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급시각장애인 김준형씨는 친구들과 함께 에버랜드에 놀러갔다. 그러나 즐거움도 잠시, 롤러코스터 티익스프레스를 탑승하려 했으나 직원에 저지당했다. 에버랜드쪽은 “안전상 이유로 시각장애인은 탑승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4급 시각장애인 박아무개씨, 6급 시각장애인 김아무개씨도 탑승을 제지당했다. 비장애인인 동반자가 있어도 탑승은 불가능했다. 김씨는 이날 티익스프렉스를 포함해 세 종류의 놀이기구에서 탑승을 거부당했다. 그해 6월 김씨 등은 “에버랜드가 장애인 차별금지법을 위반했다”며 운영 주체 삼성물산을 상대로 225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그로부터 3년 4개월이 흐른 1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7부(재판장 김춘호)는 삼성물산은 김씨 등 시각장애인 3명에 200만원씩 모두 600만원의 위자료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객관적 근거없이 막연한 추측만으로 장애인의 놀이기구 이용을 제한하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놀이기구가 비장애인과 비교해 시각장애인에 안전상 큰 위험을 초래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한 김씨 등의 청구를 받아들여 롤러코스터, 범퍼카 등 7개 놀이기구의 탑승을 금지한 에버랜드 가이드북을 수정하라고 명령했다. 재판부는 “에버랜드의 관련 규정을 고치지 않으면 향후에도 계속해서 차별행위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며 시각장애인 탑승 제한을 의미하는 내용을 모두 삭제하라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차별 행위가 에버랜드의 시각장애인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발생한 것일 뿐, 의도적으로 차별하기 위해 놀이기구를 금지한 것은 아니라는 점, 다른 놀이기구에 대해 장애인 우선탑승제도를 운영하는 등 장애인 편의를 위해 노력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감안해 손해배상액을 산정했다. 또한 “에버랜드의 탑승 저지 행위가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닌 이상, 동행인들이 느낀 불쾌감이 차별행위와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당시 놀이공원에 동행한 비장애인 3명의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했다.
시민단체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의 결정을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번 소송에서 김씨를 대리한 시각장애인 김재왕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는 “어떤 행위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의 문제는 장애인 본인의 몫이고 그 책임 역시 장애인이 져야 한다는,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확인한 판례”라고 설명했다. 오병철 동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시각 장애인이라고 해서 사고가 더 많이 발생하고 비장애인이라서 사고가 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사고 발생 유무는 시설을 감독하는 운영주체의 책임이다. 장애를 가진 개인에게 그 책임을 전가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3년여 심리가 진행되는 동안 양쪽은 첨예한 법정 다툼을 벌였다. 재판 과정에서 김씨측은 “에버랜드의 탑승금지 행위는 일어나지도 않은 사고와 그 위험성을 담보로 장애인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려는 불합리한 차별행위”라고 주장했다. 장애의 정도와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시각장애인의 탑승을 거부한 조치의 부당함도 지적했다. 에버랜드쪽은 “시각장애인의 놀이기구 이용을 제한하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자기결정권 침해가 아니라 안전을 위한 적절한 조치”라고 맞섰다.
재판부는 양쪽 주장의 진위를 따져보기 위해 2016년 4월 에버랜드에서 직접 현장검증을 진행했다. 당시 재판부였던 고연금 부장판사 등과 시각장애인 5명, 에버랜드 관계자 30여명이 직접 롤러코스터에 탑승했다. 약 40미터 상공에서 멈춰서는 비상상황이 연출됐고 검증 결과 시각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이 안내요원의 안내를 받아 문제없이 대피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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