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23일 첫 재판에 출석한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
1심에서 징역 24년과 벌금 180억원을 선고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운명은 달라질까.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김문석)는 24일 오전 10시 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을 선고한다. 지난해 10월부터 ‘재판 보이콧’을 벌여온 박 전 대통령은 2심 재판에 한 번도 출석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 선고를 마치고 같은 날 오전 11시부터 ‘40년 지기’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2심도 선고한다. 1심은 최씨에게 징역 20년·벌금 180억원, 안 전 수석에게 징역 6년·벌금 1억원을 선고했다. 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은 1심과 달리 생중계되지 않는다.
박 전 대통령의 2심 선고를 앞둔 지난 14일 수사 때부터 ‘국정농단’ 사건을 관심 있게 지켜본 한상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남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부회장, 이상훈 경제개혁연대 실행위원이 한 자리에 모였다. 김 부회장은 “삼성이 최씨에게 사준 말 세 마리 구입·보험료 36억5943만원이 뇌물에 포함될 지”를 핵심 쟁점으로 꼽았다. 이상훈 실행위원도 “경영권 승계라는 삼성의 부정한 청탁의 인정 여부”를 주목했다. 삼성 뇌물 혐의는 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줄 수 있는데도 재판부마다 판단이 달랐다. 한상희 실행위원은 국정농단 사건은 ‘권력의 사유화와 정권유착’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며 법원의 단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항소심 쟁점은 무엇인가.
김남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회장 먼저 말 세 마리 구입·보험료 36억5943만원이 뇌물에 포함될 지다. 뇌물로 인정되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횡령액도 높아진다. 판례는 반환 의사가 없고, 배타적인 사용권을 주면 뇌물이라고 보고 있다.
제3자 뇌물 혐의 관련해서는 법리와 경영권 승계 존재가 문제다. 삼성의 개별 청탁 중 일부는 인정할 수 있는데, 1심과 이 부회장 2심은 사실관계를 따지지 않고 전부 인정하지 않으면서 포괄적으로 경영권 승계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 때 민정수석실에서 나서서 특정 기업의 경영권, 지배구조 승계 검토했다. 삼성 경영권 승계나 지배구조 문제는 민정수석실의 업무가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의 주요 관심사라 챙겼다고 볼 수밖에 없다. 청와대나 박 전 대통령이 경영권 승계 인식이 있는데, 그런 사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 재판부가 제3자 뇌물죄는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상훈 경제개혁연대 실행위원 제3자 뇌물혐의 관련해 일반인들이 분노하는 게 왜 롯데는 유죄고 삼성은 무죄냐는 거다. 법원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부정한 청탁은 구체적인 ‘면세점’으로 특정됐지만,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는 구체적이지가 않다고 본 거다. 그런데 이 부회장의 부정한 청탁이 구체적이지 않다면 생기는 또 다른 의문은 박 전 대통령이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영본부장에게 삼성 합병을 왜 지시했냐는 것이다. 1심 판결로는 이 두 가지 의문이 해결되지 않는다.
-박 전 대통령은 경영권 승계와 삼성 합병 등 ‘부정한 청탁’을 받고 이 부회장에게서 미르·케이(K)스포츠 재단 204억원, 한국동계스포츠 영재센터 16억원의 제3자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또 신 회장에게서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재취득에 대한 ‘부정한 청탁’을 받고 케이스포츠 재단에 70억원을 출연하게 한 제3자 뇌물 수수 혐의를 받는다. 1심은 두 ‘부정한 청탁’을 어떻게 다르게 본 것인가.
김 1심은 롯데의 경우 개별·구체적으로 부정한 청탁이 특정된 반면 삼성은 개별적인 부정한 청탁을 인정하지 않았다. ‘경영권 승계’도 특정되지 않았다고 봤다. 청와대 내부 문건이나 당시 국민연금의 삼성 합병 의사 결정 과정을 보면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경영권 승계가 존재하지 않았으니 부정한 청탁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단순 뇌물죄와 달리 제3자 뇌물죄는 부정한 청탁이 있어야 하는데, 부정한 청탁을 어느 정도 특정해야 하느냐에 대한 기준을 법률가들도 갈피를 잡기 어렵다. 그래서 대법원이 부정한 청탁이 어디까지 특정돼야 하는지 한 번 정리해줘야 한다.
또 대통령은 사회 전 분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력자이고, 그래서 ‘포괄적 뇌물죄’를 인정하는데 이를 제3자 뇌물죄까지 적용시킬 수 있는지도 문제다. 직접 받은 뇌물이 아닌데 그 책임을 어디까지 지울 수 있느냐는 거다. 권력자들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직접 돈을 받는 것과 자신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법인이나 다른 사람에게 뇌물을 주도록 하는 게 큰 차이 날 수 있나? 단순 뇌물죄와 제3자 뇌물죄에 차이를 둬야 할 필요는 있지만, 이 사안에서 그 차이가 의미 있을까. 게다가 미르·케이스포츠 재단 출연을 뇌물로 보지 않으면 앞으로 권력자들은 뇌물을 직접 받지 않고 재단을 만들어 출연하라고 할 거다. 또 다른 정경유착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게 된다. 요즘 뇌물 무죄 판결들을 보면 현안이 없을 때 수시로 받고, 지인에게서 받고, 가족 등에게 주면 빠져나갈 수 있다. 그렇다면 뇌물죄가 달성하려는 법익은 어떻게 되겠는가.
이 부정한 청탁이 명시적, 묵시적이냐가 아니라 어디까지 특정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롯데는 면세점이라는 절박한 현안이 있지만, 삼성은 절박한 현안이 없었다는 게 법원의 관점이다. 그런데 당시 이건희 삼성 회장이 갑자기 쓰러지면서, 이 부회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식으로 삼성을 인수해야 하는 문제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현안이었다. 개별현안을 보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공정거래위원회의 순환출자 해소 등은 청와대가 직접 나섰다. 이 부회장이 아쉬운 현안이 없고, 박 전 대통령의 ‘겁박’을 당했다면 왜 청와대가 직접 나섰겠나.
지난 14일 서울시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항소심 선고 전망' 좌담회에 참석한 한상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김남근 민변 부회장, 이상훈 경제개혁연대 실행위원(왼쪽부터). 김민경 기자
-항소심 판결을 전망해보면?
김 이재용 항소심은 사실관계 인정에서 무리하거나 대법 판례와 어긋나는 부분이 있어서, 1심 판결과 맞추려 할 것 같다. 롯데 뇌물혐의는 면세점 현안이 구체적이고, 케이스포츠 재단 추가 지원 70억원을 나중에 돌려받았기 때문에 대가성을 더 명징하게 보여준 부분이 있다. 신 회장도 액수가 커서 실형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말 구입비가 중요한 것은 이 부회장 횡령액 때문이다. 뇌물액이 1억원이 넘게 인정되면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형이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의 양형과 관련해서는 큰 의미가 없다. 그런데 횡령은 50억이 넘게 인정되면 무기 또는 5년 이상, 5억~50억 미만일 때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라 50억이 넘느냐가 중요하다. 말 구입비 36억5943만원도 뇌물로 인정되면 횡령액이 50억이 넘는다. 삼성 입장에서는 말 3마리가 가장 급할 수 있다. 그런데 1심은 말 3마리를 뇌물로 인정했기 때문에 2심도 따를 가능성이 있다.
김 이 부회장 1심은 말까지 포함해 정유라씨 승마지원 72억9247만원, 영재센터 16억원을 뇌물로 봤다. 이 부회장의 혐의 중 국외재산도피죄도 50억이 넘으면 무기 또는 10년 이상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그래서 이 부회장 1심은 징역 5년을 선고했지만, 이 부회장 2심은 말을 제외해 뇌물액을 50억 미만으로 낮췄다. 양형을 의식한 판단이라는 비판이 나왔던 이유다. 뇌물액수가 박 전 대통령은 양형에서, 주는 쪽에서는 횡령액과 연결돼 중요하게 됐다.
-박 전 대통령은 항소심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한상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박 전 대통령은 재판을 부정하는 게 자신의 정당성을 내세우는 방법인 것 같다. 차후 정권이 바뀌거나, 정권 바뀌었을 때를 생각한 전략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박 전 대통령의 개인적인 결단이라고 본다. 내가 어떻게 법관들 앞에 나가서 굽실거릴 것인가. 전직 대통령의 지위를 가졌던 사람이 취할 자세는 아니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법 체계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였다. 대한민국 법은 자신의 권력 뒷받침 수단에 불과한 거지, 자신의 행동 규율하거나 존중할 규범으로는 인식하지 않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최순실씨는 법 절차 속에서 자기를 항변, 방어하려 하는 모습과 대비된다.
-이 부회장 2심은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박 전 대통령 1심은 인정했던 ‘안종범 수첩’은 어떻게 될까.
김 판례를 보면 간접증거로서 증거능력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부회장 2심이 이례적인 판단이었다.
이 ‘삼성그룹 승계과정 모니터링’이라고 적힌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수첩과 함께 안종범 수첩도 경영권 승계 관련 부분이 나와 여전히 중요한 간접증거다.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그래서 삼성의 3년간 180조 투자 계획 등이 대법원이나 사면을 의식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 삼성의 행보가 법원을 의식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법원행정처 등의 ‘재판 거래 의혹’에서 드러나듯 판사가 재판 이외에 다른 걸 생각하면 안 된다. 대법관 교체 시점이기도 하고, 박 전 대통령 사건도 대법원에 올 거라 판결의 통일성 측면에서 한 번에 정리할 것 같다.
김 이건희 회장도 삼성특검 때 1조원대 규모의 사재 출연을 약속했다. 그런데 제대로 지켜지고 있나? 사법부는 정치적 고려 없이 판단해서 필요하면 실형을 선고하면 된다. 판사가 대통령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한 우리나라 사법부에서 재벌총수에 대한 판결에서 ‘3·5 법칙(징역 3년·집행유예 5년)’이라는 말이 나왔다. 재벌은 수사할 때부터 가벼운 혐의로 수사하고, 판결도 경제에 기여한 바가 크다며 가볍게 처단한다. 실형을 선고받아도 사면을 통해 바로 풀어준다. 그 모든 것에 경제논리가 적용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법 어디에도 경제여건을 고려하라는 규정이 없다. 법관들이 월권을 하는 거다. 양형에서도 근절되지 못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된 지 1년 5개월이 지났고, 재판에도 지난해 10월부터 출석하지 않았다. 사람들 관심에서 점점 멀어져가는데도 항소심 재판은 왜 중요한가?
김 박 전 대통령은 헌법 질서를 유린했다.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국민과 국가가 아니라 자신과 제3자를 위해 사용했다. 법원이 직권남용 등으로 이 부분을 확인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정경유착의 폐습을 명확히 드러내 근절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 부회장 2심 재판부는 정경유착에 대한 좁은 시각을 보여줬다.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를 눈감아주면 우리 사회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법부가 엄중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 최고 권력인 정치와 경제가 어떤 관계인지를 보여줘야 한다. 재벌이 대통령에게 돈을 줄 때, 불이익에 대한 불안과 이익에 대한 기대는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엄중한 잣대는 모든 재벌 총수에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한 국정농단 사건은 법적인 측면에서 보면 권력이 사유화된 대표적인 사례다. 국가의 공권력을 사적 이익이나 정치 세력 기득권 확보·존속을 위해서 사적으로 활용·이용했다고 규정할 수 있다. 공권력을 사유화하는 양상은 2가지 방식이 있다. 정치권력이 자신들의 헌법상, 법률상 직무 권한을 이용해서 남용하거나 오용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충족하는 거다. 또 다른 방식은 기업과 자본이 법 적용을 우회, 회피하는 방법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면서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를 저지르고,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법 집행 권력을 가진 사람과 결탁해 법의 적용을 피해 나가려 했다. 새로운 형태의 정경유착이다. 자본권력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고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을 행사할 토대를 마련했다. 그걸 견제, 통제하는 가장 중요한 기능이 법과 법을 운영하는 국가권력이다. 법을 왜곡하는 자본권력이 법의 통제를 받지 않기 위해 정경유착이 벌어지는 셈이다.
뇌물죄는 자본권력과 정치권력이 유착하는 기본 통로를 깨는 것이다. 법의 이름으로 단죄하면 새로운 정경유착의 틀을 깰 수 있다. 그런데 뇌물죄를 인정하지 않는 판결이 계속되면 정경유착을 견제하는 법의 역할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정치권력을 배경으로 자본권력의 전횡이 가능한 구조가 열린다. 자본이 이윤을 추구할 모든 수단을 법의 이름으로 열어줘서는 안 된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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