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 5일 법원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집행유예로 풀어주며 70억원에 달하는 뇌물 추징까지 취소해줘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8일 판결문을 통해 구체적인 추징 취소 이유가 드러났다. 항소심 재판부는 짧은 기간에 거액이 오갔는데도 ‘애초 롯데그룹이 준 돈과 돌려받은 돈이 같은 돈이 아니다’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댔다.
신 회장 2심 판결문을 보면, 서울고법 형사8부(재판장 강승준)는 “케이(K)스포츠재단이 (뇌물로 받았다가) 롯데그룹 계열사에 반환한 70억원이 당초 롯데그룹 계열사로부터 받은 돈과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뇌물 70억원의 추징을 선고했던 1심 판단을 뒤집었다.
형법은 범인 또는 제3자가 받은 뇌물을 몰수할 수 없을 때 추징하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1심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는 지난 2월 신 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의 실형과 함께 뇌물로 인정된 70억원의 추징을 선고했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케이스포츠재단이 (롯데로부터) 송금받은 70억원을 전혀 인출하거나 소비하지 않고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가 이를 다시 계열사에 반환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했다. 뇌물을 준 사람한테 뇌물액을 추징할 때는 ‘처음에 준 뇌물 그 자체’를 돌려받았을 때로 한정해야 한다는 판례를 따른 것이다.
신 회장은 2016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단독 면담한 자리에서 케이스포츠재단 자금 지원을 요구받았다. 이어 월드타워 면세점 특허 재취득이라는 대가를 바라고 2016년 5월25~31일 계열사 자금을 동원해 70억원을 송금했다. 그러나 검찰이 롯데 경영비리 수사를 시작하자, 케이스포츠재단은 불과 열흘 뒤인 6월9일부터 닷새 사이에 70억원을 롯데에 반환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케이스포츠재단이 롯데에 돈을 돌려주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케이스포츠재단이 롯데에서 돈을 받은 계좌로 다른 기업의 돈을 받았고, 재단 직원 급여나 비용도 지급한 사실을 거론했다. 한마디로 ‘그 돈이 그 돈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에 법조계에선 “그렇게 짧은 기간에 재단이 70억원이라는 거액을 사용했다고 인정한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2심 재판부는 또 70억원 추징을 취소하며 신 회장이 롯데를 위해 뇌물을 줬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뇌물공여 범행이 피고인 개인의 이익이 아닌 롯데그룹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의사로 행해진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독자적 법인격을 가진 계열사가 70억원을 받환받은 것을 가지고 피고인에게 그 이익이 실질적으로 귀속되었다고 볼 수도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부정한 청탁으로 인정한 월드타워 면세점 특허 재취득은 호텔 롯데 상장, 롯데그룹 지배구조 개선으로 이어져 경영권 분쟁 중이던 신 회장의 이해관계와 밀접하게 연관된 현안이었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자기 돈도 아니고 상장사인 계열사 돈을 빼내서 대통령에게 뇌물로 줬다”면서 “이번 판결로 신 회장은 뇌물 유죄를 인정받고도 풀려났을 뿐 아니라 70억원도 지켰다. 추징 취소는 도저히 이해 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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