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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남편 사별 뒤 온 위기…낯선 땅에서 세 아이 지켜낼 수 있을까요?

등록 2018-10-02 05:00수정 2021-07-06 15:43

2018 <한겨레> 나눔꽃 캠페인
필리핀 이주여성 메릴린 분투기

15년 가장 떠받쳐온 ‘가장’
몸 불편해도 웃음 해맑던 남편
결혼 직후 투병으로 신혼 실종
영어 강사로 일하며 생계 책임
아들과 두딸 돌보느라 안간힘

남편과 사별 뒤 닥쳐온 ‘시련’
사망보험금 탓 기초생활수급 탈락
힘든 작업 탓에 어깨부상 실직
올 봄엔 아들 자살 기도로 충격
“아이들 꿈 이뤄주고 싶은데…”
지난달 11일 필리핀 결혼이주여성 메릴린(44·가명)이 충남 금산군 집에서 막내 아이의 공부를 봐주고 있다. 금산/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지난달 11일 필리핀 결혼이주여성 메릴린(44·가명)이 충남 금산군 집에서 막내 아이의 공부를 봐주고 있다. 금산/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필리핀 출신의 결혼이주여성 메릴린(44·이하 모두 가명)은 주례석 오른쪽에 놓인 푸른색 촛대 앞에 서서 결혼사진을 찍었다. 원래 신부가 섰어야 할 왼쪽 붉은 촛대 앞에는 그의 남편이 섰다. “2003년 11월 다문화합동결혼식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우리 남편은 오른쪽 손목이 잘렸거든요. 손 없는 빈 소매가 사진에 남을까봐 제가 남편의 오른쪽에 섰어요.”

지난달 11일 오후 충남 금산군에서 만난 메릴린이 거실에 놓인 결혼사진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는 한국에 온 뒤로 15년 동안 몸이 불편한 남편 몫까지 빠듯한 살림을 거의 혼자 꾸려왔다. 그 사이에 태어난 세 아이들이 메릴린을 지탱해준 힘이었다. 하지만 지병을 앓던 남편이 지난해 세상을 떠나면서 더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고 한다.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너무 외롭고 경제적으로도 힘들어요.” 메릴린은 눈물을 훔치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서른살까지 고국인 필리핀에서 자란 메릴린은 원래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홀로 지내던 메릴린은 2003년 8월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식사 자리에서 남편을 만나고 첫 눈에 반했다. “남편을 처음 만난 날짜는 절대 잊어버릴 수 없어요. 2003년 8월18일. 남편이 친구 부부를 따라서 필리핀으로 여행을 왔어요. 한 식당에서 만났는데 한쪽 손이 없고 몸이 아픈 남편의 모습을 보고 ‘내가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날 이후로 메릴린씨는 전에는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 “몸이 아픈데 마음 착한 남편이 혹시나 나쁜 사람에게 피해를 입으면 어쩌나 걱정이 됐어요. 영어와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고요. 결혼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한국행을 결심했습니다.”

그해 9월3일 한국에 온 메릴린은 행복한 신혼생활은 꿈꿔보지도 못하고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당뇨와 간경화를 앓느라 몸이 아픈 남편과 연로한 시어머니는 일을 할 수 없었다. 가족 중 유일하게 일을 할 수 있는 메릴린이 학원과 방과후 학교에서 영어강사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남편은 결혼하고 한달 만에 병원에 입원했다. 메릴린의 남편은 그때부터 세상을 뜨기 전까지 10년 넘게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병원을 들락거렸고, 가족들은 50~80만원 남짓한 메릴린의 수입과 기초생활수급비에 의지해 생계를 유지했다.

모든 걸 혼자 해야 했던 메릴린은 “정말 외로웠다”고 그간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세 아이의 엄마인 그는 아이를 낳을 때도 혼자 병원에 가야 했다. 메릴린은 지난 2008년 셋째 딸 은지(10)를 낳을 때 이야기를 하면서는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새벽 5시쯤 진통이 왔는데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었어요. 혼자서 택시를 불러 병원에 갔습니다.” 병원에 가는 길에도 큰아들 준수와 둘째 딸 우진이의 어린이집 등원이 걱정됐던 그는 이웃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들을 챙겨줄 사람이 집에 없으니까요. 이웃 언니에게 ‘아기를 낳으러 가는 길인데 하루만 아이들을 봐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렇게 혼자서 아기를 낳은 메릴린은 그날 밤 8시30분에 퇴원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당장 그날 저녁부터 아이들과 시어머니를 챙겨야 했기 때문에 산후조리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가장으로서 영어강사 일을 하고 집안일, 남편 병수발까지 해야 했던 메릴린은 2016년 초 직업을 바꿨다. “남편의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졌거든요. 계속 수업을 빠지고 남편 병원에 가야 했습니다. 원장님은 수업을 자주 빠지면 아이들에게 좋지 않을 것 같다고 했고 저도 그렇게 생각해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은 그만뒀어요.” 강사 일을 그만두고 메릴린씨가 선택한 직장은 당구용 큐대 제조회사였다. 하루에 400여개씩 기다란 당구 큐대를 들어서 기계에 넣고 돌려 윤을 내는 고된 일이었다. 수시로 남편 병원에 가야하는 메릴린의 사정을 봐주는 회사였고, 학원보다 월급도 많은 회사였기 때문에 그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게 끝까지 남편에 대해 희망을 버리지 않았지만, 결국 남편은 지난해 1월 세상을 떠났다.

필리핀 결혼이주여성 메릴린(44·가명)이 충남 금산군 집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금산/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필리핀 결혼이주여성 메릴린(44·가명)이 충남 금산군 집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금산/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남편이 떠난 뒤 메릴린의 가족은 전에 겪어본 적이 없던 큰 위기를 맞았다. 먼저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어졌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기초생활수급 대상 자격을 잃었다. 메릴린의 근로능력이 인정됐고 남편이 남기고 간 사망보험금도 영향을 미쳤다. 설상가상으로 당구 큐대 만드는 일을 하면서 메릴린은 팔과 어깨 등에 큰 무리가 와서 더는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지난해 8월 이후로 메릴린네 가족의 고정 수입은 세 아이의 아동수당 40여만원이 전부다. 이번 여름에는 오는 5일부터 열리는 ‘금산인삼축제’에 사용될 인삼을 씻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3개월 동안 매달 100만원 남짓한 돈을 벌기는 했다. “인삼에 물을 뿌리고 씻는 과정이 제일 힘든데 제가 나이가 어리고 외국인이어서 이 과정을 맡고 있어요. 몸이 아파 힘들지만 나가야죠.” 하지만 축제가 끝나면 가족의 수입은 또 다시 끊기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메릴린의 가족은 몸이 아파도 제대로 검사나 치료를 받지 못하고, 세 자녀도 필요한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다. 당구 큐대 제조회사에서 일하며 팔과 어깨를 다친 메릴린씨는 “비용 문제로 엠아르아이(MRI) 검사를 못해 어떤 상태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의사선생님은 계속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그럴 돈이 없으니 별 수 없잖아요.” 둘째 딸 우진(13)이는 망막 교정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역시 비용 부담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우진이는 눈의 초점이 제대로 안 맞아서 항상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요. 수술이 힘들다면 물리치료라도 받게 해주고 싶은데 형편이 어려워서 이것도 못하고 있죠.”

지금 살고 있는 방 두개 짜리의 허름한 아파트로 이사를 오는 과정에서 지게 된 빚도 문제다. “월세로 살던 집에서 ‘그만 나가달라’고 해서 난감한 상황이었어요. 같은 성당에 다니시는 분이 이민을 가시면서 집을 내놨는데 대출을 끌어안는 조건으로, 남편의 사망보험금 4000만원을 털어서 샀어요. 떠안은 빚이 2000만원인데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메릴린씨 가족이 매달 갚아야 하는 대출이자만 24만원이라고 한다. 여기에 관리비 16만원과 시어머니의 요양병원비 15만원의 고정비용이 추가로 들어가고 있다.

결국 식비와 교육비는 ‘줄일 수 있는 돈’이라는 생각에 최소한으로만 쓰고 있는 상황이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다며 학원을 보내달라고 하지만 꿈도 꿀 수 없고, 생활비가 부족하면 가장 먼저 식비를 줄이는 탓에 집 안에 먹을거리는 흰 쌀밥과 라면이 전부입니다.” 메릴린은 정말 힘들면 필리핀에 있는 친오빠에게 도움을 청한다고 했다. “아이들이 소풍을 갈 때면 오빠에게 연락해 5∼6만원씩 돈을 빌립니다. 정말 힘들다고 하면 오빠가 형편이 되는 대로 50만원도 빌려주고 100만원도 빌려주고요. 그렇게 한달 한달 버티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보다 메릴린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보는 일’이다. 특히 “올해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사춘기가 찾아온 큰 아들 준수(14)가 어려운 가정 형편에 대해 주변 친구들과 자기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많이 힘들어한다”고 했다. 메릴린씨는 ‘지난 봄 그날’ 일을 털어놓으며 다시 눈물을 흘렸다. “올해 초 준수가 다니는 학교에서 갑자기 전화가 왔어요. 준수가 이상해보인다고. 알고 보니까 한 친구와 함께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었다더라고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어요.” 큰 충격을 받은 메릴린과 준수, 우진이는 함께 심리상담을 받았고 우울증약을 복용했다. “저는 지난 8월까지 6개월 동안 약을 먹었고 아들은 지금도 약을 먹고 있어요. 좋아지고는 있지만 ‘준수가 정말 괜찮은가’ 여전히 걱정됩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로 지금까지 2년여 동안 메릴린은 한국살이 15년 만에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는 “힘들 때면 고향 생각이 난다”고 했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아요. 하지만 가고 싶다고 마음대로 돌아갈 수는 없겠죠. 아이들이 지금 심리적으로 이렇게 불안해하는데, 갑자기 다른 나라에 가서 살게 되면 더 혼란스러울 것 같으니까요. 거기다 빚도 있는 상황이고. 외롭고 힘들지만 그렇다고 다 놓아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한국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야죠”라는 메릴린은 세 자녀에게서 희망을 보고 있다. 준수는 초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해오던 역도를 다시 시작해 기량을 점점 끌어올리고 있고, 셋째 딸 은지는 올해 4학년이 되면서 학급회장에 당선됐다. 셋 중 공부를 제일 잘하는 둘째 딸 우진이는 독후감, 그림 그리기, 표어 대회에 나가면 꼭 상장을 받아온다. 엄마는 그런 아이들의 꿈을 든든히 뒷받침해주고 싶다. “주민센터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 저희 집을 도와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우진이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고 했고, 끼 많은 막내는 연예인이 되고 싶대요. 아이들이 꿈을 이루도록 무엇이든 지원해주고 싶어요. 하지만 맛있는 반찬 하나 제대로 못해주는 형편을 돌아보면 한숨만 푹푹 나옵니다.” 고개를 떨군 메릴린 뒤로 준수와 은지가 방 안에서 함께 놀며 까르르 웃었다.

금산/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메릴린(가명) 가족에게 도움을 주시려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 (기업은행 060-709-1004, 예금주: 대한적십자사) 대한적십자사 누리집(www.redcross.or.kr)과 네이버 해피빈(happybean.naver.com)에서도 후원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면 대한적십자사(1577-8179)로 문의해주십시오. 대한적십자사로 연락 주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목표 모금액은 1천만원입니다. 후원금은 메릴린 가족의 생계비와 세 자녀의 교육비로 사용되며 1천만원 이상 모금되면 이들처럼 어려운 사연의 가정에 지원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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