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웅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장. 쿠팡노조 제공
지난달 20일, 파란색 모자를 쓴 ‘쿠팡맨’들이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자리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사무실 문을 두드렸습니다. 평소 같으면 택배를 배달하러 온 ‘기사님’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이날 쿠팡맨들의 방문은 ‘로켓배송’을 위한 게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1년 전 기업별 노조로 설립한 ‘쿠팡노조’를 산별노조로 전환하기 위해 ‘노동자’ 신분으로 노조 사무실을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쿠팡맨’은 온라인 쇼핑몰 ‘쿠팡’이 2014년 3월 ‘로켓배송’을 시작하면서 처음 등장했습니다. 경쟁업체와 차별화된 쿠팡만의 ‘감성 배송’은 외부 택배사에 배송 업무를 위탁하는 대신 회사가 직접 배송 사원을 고용, 운영했기 때문에 가능한 서비스였습니다.
김범석 쿠팡 대표는 이듬해 11월 “쿠팡맨을 2016년 1만명, 2017년 1만5000명으로 늘리고 이 중 60%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쿠팡맨의 연봉 수준이 주 6일 근무 기준 4000만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간접고용이 일상적인 택배업계에선 ‘꿈의 직장’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3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쿠팡맨들이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살겠다’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이하 쿠팡노조)를 세운 겁니다. 전체 쿠팡맨의 약 10%를 차지하는 300명가량이 조합원으로 가입한 상태입니다. 쿠팡맨들은 왜 노동조합을 만들게 된 것일까요?
사실 ‘쿠팡노조’가 출범한 건 꼭 1년 전인 지난해 8월30일이었습니다. 당시 쿠팡맨들은 회사가 시간외수당 등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것에 분노했습니다. 일한 만큼 돈을 받지 못했으니 화가 나는 게 당연했습니다. 지난해 6월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이었던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쿠팡이 포괄임금제 임금지급계약을 통해 쿠팡맨들에게 월평균 8.5시간의 시간 외 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며 “전체 쿠팡맨 2200여명이 3년간 받지 못한 수당이 75억원에 이른다”라고 발표했습니다. 이에 대해 쿠팡 쪽은 1년4개월 동안 13억원가량의 근로수당을 쿠팡맨들에게 지급하지 않은 사실을 인정하며 “빠른 시일 내에 지급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수당 미지급’ 논란이 있고 나서 지난 1년 동안 쿠팡노조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습니다. 왜였을까요? 쿠팡노조의 하웅(31) 위원장은 <한겨레>와 만나 “노조를 하자고 모였던 조합원들이 회사에서 ‘쿠팡맨들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문제를 해결할 의사를 보이자 하나둘씩 흩어지기 시작했다”고 1년 전 상황을 회상했습니다. ‘문제가 해결됐으니 더 이상 노조를 할 이유가 사라졌다’는 판단이었겠지요.
그렇다면 하웅 위원장은 왜 다른 조합원들과 달리 지난 1년 동안 ‘쿠팡노조’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그 이유를 직접 들어보시죠.
“지난 2년 4개월 동안 쿠팡맨으로 일했는데, 회사의 방식은 언제나 똑같았어요. 우리가 뭉치려고 하면 우선은 ‘당근’을 주죠. 그럼 한 2~3달은 회사에 다닐만하고, 안정감이 있어요. 그러다 또 갑자기 인사평가 방식이나 배송절차 등 시스템을 바꿔요. 보다 많은 배송량을 처리하기 위해 쿠팡맨들을 ‘쥐어짜는’ 방향으로 말이죠. 비정규직은 정규직 전환이 돼야 하니까 관리자 눈치를 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식사도 거르고 휴게시간에 쉬지도 못하고 일을 해야 해요. 남들보다 더 많은 배송물량을 처리하는 게 정규직 전환에 유리하니까. 그렇게 미친 듯이 일을 하니까 쿠팡맨 한 명당 생산성은 올라가죠. 힘들게 정규직이 되면 ‘고생 끝’이냐고요? 아뇨. 정규직 중 일부는 본사 관리직으로 지원할 수 있어요. 그러면 정규직 내에서 또 경쟁이 시작되죠. 그런데 결과적으론 정규직이든, 관리직이든 무한경쟁에 지쳐서 퇴사를 선택해요. 사람들이 지쳐 떠나면, 회사는 그만큼 또 새로운 직원을 뽑죠. 전체 쿠팡맨의 70% 정도가 비정규직인데, 이 악순환이 계속되는 거예요.”
-하웅 쿠팡노조 위원장-
최세욱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 사무국장. 쿠팡노조 제공
그러던 지난 6월, 전국 3000여명의 쿠팡맨들이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회사가 ‘새벽배송’을 시범 운영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전날 주문을 하면 다음 날 아침상을 차리기 전 신선식품 등을 배달해주는 새벽배송 서비스는 최근 유통업계에 떠오르는 ‘핫이슈’입니다. 마켓컬리의 ‘샛별배송’, 지난달 현대백화점 식품 전문 온라인몰이 시작한 ‘새벽식탁’ 서비스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쿠팡맨들은 새벽배송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날 경우 이 서비스가 전국적으로 확대될 것을 우려했습니다. 새벽배송이 도입될 경우 통상 아침 8시30분에 시작해 저녁 7시30분에 끝나는 하루 10시간(식사 및 휴게시간 1시간 제외), 주5일 50시간 노동시간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 새벽배송은 기존 온라인 쇼핑의 단점을 보완한 혁신적인 서비스입니다. 하지만 택배 노동자 입장에서 새벽배송 업무는 노동시간이 주간근무 때와 동일하다고 해도 훨씬 더 높은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시야가 어두운 새벽시간대에 운전을 하는 만큼 교통사고 발생 가능성도 커지게 됩니다. 편리함의 측면에서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새벽배송이 씁쓸하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현재 쿠팡은 지난 6월 전국 40여개 캠프(지점) 가운데 서울 서초캠프에서만 약 3주 동안 시범 운영한 새벽배송 서비스를 잠정 보류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쿠팡맨들은 회사가 최근 특허청에 ‘로켓 새벽배송’ 등의 상표를 등록한 점 등을 들어 ‘회사가 언제 다시 새벽배송을 도입할지 모른다’는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쿠팡이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거나 변경하려고 할 때 이 회사의 노동자인 쿠팡맨들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창구가 좁다는 것입니다. 쿠팡은 현재 캠프별 대표들과 회사 쪽이 소통할 수 있는 ‘쿠톡’(일종의 노사협의회)이라는 기구를 운영하고 있지만, 쿠팡맨들은 ‘(쿠톡은) 사실상 회사의 일방적 통보만 있을 뿐 쿠팡맨들이 회사와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최세욱(36) 쿠팡노조 사무국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쿠톡’이요? 캠프 대표로 본사 관계자와 대화를 하면 뭔가 바뀌지 않을까, 기대했던 적도 있었지만 임금 문제처럼 실질적으로 쿠팡맨들에게 중요한 건 들어주지 않았어요. 로켓배송이 시작된 지 4년 됐는데, 그 사이 쿠팡맨들의 임금은 계속 깎였다고 봐야 해요. 초기엔 모든 쿠팡맨이 월 350만원 정도를 받았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회사가 3개월마다 업무평가를 해 등급을 나누고, 기본급에 인센티브를 차등지급하는 형식으로 급여 체계를 바꿨어요. 작년에는 교통사고 등을 내지 않았을 때 고정적으로 40만원을 받았던 안전수당(SR·Safety Reward) 지급 기준이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전환됐다가 쿠팡맨들이 반발해 원래대로 돌아왔죠. 그런데 회사는 임금체계를 바꾸는 과정에서 쿠팡맨들의 동의를 구한 적이 없어요.“
-최세욱 쿠팡노조 사무국장-
산별노조에 합류하며 새 출발을 한 쿠팡노조는 지난 27일부터 새 조합원들의 노조 가입 접수를 받고 있습니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쿠팡맨이라면 누구나 노조에 가입할 수 있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갈등이 빚어지는 일부 대기업 노조와 달리 쿠팡노조가 ‘비정규직 처우 및 평가방식의 개선’을 요구사항에 포함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노조를 만들면 친절한 미소로 택배를 배송해주던 쿠팡맨들이 화난 얼굴로 회사와 싸우는 것 아니냐고요? 회사와 쿠팡맨이 함께 손잡고 조금 더 괜찮은 ‘쿠팡’을 만들자는 것. 이들이 노조를 하는 이유입니다.
쿠팡맨들은 애사심이 높아요. 저는 2년 전 처음 쿠팡에 입사했을 때도, 지금도 쿠팡이 대한민국 1등 유통기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쿠팡맨들의 처우만 개선된다면 말이죠. 쿠팡맨과 회사가 동등하게 대화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다면 쿠팡이 더 괜찮은 회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하웅 쿠팡노조 위원장-
선담은 기자
s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