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 시간까지 비슷 효력 논란
헌법재판소가 한 법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날 대법원이 이 조항을 그대로 적용해 판결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대법원 판결의 효력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4일 자동차를 이용해 범죄를 저질렀을 때 무조건 운전면허를 취소시키는 도로교통법 조항에 대해 재판관 8 대 1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범죄의 경중이나 구체적 사안의 개별성을 고려하지 않고 비난의 정도가 미약한 자동차 범죄에도 운전면허를 취소하는 것은 명확성과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같은 날, 승객을 성추행해 운전면허가 취소된 택시운전사 유아무개(36)씨가 강원지방경찰청을 상대로 “운전면허 취소는 부당하다”며 낸 행정소송에서 “자동차를 이용해 재범을 못하게 하려는 법 취지에 비춰보면 운전면허 취소는 적법하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했다. 헌재의 위헌 결정과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같은 날 정반대로 갈린 것이다.
헌법재판소법에는 “위헌으로 결정된 법률 또는 법률의 조항은 그 결정이 있는 날로부터 효력을 상실한다”고 돼 있다. 효력을 잃는 시점을 ‘당일 0시’부터라고 본다면 대법원은 위헌 법률을 적용한 셈이 되고, 또 위헌 결정을 한 시간을 기준으로 본다면 헌재와 대법원이 각각 결정과 판결을 내놓은 미세한 ‘시간차’까지 따져야 한다. 그러나 공식적인 선고 시간도 두 사건 모두 오후 2시여서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헌재 관계자는 “유씨가 헌법소원을 청구해 대법원 선고의 효력을 따져볼 수는 있지만, 선례가 없어 뭐라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헌법소원이 들어오면 법률적 판단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헌법재판소가 선고 일정을 미리 대법원에 알려줬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최근 양쪽 관계자가 만나 헌재가 사건 선고 일정을 각급 법원에 통보해주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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