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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국정원 협조한 대북 사업가가 진짜 간첩일까

등록 2018-08-30 05:00수정 2018-08-30 11:32

허위 자료 법원 제출한 보안법 사건

국정원에 보고하며 군사자료 유출?
국정원 요원에 수시 전자우편 보고
국정원도 자료 내용 인지했을 가능성

5년전 이메일 압수수색 이제야 체포?
경찰, 당시엔 자료 확보하고도 넘어가
김씨 “2014년쯤 국정원과 연락 끊겨”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경찰 보안수사대 조사관이 자신의 휴대전화로 받은 문자메시지를 국가보안법 피의자의 증거인멸 정황이라며 구속영장에 기재해 ‘거짓 증거(자료) 제출’ 논란이 일었던 사건의 실체를 둘러싼 의혹이 커지고 있다.

29일 <한겨레> 확인 결과, 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이 피의자는 그동안 국가정보원 요원들과 수시로 접촉하며 북한의 동향을 전달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이 김씨의 구속영장에 제시한 혐의는 ‘북한 쪽 인사들과 접촉하며 군사정보를 넘겼다’는 것인데, 같은 기간 오히려 국정원이 김씨를 이용해 북한 쪽 정보를 보고받았던 셈이다.

이날 <한겨레>가 변호인단 등을 통해 입수한 김씨의 전자우편을 보면, 김씨는 자신이 대북 관련 사업을 진행하며 알게 된 북한 관련 정보를 국정원 직원 권아무개(‘권 이사’)씨, 이아무개(‘이 실장’)씨에게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권 이사와 이 실장은 실제 국정원 직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가 북한 쪽 인사들과 접촉해 군사 관련 정보 등을 넘긴 혐의를 받고 있지만, 실제론 국정원의 묵인 아래 이런 일을 진행했을 가능성도 커 보인다.

김씨가 국정원 요원들에게 북한 관련 정보를 넘긴 시점은 2012~2014년으로 확인된다. 김씨는 2012년 11월15일 국정원 요원 ‘이 실장’에게 ‘안녕하세요 실장님 김○입니다. 요청하신 파일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자신이 운영하는 안면인식기술 업체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보냈다. 김씨는 북한 기술자들이 개발한 안면인식기술을 국내로 들여온 혐의도 받고 있는데, 사실은 이미 국정원이 관련 기술과 프로그램 등을 사전에 받아 본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김씨는 또 2013년 10월16일 ‘권 이사’에게 보낸 전자우편에 ‘○사장과 통화내역 중에서’라는 제목으로 “1인 1일 배급이 보통 500그램(g) / 구매가격 5원에서 6원 / 팀장급이 대체로 5천원에서 6천원” 등 북한의 배급 사정과 관련된 내용을 보고했다. 김씨는 이어 “전반적으로 권력통제력이 느슨해지고 시장의 재량권 및 힘이 높아지고 있다”며 북한의 현 상황에 대한 나름의 판단도 함께 적었다. 일종의 ‘파트너십’이 있었던 게 아닌지 의문스러운 대목이다. 김씨는 구속 뒤 변호인단에 보낸 편지에서 “쌀값 정보를 준 이후 권 이사를 만났는데 흡족해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김씨는 2014년 2월6일에도 권 이사에게 전자우편을 보냈다. “주로는 중국의 외주 일을 하는데 여기보다도 개발비 등 조건이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 일이 말이 많아서 (사이버 공격 등등) 오히려 기피를 하는 현황이라고 하네요. 개발자 자체로도 이전에는 몰래 일을 하곤 했는데 지금은 돈도 안 된다고 기피한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북한 정보통신(IT) 기술자들의 동향을 보고하는 내용이다. 또 김씨는 2013년 10월3일 자신이 운영하는 안면인식기술 업체와 관련한 서류 등을 보내면서 “제가 지금 가족들하고 놀러 와서 우선 급한 대로 요청사항을 보내드립니다. 대화록은 제가 기록을 하지 않았는데 기록을 해서 다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전자우편 내용을 보면, 그는 자신의 사업을 운영하면서 국정원과 지속적 협조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김씨가 국정원 직원에게 이런 전자우편을 보낸 시기가 경찰이 김씨의 구속영장에 포함한 범죄 혐의 시점과 겹친다는 점이다. <한겨레>가 입수한 김씨의 ‘구속영장 신청서’를 보면, 경찰은 김씨에게 국가보안법의 회합통신, 자진지원, 금품수수, 편의제공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구체적으로는 재중 북한 공작원으로 지목된 조선족 양아무개씨 등을 경유해 박아무개 김일성종합대학교 정보센터 소장과 60회가량 전자우편 등을 주고받고, 2013년 1월21일부터 4월10일 사이 방위사업청의 ‘해안복합감시체계’ 구축 사업과 관련한 군사자료를 양씨 등을 통해 박 소장에게 넘겼다는 혐의다.

하지만 김씨의 전자우편 내용을 보면 이런 사실은 이미 국정원도 파악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자신이 추진하고 있는 안면인식기술 사업 자료를 국정원 요청에 따라 미리 보냈고, 심지어 관련 프로그램 개발자와 주고받은 메신저 대화 내용까지 국정원에 전달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김씨는 국정원이 먼저 ‘비선’을 통해 사업을 추진하라고 권유하기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씨의 변호인단 설명을 종합하면, 김씨는 군사자료를 넘긴 북한 쪽 파트너로 지목된 북한 공작원 양씨와 김일성종합대 박 소장을 접촉하기 위해 2007년 통일부에 공식 접촉 승인을 냈다고 한다. 하지만 2008년 접촉 승인을 다시 받으려고 하자, 국정원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와 만류했다고 한다. 이에 김씨가 북한 개발자를 활용한 사업을 중단하려 했지만, 되레 이 실장과 권 이사가 정부 승인 없이 박 소장 등과의 접촉을 계속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후 김씨는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얻게 된 정보를 국정원 요원들에게 전달했다. 더구나 김씨는 ‘국정원 요원들이 박 소장의 탈북을 유도해 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위장 탈북’을 위한 밑돌 역할을 요구받았다는 것이다. 박 소장은 안면인식기술과 관련해 세계적인 권위자인 것으로 전해진다.

김씨와 접촉선을 유지한 권 이사와 이 실장은 국정원 대공수사국 소속 요원도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 목적이 아니라 정보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김씨에게 접근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특이한 점은 국정원이 김씨에게 접근하던 당시 국군기무사령부와 경찰은 이미 그에 대한 내사를 벌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 명의 대북 사업가를 두고 국정원은 정보원으로 삼으려 했고, 기무사와 경찰은 수사 선상에 놓았던 셈이다.

갑작스러운 김씨의 구속을 둘러싼 의문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김씨는 5년 전인 2013년에도 경찰에서 전자우편 등을 압수수색 당한 적이 있다. 김씨의 구속영장 신청서를 보면 2013년 3월26일 서울중앙지법은 김씨의 전자우편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김씨가 같은 해 1월21일부터 3월25일까지 양씨 등과 주고받은 전자우편을 모두 확보했다. 지금 김씨가 받는 혐의는 이미 경찰이 5년 전에 확인할 수 있었던 내용인 것이다. 김씨를 통해 북한에 넘어간 군사정보의 가치가 컸다면 경찰 등이 그때 김씨를 체포했어야 했다. 하지만 경찰은 5년이 지난 뒤에야 김씨를 갑자기 체포했다. 김씨는 앞서 변호인단에 보낸 편지에서 “2014년 무렵 이후 국정원과의 연락이 끊겼다”고 밝힌 바 있다.

사건 초기 김씨 사건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간부 출신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보도됐다. 과거 극렬 ‘운동권’ 출신 사업가가 북한 지령을 받아 움직인 것처럼 포장된 셈이다. 그러나 이런 보도 역시 사실과 거리가 멀다. 김씨는 1997년 한양대에서 열린 한총련 출범식 당시 ‘이석씨 치사 사건’으로 구속된 뒤 2000년 풀려났다. 그 이후 김씨는 고립된 생활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의 부인은 <한겨레>에 “감옥에 들어간 것이 20년 전이다. 그 일에 대해서 반성하고 미안해하며 살고 있었다. 그 사건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니 사업을 하면서부터는 지인들과 거리를 두고, 시민사회단체와도 거리를 뒀다”고 말했다. 김씨의 한 지인도 “2000년 감옥에서 풀려난 뒤 경조사 때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대학 시절 지인들하고도 좀처럼 연락을 안 했던 것으로 안다. 감옥에서 나온 뒤로는 계속 사업에 집중했다”고 전했다. 실제 김씨의 전자우편을 봐도 김씨는 ‘북한 공작원’으로 지칭된 양씨와 업무적인 내용으로만 여러 차례 연락을 주고받았다. 경찰이 북한 공작원이라고 지목한 양씨가 지령을 내리고 김씨가 정보를 파악해 북한에 넘기는 전형적인 ‘간첩 행위’ 정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김씨의 대리인인 장경욱 변호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남북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보기 힘든 사건으로 김씨를 체포한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또 김씨에 대한 허위 증거 제출 등이 어떤 경위로 이뤄졌는지도 명확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현재까지 드러나지 않은 김씨의 혐의가 더 있다고 보고 있지만 “구체적인 수사 내용은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환봉 권지담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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