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은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듣고 광주에 갈 때 젖먹이였던 아기를 업고 갔죠. 저 ‘139번 광수’, 저 사람 등에는 왜 아기가 없습니까?” “아니, 아기를 업을 때도 있고 안 업을 때도 있죠. 일일이 아기를 다 업어서(다니나요)….” 지난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525호 법정. ‘왜 아기가 없느냐’는 변호사의 물음에 증인석에 앉은 심복례(75)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법정 스크린에 띄운 흑백사진엔 1980년 5월23일 오른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남편의 주검 앞에서 오열하고 있는 37살의 심씨가 있었다. 변호사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아이를 업고 광주에 갔다는 심씨의 설명과 달리 사진 속 그는 아이를 업고 있지 않다며 증언의 신빙성을 문제 삼았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 김경진 판사는 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된 극우 보수 논객 지만원씨 등에 대한 12번째 공판을 진행했다. 지씨 쪽은 5·18 민주화운동을 두고 ‘북한 특수군이 위장 침투한 폭동’이라고 주장한다. 당시 사진 속 시민군과 유족을 ‘광주에 내려온 북한 특수군’을 줄여서 ‘광수’라 멸칭하며 왜곡을 일삼는다. 2016년 4월 기소 이후 2년6개월째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날 재판에는 심씨를 비롯해 광주시민 5명이 증인으로 나왔다.
지씨 쪽은 심씨를 ‘139번 광수’라고 부른다. 북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첫 부인과 동일인물이라는 막무가내 주장을 한다. 심씨의 남편 고 김인태(당시 47)씨는 고등학교 졸업 뒤 광주에서 살던 장남에게 하숙비를 전해주러 갔다가 공수부대원에게 맞아 숨졌다. 옛 광주교도소 근처 야산에 암매장됐다가 시민군에 의해 발견됐다. 남편의 주검 앞에 오열하는 심씨의 모습이 사진으로 남았다. 지씨는 사진 속 심씨를 북한 특수군으로 둔갑시켰다. 심씨는 50여분 진행된 증인신문 끝에 이렇게 말했다. “시골에 사는 나를 간첩으로 몰아서 이 지경이요. 내가 뭔 죄가 있다고. 남편 죽은 죄밖에 없소.”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곽희성(56)씨는 당시 시민군이었다. 18살의 곽씨가 총을 들고 시민군 4명과 광주 와이엠시에이(YMCA) 건물 옥상에 올라가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이 사진으로 남았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제 모델인 독일인 기자 고 위르겐 힌츠페터가 찍은 사진이다.
지씨 쪽에게 곽씨는 ‘184번 광수’이다. 지씨 쪽은 힌츠페터가 찍은 사진 등을 스크린에 띄우고 곽씨에게 물었다. “(사진 배경인) 전일빌딩의 상단부가 아니라 지상부와 2~3층 정도가 보이는 상황입니다. 사진 속 인물은 옥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데 아닙니까?” 옥상에서 사진이 찍힌 것이 아니라 와이엠시에이 근처 전일빌딩 앞 지상에서 찍힌 사진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검찰은 “옥상에서 찍어도 충분히 이런 각도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증인신문 절차를 마무리하며 검찰이 곽씨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 사진을 두고 북한 특수군으로 지목당하는 것에 대해 증인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곽씨가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대한민국에서 자라고 대한민국에서 헌법과 법을 지키면서 사는 사람이 북한군이라 칭해졌을 땐 권리를 다 뺏긴 것 같고요, 분노가 말할 수가 없어요. 내 자식들이 자기 아빠가 북한군 광수라고 칭해질 때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5·18이 진정으로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것을 저분들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날 재판은 5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지씨 관련 재판이 많아 다음 공판은 내년 1월10일에야 열린다.
한편 광주지법은 25일 ‘5·18 북한군 배후설’을 주장하는 화보를 배포한 지씨에게 5·18 단체 4곳과 당사자 5명에게 모두 9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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