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예보관들은 태풍이 지나가기 4~5일 전부터 가장 바쁜 시기를 보냅니다. 태풍주의보 등 기상 단계 발효 전부터 기상청은 사전에 시나리오를 준비해 둡니다. 이후 실시간으로 태풍의 속도와 강도, 방향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업데이트하고요.
태풍이 올 때 국가태풍센터 통제실에선 화상회의가 열립니다. 다른 지역 기상청들도 화상회의에 참여하지만 기상청 본청, 국가기상위성센터, 국가태풍센터가 회의의 중심이 되는 때가 많습니다. 화상회의를 텔레비전 뉴스에 비유한다면 본청은 메인 앵커, 다른 지역은 리포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지요.
바다로 직접 나가 풍랑을 카메라에 담는 것도 센터의 일이다. 최고 풍속 32.8m의 강풍이 몰아친 2014년 7월9일 서귀포시 법환포구에 들어선 취재진의 흰 우비가 강풍에 휘날렸다. 국가태풍센터 제공
당시 20여분 만에 공식 화상회의는 종료됐습니다. 예보에 관한 이견이 있을 때 본청과 센터는 수시로 전화통화로 의견을 조율합니다. 세계적 슈퍼컴퓨터가 분석한 예측 모델 10여개가 태풍의 향후 진로를 보여주지만, 예상 진로는 저마다 다릅니다. 태풍센터는 하루 몇 차례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 일본의 지역특별기상센터(RSMC), 미국 하와이의 합동태풍경보센터(JTWC) 등으로부터 기상 정보를 제공받습니다.
예보관은 이처럼 다양한 자료들을 분석하면서 유의미한 것과 무의미한 것을 구별하고 태풍의 진로를 예측해야 합니다. 결국 예보관의 손끝에서 예보는 결정되지요. 이때 예보관들 사이에 몇 가지 덕목이 상충합니다. 신속성과 신중함입니다. 상황은 시시각각 변합니다. 올해처럼 태풍 솔릭과 시마론이 한반도 영향권 내에 있을 때도 그러합니다. 북상하고 있는 제 20호 태풍 시마론이 일본 중부 지방을 관통해 동해로 진출할 경우 태풍 솔릭을 끌어가는 준 후지와라 효과(두 태풍간 상호작용 현상)이 일어나 솔릭의 이동 경로가 전향할 가능성도 현재 제기되고 있습니다.
4년 전 태풍 너구리가 불 때도 태풍센터 예보관들은 진로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태풍의 경로가 변할 때 일단 예상 시나리오대로 기조를 유지하고 몇 시간 뒤에 나올 유럽중기예보센터 자료 등을 보고 판단할지, 당장 수정해야 할지. 신속성과 신중함이 상충하는 겁니다.
2014년 7월8일 예보관들의 대화는 이러했습니다.
강남영 기상청 국가태풍센터 팀장: 아직 전향에 대한 추이가 뚜렷하지 않아 . 지금 만약에 꺾잖아 . 그럼 혹시라도 만약에 변동 상황에 다시 대처하기가 어려워 . 한 번 더 기조를 유지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 .
예보관: 어차피 남쪽으로 치우치는 것으로 조금씩 반영을 하기로 했잖아요 .
팀장: 꼭 지금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
예보관: 전체적으로 밑으로 깔리고 있어요 .
팀장: 그렇지 . 경향이 그렇다는 것은 다 아는데 . 그리로 가겠지 . 그리 갈 가능성이 높지만 먼저 앞서 나갈 필요가 없지 않을까 .
예보관: 다른 예보는 8시간 전에 선수 치고 있는데 우리도 반영을 한 거예요 . 그런데 조금만 반영을 한 것이거든요 .
팀장: 알았어 . 이렇게 갈 거야 . 그렇지만 한 타임만 더 보냐 , 안 보냐 그 차이인데 … . 일본 탭스 (수치 모델 예측 자료 ), 어떻게 나왔어 ?
태풍 솔릭의 23일 오후 1시30분 현재 위성 영상.
태풍이 한반도로 북상하면 예보관들의 근무 강도도 높아집니다. 태풍으로 비상근무 태세에 돌입한 예보관들은 4교대에서 2교대 근무로 전환합니다. 당시 한 예보관은 아침 7시 화상회의 중에 구토 증세를 보여 통제실을 급히 나가기도 했습니다. 한반도가 직·간접적인 태풍의 영향권 아래 놓이면 비상에 걸린 센터 직원들은 근처 식당조차 나가기 빠듯합니다.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한반도에 찾아온 태풍은 28개. 1년에 평균 2.8회꼴로 한반도는 태풍의 영향권에 놓입니다. 태풍은 지역에 따라 허리케인이나 사이클론 등으로 불리는데 세계적으로는 해마다 80여개가 발생합니다. 한 번 태풍이 휩쓸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세계 각국은 태풍 정보를 나누는 공조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요. 태풍 루사로 2002년 5조1479억원, 이듬해 매미가 찾아와 단 이틀 동안 4조2225억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하면서 정부는 대책 마련을 고심했습니다. 2008년 태풍센터가 세워진 이유도 태풍 예측을 정교화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지요. 기상청은 해발 1950m의 한라산이 버티고 있는 제주도가 한반도로 북상하는 태풍의 길목에 위치해 태풍의 최종 진로 등을 판단할 수 있는 최적지로 보고 2008년 국가태풍센터를 건립했습니다.
가장 강력하고 역동적인 에너지를 품고 있어, 강한 바람과 많은 비를 가져오는 태풍. 2016년 태풍 차바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2006년에는 에위니아로 62명이 사망했습니다. 2003년에는 매미로 131명, 2002년에는 태풍 루사로 246명이 숨졌습니다.
19호 태풍 솔릭과 20호 태풍 시마론으로 인해 하루 종일 격무에 시달렸을 김진철 국가태풍센터장은 23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비상근무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피곤한 목소리의 센터장과 긴 통화를 하기는 어려워 보였습니다. 2014년 14명인이던 제주 국가태풍센터 정직원 인원은 올해 16명으로 소폭 늘었습니다. 당시 격무에 시달리며 구토 증세를 보였던 직원은 오늘 어떤 하루를 보낼지 생각해봅니다. 국민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 예보관들에게 격려의 마음을 보냅니다.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화보] 태풍 ‘솔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