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씨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70억원을 요구한 ‘제3자 뇌물수수 혐의’가 최씨 항소심에서도 유죄로 인정되면서 항소심 판결을 앞둔 신 회장 재판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항소심 재판부는 에스케이(SK)그룹에 89억원 지원을 요구한 것도 ‘명시적’인 부정 청탁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등 재벌 총수의 ‘제3자 뇌물 혐의’를 원심보다 폭넓게 인정했다.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김문석)는 24일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항소심 공판에서 최씨가 박근혜 전 대통령 등과 공모해 신 회장한테 ‘케이스포츠재단에 70억원의 뇌물을 공여하게 한 혐의를 유죄로 본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대통령과 신 회장의 단독면담에서 신 회장이 월드타워 면세점 특허 재취득 등에 관해 명시적으로 청탁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묵시적 청탁은 있었다”고 판단했다. 단독면담의 성격과 시기, 현안의 중대성, 대통령 말씀자료, 신 회장의 미팅자료 등을 종합하면 대통령과 신 회장의 단독면담에서 어떤 형태로든 면세점에 대한 대화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뇌물 수수자’인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의 혐의가 항소심에서도 인정되면서, ‘뇌물 공여자’로 지목된 신 회장의 재판도 1심과 대동소이한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
롯데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집행유예를 받은 것처럼 재판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며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성실하게 관련 의혹을 소명해왔기 때문에 재판부가 이를 충분히 반영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신 회장이 박 대통령에게 뇌물을 주고 면세점 사업 선정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유죄 판단을 받은 만큼, 관세청이 판결을 토대로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사업 특허를 취소할지도 관심사다. 신 회장의 2심 판결은 오는 29일 결심공판을 마친 뒤 10월 초에 나올 예정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최씨가 에스케이그룹한테 89억원을 케이스포츠재단 등에 지원하도록 요구한 혐의도 원심과 같이 유죄로 판단했고, ‘묵시적 청탁’만 인정한 1심보다 나아가 ‘명시적 청탁’이 인정된다고 봤다. 항소심 재판부는 “그룹 총수가 대통령과 단독면담에서 (씨제이헬로비전 합병, 워커힐 면세점 등) 기업의 애로사항을 말하는 것 자체가 명시적 청탁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고한솔 이정국 기자,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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