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가 벌어진 닷새 뒤인 2009년 1월25일, 경찰청 수사국이 작성한 '용산 철거현장 화재사고 관련 조치 및 향후 대응방안'에 첨부된 문건. 당시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보고용으로 작성된 이 문건에는 ‘지지세력의 확고한 결집’을 위해 집회·시위 사범 체포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용산참사’ 당시 경찰이 ‘수사권’을 활용해 ‘지지세력 결집’과 ‘이미지 쇄신’을 꾀하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불리한 여론을 뒤집으려고 공정해야 할 ‘수사’까지 동원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실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용산참사 관련 경찰 대응 문건을 통해 드러났다. ‘용산 철거현장 화재사고 관련 조치 및 향후 대응방안’(대응방안)이라는 제목의 문건 등은 용산참사 직후인 2009년 1월25일 경찰청 수사국이 당시 경찰청장 내정자 신분이었던 김석기(현 자유한국당 의원)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보고하려고 작성한 것이다.
<한겨레>가 이 의원실을 통해 확인한 이 문건을 보면, 경찰청 수사국은 용산참사 대응방안 중 하나로 ‘집회·시위 관련 수배자 검거 강화’ 계획을 내놨다. ‘대응방안’에 별도로 첨부된 이 계획에는 “국보법·집시법 등 수배자 검거활동을 대폭 강화, 법질서를 확립하고 경찰지지 세력 결집을 도모해야 한다”면서 “과거 10년 진보정권 집권기간 중 공안사범에 대한 ‘눈치보기식 수사행태’로 인해 수배자에 대한 적극적 검거가 미흡했다”고 분석했다.
문건은 이어 “좌파세력 검거활동을 대폭 강화할 경우, 진보단체나 일부 언론에서는 ‘신공안정국 조성’ 등으로 비판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비판세력은 어차피 경찰을 비판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법질서 확립을 바라는 전통적 경찰 지지세력의 확고한 결집과 지원을 도모함이 현 상황 타개에 보다 유리함을 감안”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집회·시위 사범 검거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경찰 지지세력을 모아 ‘용산참사’ 국면을 정면돌파하자는 취지다.
‘용산참사’가 벌어진 닷새 뒤인 2009년 1월25일, 경찰청 수사국은 당시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보고를 위해 30쪽 분량의 '용산 철거현장 화재사고 관련 조치 및 향후 대응방안'을 작성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대응방안’에는 경찰의 수사권을 이미지 쇄신을 위해 활용하는 방안도 포함되어 있다. 이 문건에 별첨 된 ‘재개발·재건축 비리 특별단속’ 문건에는 “경찰이 재개발업자·건축업자 등 소위 ‘있는 자’의 입장을 옹호하고 서민층인 철거민을 탄압한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며 “재개발 비리는 물론 용역업체의 과도한 물리력 행사”도 기획수사하는 계획이 나온다. 이른바 ‘있는 자’ 수사로 “경찰은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법을 집행한다는 인식 확산”을 하겠다는 취지다.
‘대응방향’ 작성 보다 앞선 2009년 1월23일 경찰청 수사국의 긴급메모 보고에는 “경찰 비방 목적 허위사실 유포 게시글 리스트 작성 보관”, “화면캡처, URL(인터넷 주소) 등 정리” 등의 지침도 나온다. 경찰이 용산참사 문제를 지적하는 시민들을 상대로 명예훼손 등 수사를 진행하려 했던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다. 다만 경찰이 이런 계획을 실제로 실행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앞서 경찰이 용산참사에 비판적인 여론을 돌리기 위해 강호순 사건 등을 활용하라는 청와대 지침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 바 있지만, 경찰이 직접 ‘지지세력 결집’ 등을 위해 본연의 임무인 ‘수사권’을 활용한 정황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재정 의원은 “국민의 안위는 외면하고 오직 조직 보호를 위해 정권에 충성한 정치경찰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과거의 잘못된 행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철저한 수사로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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