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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도토리 줍지 마세요, 다람쥐에 양보하세요~”

등록 2018-09-13 14:19수정 2018-09-13 21:12

도토리 줍는 외부인 탓, 다람쥐 ‘식량부족’ 걱정에
연세대생들 ‘도토리 수호대’ 결성
올해엔 ‘도토리 저금통’ 2대 설치
“사람과 야생동물 공존하는 법 고민해야”
1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에서 ‘연세 도토리 수호대’ 대원들이 학내 교직원들과 함께 도토리 저금통을 설치하고 있다.
1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에서 ‘연세 도토리 수호대’ 대원들이 학내 교직원들과 함께 도토리 저금통을 설치하고 있다.
“아무래도 과실수 주변이 좋지 않을까요? 사람들 눈에도 잘 띄고요.”

1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의 ‘도토리 수호대’ 대장 사신원(22·중어중문학)씨가 학내 숲인 청송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공강 시간 짬을 내 모인 6명의 도토리 수호대 대원들은 도토리 낙과가 시작된 참나무 옆 땅을 삽으로 파기 시작했다. 대원들이 모은 도토리를 다람쥐를 위해 넣어두는 ‘도토리 저금통’을 설치하려는 참이었다. “도토리 저금통에 니스칠을 하면 나무가 썩지 않고 좋을텐데.” 연세대 시설처 직원의 말에 사씨가 답했다. “원래 니스칠을 하려고 했는데, 다람쥐들이 니스 냄새 때문에 저금통에 잘 안 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주변 도토리를 주워 직접 저금통에 넣어본 대원들은 곧 자리를 옮겨 학내 윤동주 시비 맞은편 공터에 저금통 하나를 추가로 설치했다.

1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에 ‘연세 도토리 수호대’ 대원들이 설치한 도토리 저금통.
1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에 ‘연세 도토리 수호대’ 대원들이 설치한 도토리 저금통.
‘외부인들의 도토리 줍기를 막지 못한다면, 차라리 학생들이 먼저 도토리를 줍는 게 어떨까?’ 주변 주민들의 도토리 무단 채취를 고민하던 학생들이 모인 ‘연세 도토리 수호대’는 지난해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학내 도토리를 주워 보관한 뒤, 먹이가 부족한 겨울철 숲 속에 나눠주는 일이 주된 활동이다. 30여명의 대원들이 활동하고 있는 수호대는 이날 다람쥐·청설모 등이 상시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도토리 저금통도 설치했다. 다람쥐 몸집이 지나다닐만한 동그란 구멍이 나 있는 저금통에 학생들이 도토리를 주워 넣어두면, 먹을 것을 찾던 야생동물이 꺼내먹을 수 있는 구조다. 지난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처음 도토리 수호대 활동을 제안한 사씨는 “보이는 도토리 중에서 절반 정도는 수거를 해 겨울에 뿌리고, 나머지는 저금통에 넣어두는게 목표”라며 “도토리 확보가 여의치 않을 땐 대체 식량인 견과류를 기부받는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신촌캠퍼스의 전체 임야 면적은 4만1250㎡(약 축구장 6개 규모)로, 유실수는 참나무, 잣나무 등 모두 12종, 299주에 달한다. 사유지 내 불법채취는 산림법 제116조에 의거 불법 행위임에도 여전히 운동 삼아, 취미 삼아 도토리를 줍는 외부인의 발걸음이 잦다. 이들의 무단채취는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호대 대원인 도현지(22)씨는 “도토리는 다람쥐, 청설모, 멧돼지뿐만 아니라 숲속의 조류, 곤충들이 주식으로 삼는 열매”라며 “사람들이 도토리를 주워가게 되면 생태계 균형이 깨지게 되고, 먹이를 구하지 못한 멧돼지들이 산 아래로 내려오는 경우도 잦아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6년과 2017년 연세대에서는 먹이를 구하지 못한 멧돼지가 캠퍼스로 내려와 학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1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에서 ‘연세 도토리 수호대’ 대원들이 떨어진 도토리를 줍고 있다.
1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에서 ‘연세 도토리 수호대’ 대원들이 떨어진 도토리를 줍고 있다.

‘사람과 야생동물이 공존하는 법을 찾자.’ 학생들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교직원들도 힘을 보태고 있다. 학내 도토리 저금통 설치에는 시설처·학생처 교직원의 협조가 있었고, 도서관 교직원들의 도움으로 외부인들의 접근이 어려운 도서관 옥상에 도토리 보관함도 설치했다. 이날 학생들과 함께 도토리 저금통을 설치한 연세대 시설처 직원 김기환씨는 “캠퍼스에 건물이 많아지면서 녹지와 공원에서 살던 다람쥐·청설모들이 숲으로 밀려난 상황”이라며 “전에는 외부인 무단채취를 막기 위해 현수막을 곳곳에 걸어두는 정도였는데, 학생들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 흐뭇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연세 도토리 수호대’가 학술정보원(도서관) 옥상에 마련한 도토리 보관함. 수호대는 가을철 떨어진 도토리를 주워 이 곳에 보관했다가 먹이가 부족한 겨울철에 다시 학내 녹지 곳곳에 뿌리는 활동을 한다.
지난해 ‘연세 도토리 수호대’가 학술정보원(도서관) 옥상에 마련한 도토리 보관함. 수호대는 가을철 떨어진 도토리를 주워 이 곳에 보관했다가 먹이가 부족한 겨울철에 다시 학내 녹지 곳곳에 뿌리는 활동을 한다.

도토리 수호대는 도토리 저금통 제작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크라우드펀딩도 진행하고 있다. 사씨는 “기둥형 저금통 2대를 설치하는데 모두 40만원이 들었고, 추가적으로 나무에 달 수 있는 저금통도 설치할 계획”이라며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일에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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