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 피시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아무개(29)씨가 22일 오전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공주 치료감호소로 가기 위해 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김 씨는 이곳에서 길게는 한 달간 정신감정을 받는다. 한국방송(KBS) 화면 갈무리.
22일 오전 서울 양천경찰서 앞. 강서구 피시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아무개(29)씨가 치료감호소로 이동하기 전 언론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날 신상정보 공개가 결정된 김씨는 “(동생은) 공범이 아니다”, “(우울증 진단서는) 가족이 냈다”, “(피해자 가족에게) 죄송하다.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죗값을 치르겠다”고 밝혔습니다.
김씨는 이달 14일 강서구의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신아무개(21)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습니다. 경찰의 설명을 보면, 손님으로 피시방을 찾은 김씨는 다른 손님이 남긴 음식물을 자리에서 치워달라는 요구를 하다 신씨와 말다툼을 했다고 합니다. 김씨는 말다툼 뒤 피시방을 나갔다가 다시 흉기를 갖고 돌아와 피시방 입구에서 신씨를 여러 차례 찔러 숨지게 했고, 신씨는 사건 직후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숨졌습니다.
‘심신장애’, ‘의료윤리’, ‘정신질환을 향한 낙인’… 사건 발생 이후 일주일 동안 강서구 피시방 살인사건이 한국 사회에 던진 질문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①강서구 피시방 살인사건에 분노하는 이유
이번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무고한 젊은 청년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은 분노했습니다. 지난 17일 피의자를 엄벌에 처하게 해 달라며 올라온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엿새 만에 88만8천여명(22일 오후 기준)이 서명해, 역대 청와대 국민청원 사상 가장 높은 청원수를 기록했습니다. 청원문을 올린 피해자 지인의 가족은 “(피해자가) 모델 준비하며 고등학교 때도 자기가 돈 벌어야 한다며 알바 여러 개 하고, 그러면서도 매일 모델 수업받으러 다닌 성실한 형이라고 한다”며 “언제까지 우울증, 정신질환, 심신미약이라는 단어들로 처벌이 약해져야 하느냐”고 지적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간 술로 인한 심신미약 등으로 형을 감경받은 사례 등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이로 인해 사법 불신이 커졌다는 점을 분노의 원인으로 꼽습니다. 술을 마신 건 정신질환 등 피하기 어려운 질병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선택일 뿐인데, 이를 근거로 형을 줄여주는 게 옳으냐는 질문입니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심신미약의 경우) 법정에서 판사들이 하한선으로, 특히 집행유예까지 달아서 너무 관대한 형을 선고하다 보니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국민들의 분노가 더욱 커지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22일 <시비에스>(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특히 과거 음주 범죄의 경우 법원이 너무나 쉽게 심신미약을 인정해 처벌을 가볍게 한 사례가 있기 때문에 시민들이 걱정한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어려운 처지에도 성실하게 살아온 청년이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잔인하게 살해되었다는 점에서 자신의 처지를 피해자에게 쉽게 대입하기 때문에 분노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정치평론가 김민하씨는
<미디어스> 기고에서 “미래를 위해 당장의 빈곤함을 감수하며 매일 노력하고 살고 있을 뿐인데, 전혀 예상치 못한 재앙에 의해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세계라는 진실을 우리는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장소가 최근 젊은층 주거 비율이 늘고 있는 아파트 단지 내 상가 PC방이라는 점에서, 잔혹한 살인 사건에 대한 공포가 빠르게 확산했고, 이에 따라 분노도 쉽게 확산할 수 있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②논란의 ‘심신장애·심신미약’, 정확한 개념은?
형법 제2장 제1절의 이름은 ‘죄의 성립과 형의 감면’입니다. 아래에 나오는 형법 제10조에는 심신장애·심신미약이라는 단어가 각각 4번, 1번 등장합니다.
제10조(심신장애인)
①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
③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에는 전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즉, 형법상 ‘심신장애’는 정신장애 또는 정신기능의 장애를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조현병, 조울증과 같은 내인성 정신질환뿐만 아니라 치매나 최면상태 등의 의식장애 등도 포함됩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정신질환뿐만 아니라 음주, 약물중독, 충동장애도 법원에서는 심신미약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대법원 판결(83도3007, 1984년)을 보면, 법원은 심신장애 개념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습니다.
“형법 제10조의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 및 이와 같은 능력이 미약한 자라 함은 어느 것이나 심신장애의 상태에 있는 사람을 말하고, 이 양자는 단순히 그 장애 정도의 강약 차이가 있을 뿐 정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의 시비 또는 선악을 변별할 능력이 없는 경우와 정신장애가 위와 같은 능력을 결여하는 정도에 이르지 않았으나 그 능력이 현저하게 감퇴된 상태를 말한다.”
피의자 김씨는 22일 정신감정을 위해 공주 치료감호소로 이송됐습니다. 수사기관은 피의자의 심신 또는 신체에 대하여 감정할 필요가 있을 때, 일정 기간 동안 치료감호소나 병원 등에 보내 정신감정을 받도록 하는 ‘감정유치’ 제도를 시행합니다. 김씨는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여간 정신상태에 대해 의사와 전문가의 감정을 받게 됩니다.
③'심신장애·미약', 논란이 됐던 주요 사건은?
이달 초, 부산 해운대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사실상 뇌사상태에 빠진 군인 윤창호(22)씨에 대한 청와대 청원이 알려지면서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음주운전 주취감경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해당 사건을 언급하며 “재범 가능성이 높은 음주운전의 특성상 초범이라고 할지라도 처벌을 강화하고, 사후 교육시간을 늘리는 등의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음주운전뿐만 아니라 살인·강간 등의 흉악범죄에 대해서도 심신장애를 인정하는 사례는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2008년 여자 아이를 유인해 강간, 폭행하고 중상해를 입힌 조두순씨는 법원에서 검찰의 구형량인 무기징역보다 낮은 징역 1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검찰은 “조씨가 술에 취하면 정상적 행동을 하지 않는 자신의 성향을 알면서도 술을 마신 뒤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조씨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인데다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맞섰고, 법원도 조씨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2016년 여성들의 공분을 일으킨 ‘강남역 살인사건’의 피의자 김아무개(36)씨 역시 피해망상 등의 심신미약 상태가 인정돼 검찰의 구형량인 무기징역보다 낮은 징역 30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다만 심신미약이 인정된 경우임에도 중형이 선고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법원은 2015년 수원의 피시방에서 흉기를 휘둘러 1명을 숨지게 하고 3명에게 부상을 입힌 이아무개(42)씨에 대해 “이씨가 조현병을 앓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1·2심에서 모두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이씨가 흉기를 미리 준비했고, 피해자 수가 많은 데다 부상자들이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며 고통받고 있다”며 선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④심신장애?미약, 인정만 되면 감형받는다?
‘정신장애가 인정되면 무조건 감형을 받는다.’ 시민들의 우려와는 달리, 실제로 정신장애 범죄는 정신의 감정보다 법원에서 더 엄격하게 적용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조철옥 탐라대 경찰행정학교 교수의 논문 ‘강력범죄자의 정신이상 항변에 관한 연구’를 보면, 75명의 정신장애 범죄에 대해 감정의가 44명(58.7%)을 ‘심신상실’, 26명(34.7%)을 ‘심신미약’, 5명(6.6%)을 ‘책임능력이 있다’고 감정한 반면, 법원에서는 ‘심신상실’ 16명(21.3%), ‘심신미약’ 44명(58.7%), ‘책임능력이 있다’는 15명(20%)으로 판정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특히 감정의가 제시한 의견과 법관의 판결이 일치하지 않은 35명(46.7%)의 경우, 모두 다 감정의보다 법관이 형사책임능력을 무겁게 부과시킨 것으로 나타납니다.
해당 논문에서 조 교수는 감정 결과와 판결이 일치하지 않는 이유로 “감정의가 정신장애자들의 병적인 심신 상태와 정신과적 증상에 집중하는 데에 견줘, 법관들은 피고인의 외부 언행과 과거 경력, 재범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일반적인 예상보다 법원에서 좀 더 엄격하고 다양한 기준을 토대로 피고인의 책임 여부를 가린다는 뜻입니다.
피고인의 우울증만을 이유로 감형한 전례도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정신장애 범죄자에 대한 법원의 책임능력 판단에 대한 연구’ 논문을 보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피고인의 심신미약과 심신상실이 인정된 1·2심 판결 305건 가운데 우울증만을 이유로 심신장애가 인정된 사례는 한 건도 없었습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피의자가 우울증 진단서를 내는 것만으로는 심신장애 인정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 진단합니다. 박종익 강원대병원 정신과 교수는 “정신감정에서는 장애진단이 가능한 정신과적 질병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심신장애 여부를 결정한다”며 “감정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단순 우울증만으로는 법원에서 심신미약을 인정받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밝혔습니다. 금태섭 의원 역시 “최근 판례 경향을 보면 (심신미약의 경우에도) 엄중히 다루고 있다. 이 사건은 형벌이 크게 낮아질 가능성은 없다”고 봤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으로 촉발된 분노가 곧 심신장애·미약 감형제도의 존폐로 향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심신장애·미약 감형제도의 취지는 정상적인 의사결정 능력이나 사물 변별 능력이 없는 상태, 즉 자기가 한 행위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가 저지른 범죄는 고의적으로 의도를 갖고 범죄를 저지른 것과 다르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취지”라고 설명합니다. 공 교수는 다만 “현행 법체계에서 심신장애·미약의 기준과 원칙을 더욱 구체적으로 정해 양형기준을 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창현 교수도 “심신장애·미약에 대해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고, 동시에 치료감호 등의 조처로 재범의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⑤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성명으로 주장하는 내용은?
지난 19일,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씨는 “나는 강서구 피시방 피해자의 담당의였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장문의 글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올렸습니다. 남궁인씨는 해당 글에서 피해 환자가 병원으로 왔을 당시의 상황과 치료 과정, 치료 후 본인의 감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했습니다.
해당 게시글은 나흘 만에 20여만명의 ‘공감’을 받으며 온라인상에서 퍼졌습니다. 그러나 의사가 치료 내용을 환자나 환자 가족의 동의 없이 공개하는 것은 의료윤리에 위반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실제 의료법 제19조는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종사자가 업무를 하면서 알게 된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거나 부당한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한 병원 관계자는 “의료진이 진료 내용을 함부로 공개하지 않는 것은 숨진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모든 환자들의 개인정보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확실히 지켜져야 하는 일”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심신미약에 대한 논란이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낙인으로까지 이어질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큽니다. 지난 20일,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는 입장문을 내 “현재 가해자는 심신미약의 여부는 물론, 정신감정을 통한 정확한 진단조차 내려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가해자의 범죄행위가 정신질환에 의한 것이라거나, 우울증과 심신미약을 혼동하여 마치 감형의 수단처럼 비추어지는 것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많은 이들에 대한 또 하나의 낙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매우 안타깝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이어 “중대한 범죄는 사회의 안전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엄중히 처벌받아야 한다. 때문에 심신미약 상태의 결정은 단순히 정신질환의 유무가 아니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단과 심도 있는 정신감정을 거쳐 법원이 최종 판결을 내리는 매우 전문적이고 특수한 과정을 거친다”며 “정신질환과 심신미약은 동일선상에 있는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황금비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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