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으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심 선고를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출석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석방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2심에 이어 ‘재벌 총수 특혜용’ 판결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집행유예의 결정적 이유가 된 ‘양형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는 지적이 거세다.
2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8부(재판장 강승준)는 ‘월드타워 면세점 특허 재취득’이라는 주요 현안이 존재했음을 인정했다. 이어 신 회장이 대통령이 면세점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그 직무 집행의 대가로 70억원을 건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대통령 요구로 피고인의 의사결정 자유가 다소 제한된 것으로 보이지만, 제반 사정을 비춰보면 대통령의 지원 요구를 거절하는 게 불가능했다거나 피고인의 의사결정의 자유가 현저히 곤란한 정도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하더라도, 롯데 현안에 관해 대통령이 불리하지 않게 처리하게 해달라는 구체적 동기를 가지고 70억을 건넸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가 이후 제시한 양형 이유는 모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재판부는 “대통령의 지원 요구는 이에 불응할 경우 기업활동 전반에 걸쳐 직·간접적 불이익이나 두려움을 느끼게 할 정도”라며 “수뢰자의 강요 행위로 인해 의사결정의 자유가 다소 제한된 상황에서 피해자의 뇌물공여 책임을 엄히 묻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김남근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는 “재판부가 ‘롯데가 현안을 해결하려 재단에 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지도 않고 돈을 건넸다’고 범죄 성립 여부를 엄격하게 판단해놓고, 정작 양형에선 대통령 강요에 의해 공익적 활동에 돈을 건넨 피해자로 바라본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짚었다. 오지원 변호사도 “양형 기준이 자의적으로 해석됐는지 따져봐야 한다. 권력에 굴복해 돈을 건넸다 하더라도 양형 기준에 근거해 일반적인 사례와 최소한의 형평성은 지켰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신 회장의 1심 재판부는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뇌물을 공여했다는 점은 양형에 유리한 요소이지만 그 영향은 제한적이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당시 신 회장은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이상훈 변호사(경제개혁연대)는 “대통령과 재벌 총수라는 두 최고 권력자 간의 관계에서 수동적으로 뇌물 요구에 응한다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라며 “2심은 신 회장을 수동적인 피해자로 보아 정경유착을 엄단하려는 1심 재판부의 노력을 완전히 무용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는 신 회장이 1·2심 모두 제3자뇌물 혐의에 유죄 판결을 받았고, 3심인 대법원은 법리 적용의 잘잘못을 따질 뿐 ‘양형의 경중’을 판단하지 않기 때문에 검찰이 상고하기도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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