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농부·셰프가 모델…그는 왜 ‘작업복 브랜드’를 선택했나

등록 2018-10-11 15:34수정 2018-10-11 20:33

[‘워킹 클래스 히어로’ 곽유진 디자이너 인터뷰]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으로
농부·도예가·셰프 ‘작업복’ 디자인
실제 모델도 노동자들이 나서
“내 일에 딱 맞는 옷을 입으면
노동자 자부심도 커지지 않을까요?”
‘워킹 클래스 히어로’의 곽유진 디자이너가 9일 오후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작업복 앞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워킹 클래스 히어로’의 곽유진 디자이너가 9일 오후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작업복 앞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존 레넌은 1970년 첫 정규 솔로 음반에 수록된 곡 ‘워킹 클래스 히어로’(Working Class Hero, 노동자 계급 영웅)를 이렇게 설명했다. “왜 누군가 지금 사람들을 위한 곡들을 쓰지 않을까요. 그건 내 일이기도 하고 우리의 일이기도 하잖아요.”(<롤링스톤> 인터뷰, 1971년)

곽유진(33) 디자이너가 지난 9월 론칭한 작업복 브랜드 ‘워킹 클래스 히어로’는 바로 이 곡에서 이름을 따왔다. 노래 제목처럼 노동자 모두가 ‘영웅’이 됐으면 했고, 존 레넌의 말처럼 ‘사람들을 위한 곡을 쓴다’는 마음으로 옷을 만들겠다는 생각에서다. 9일 낮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난 곽 디자이너는 “진심을 다해 일하는 노동자들을 보면 존경심을 느낀다”며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단순히 돈벌이의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옷을 만들고 싶어 작업복 브랜드를 만들었다”고 했다.

‘워킹 클래스 히어로’는 말 그대로 ‘일하는 사람들’이 ‘일할 때’ 입는 옷을 만든다. 지난 10년간 주로 여성 의류 브랜드 회사에서 일했던 곽 디자이너가 작업복 제작을 고민한 건 일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다니면서부터다. “다시 학생이 되고 보니 일이 제게 줬던 자신감과 정체성이 느껴지더라고요. ‘나에게 일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죠.” 유행을 좇아 금세 만들어졌다가 버려지는 옷을 보며 ‘생명력이 긴 옷’에 대한 고민도 싹텄다. 그 고민의 결과물이 바로 작업복이었다.

워킹 클래스 히어로의 첫 번째 작업복 콜렉션. 실제 농부들이 모델을 했다. 워킹 클래스 히어로 제공.
워킹 클래스 히어로의 첫 번째 작업복 콜렉션. 실제 농부들이 모델을 했다. 워킹 클래스 히어로 제공.
곽 디자이너가 지난 9월 공개한 첫 번째 콜렉션에는 실제 노동자들이 모델로 등장한다. 충남 홍성군 젊은협업농장의 농부들은 여름 채소를 수확하고, 작업실에서 일하는 도예가는 정성스러운 손길로 흙반죽을 만진다. 모두 곽 디자이너의 옷을 입고 찍은 사진들이다. “워킹 클래스 히어로는 ‘작업복 풍’의 패션 브랜드가 아니고 실제로 작업복을 만드는 브랜드에요. 그래서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지난 여름 전국을 돌며 사진 촬영을 하면서 노동자들에게 피드백을 받은 것도 디자인에 큰 도움이 됐다. “‘이왕이면 일을 할 때도 예쁜 옷을 입고 싶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얇은 소재로, 땀이 잘 배출되는 작업복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도 있었고요. 실제로 옷을 입는 사람들을 만나니 브랜드에 대한 확신과 겸손함이 동시에 생겼죠.”

디자이너의 철학 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실용성이었다.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웃옷 위에 걸쳐 입는 옷인 ‘스목’에는 휴대전화를 넣는 지퍼 주머니를 달았고, 땀이 잘 식도록 등 부분을 세로로 절개해 여닫을 수 있게 했다. 농부들의 목 뒷부분이 햇볕에 타는 것을 막기 위해 넥카라를 높게 디자인했다. 곽 디자이너는 “앞으로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분들을 위한 콜렉션도 작업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워킹 클래스 히어로의 첫 번째 작업복 콜렉션. 실제 도예가가 모델을 했다. 워킹 클래스 히어로 제공.
워킹 클래스 히어로의 첫 번째 작업복 콜렉션. 실제 도예가가 모델을 했다. 워킹 클래스 히어로 제공.
작업복 문화가 발달한 일본이나 프랑스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작업복에는 별다른 디자인이 필요하지 않다’는 인식이 강하다. 곽 디자이너는 “소량으로 주문제작을 하는 방식 때문에 지금은 가격대가 좀 높지만, 앞으로 생산·유통 라인을 정비해 가격대를 낮추고 싶다”며 “일단은 작업복에 대한 인식의 문턱부터 낮추는게 목표”라고 말했다. “저는 작업복의 힘을 믿어요. 내가 하는 일에 꼭 맞는 옷을 입을 때 노동자들의 자부심도 커질 수 있으니까요. 노동자들이 자부심을 가질수록 이들에 대한 예의와 존중도 함께 커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곽 디자이너가 덧붙였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한겨레 노조 “내란수괴범 윤석열 처단” 1.

한겨레 노조 “내란수괴범 윤석열 처단”

[단독] ‘윤 탑승’ 추정 차량 오후 4시 40분께 대통령실 진입 2.

[단독] ‘윤 탑승’ 추정 차량 오후 4시 40분께 대통령실 진입

‘내란죄 공범’ 될라…장관 5명, 계엄 전 국무회의 참석 여부 함구 3.

‘내란죄 공범’ 될라…장관 5명, 계엄 전 국무회의 참석 여부 함구

[단독] “특정횟수 넘는 도수치료 금지” 금융위 vs “불가능” 복지부 4.

[단독] “특정횟수 넘는 도수치료 금지” 금융위 vs “불가능” 복지부

“불편한데 괜찮아요”…혼돈과 응원 교차한 철도 파업 첫 날 5.

“불편한데 괜찮아요”…혼돈과 응원 교차한 철도 파업 첫 날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