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조사실로 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법조기자가 참 고약한 직업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가령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구속영장이 발부될지 말지 예상 기사를 써야 했던 지난주가 그랬다. 독자들의 관심사라 취재는 해야 하지만 예측이 한쪽으로 기울면 위험하다. 그래서 ‘발부 반, 기각 반’ 안전하면서 비겁한(?) 기사를 쓰기 일쑤다.
아무튼 취재 중 나온 얘기다. 검찰 고위직을 지낸 변호사다.
“내 생각에, 이번 영장은 발부할 것 같아요. 왜냐고 묻고 싶겠지? 이번에도 기각하면 법원으로서는 리바운드(반등)가 어렵지 않겠어요? 여당이 특별재판부까지 들고 나오면서 법원이 너무 코너에 몰린 상황이라. 이번에도 기각하면 ‘봐라, 저놈들은 구제불능이다’ 이런 여론이 더 강하게 형성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으니까. 일단 발부해놓고 본안 재판에 가서 무죄를 쓰겠지.”
법원이 특별재판부 입법 논의에 자극받아 영장을 발부한다?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일단 법원으로서는 ‘소나기’를 피하고 봐야 하니까.” 검찰 고위 관계자도 임 전 차장의 영장 발부를 낙관했다고 한다. “지금 상황에서 기각했다가 법원이 무슨 험한 꼴을 당하려고.” 결국 ‘험한 꼴’이란 특별재판부가 들어서는 상황일 수 있다.
정말 묘하긴 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특별재판부 도입을 골자로 하는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한 게 8월14일인데, 그 뒤로 두 달 넘게 여권에선 별 논의가 없었다. 그런데 임 전 차장 구속영장 청구가 예상되던 지난 23일 아침 홍영표 원내대표가 돌연 입법 추진 방침을 밝힌 것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임 전 차장의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니, 우연이라고만 보기 어려운 흐름이다.
형사사건을 많이 다뤄본 한 중견 변호사도 영장 발부를 예상했었다. 그런데 근거는 조금 달랐다.
“이번에는 발부할 거라고 본다. 그런데 영장이 발부되면 되레 바빠지는 건 검찰이 될 거다. 쫓던 입장에서 쫓기는 입장이 된달까. 나도 저 사건 돌아가는 상황은 조금 아는데, (구속된 피의자의 기소 시한인) 20일 안에 저 방대한 양을 조사하는 게 쉽지 않을 거다. 게다가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이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 관련 진술도 받아내야 할 텐데, (임 전 차장이) 구속되면 협조할까? 그래서 법원이 되레 검찰 머리 위에 20일짜리 ‘시한폭탄’ 떨구려고 영장 내줄 거라는 우스개도 들린다.”
27일 새벽 임 전 차장의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다음 날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장 출신 변호사에게 ‘독해’를 부탁했다. 그는 임민성 영장전담부장판사의 발부 사유에서 “범죄사실 중 상당한 부분에 대하여 소명이 있고”라는 대목에 주목했다.
“발부 사유 중에서 ‘상당한 부분’이 아주 미묘하게 읽힌다. 범죄사실이 한 가지면 해석도 간단하다. 하지만 이번처럼 범죄사실만 30개에 죄명도 7~8개인 상황에선 다르다. 저건 검찰이 청구한 범죄사실 중 70~80%가 입증됐다, 그러니까 전부 다 입증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소명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암시하고 있다. 그래도 영장 발부는 할 수 있으니까. 물론 어느 게 소명되고 안 됐는지는 구체적으로 쓰여 있지 않으니 알 수 없다. 검찰이 기소할 때까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뜻도 된다.”
영장이 발부된 임종헌 전 차장의 혐의 중 제일 중요한 것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다. 법원행정처 차장의 직권을 남용해 행정처 실·국장이나 심의관, 각급 법원장 등에게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 했다는 뜻이다. 구속영장에는 임 전 차장의 권한 남용 의심 사례들이 적시돼 있다고 한다. 임 전 차장의 USB 이동식 저장장치에서 나온 문건, 심의관들의 업무일지와 진술 등이 주요 증거로 제시됐다. “심의관에게 시킨 것 자체, 법원장에게 확인하라거나 (재판부에) 전달하라고 한 것, 그 자체로 직권남용이 된다고 봤다.” (검찰 관계자)
하지만 임 전 차장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선 반론이 없지 않다.
“일선 판사를 하다 행정처에 들어오면 지위가 달라진다. 더 이상 재판하는 법관이 아니라 사법행정 사무를 보는 공무원에 불과한 것이다. 어찌 보면 일반 공무원, 회사원과 다를 바 없다. 법원 내규에도 심의관의 직무는 포괄적으로 규정돼 있을 뿐이다. 행정처 실무는 사실상 차장이 다 총괄하는데, 차장이 ‘이건 시켜도 되고 저건 안 되고’ 이런 식으로 일도양단할 수 있을까.” (법원행정처·고법 부장 출신 변호사)
변호인의 반응도 그 지점을 정확히 짚고 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황정근 변호사가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이다. (나중에 삭제했다) 황 변호사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구속영장 실질심사)이 처음 도입된 1997년 형사소송법 개정 때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으로 실무를 총괄했는데, 임 전 차장도 당시 송무심의관이었다.
“어느 시기에 고위 공직자로서 열심히 수행한 공무 집행에 대해 그것을 이제 직권남용이라고 하며 범죄로 의율했다. 그건 ‘사법행정권 일탈·남용’일지언정 법리상 직권남용죄의 성립에는 의문이 있다. (…) 분명히 법리보다는 정치적 고려가 우선된 부당한 구속이다. 윗선을 수사하기 위한 수단구속이다. 조만간 윗선 수사를 위한 검찰 소환 조사가 예상된다. 그러나 너무나 부당한 구속이기 때문에 검찰수사에는 일체 협조할 수 없다.”
변호사가 검찰을 향해 쓴 글치고는 강도가 세다. 좀 거칠게 줄이면 ‘임 전 차장의 협조 없이 (양승태·박병대 등) 윗선 수사 자신 있어?’라고 검찰에 묻고 있다. 이 사건에선 임 전 차장이 글자 그대로 ‘키맨’이다. 임 전 차장을 중심으로 위로는 박병대-양승태, 아래로는 심의관들이 연결되는 구조다. “임 전 차장이 입을 다물어 버리면 어려움을 겪는 건 검찰이라는 걸 알고 하는 얘기”(검찰 관계자)인 것이다.
안철상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29일 열린 국회 종합감사에서 사법 농단 의혹 사건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 도입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최종 ‘타깃’으로 삼고 있는 검찰로서는 임 전 차장 구속 시점부터 20일 안-벌써 사흘이 지나갔다-에 최대한 진술 협조를 받아내야 한다. 임 전 차장의 구속영장에는 ‘윗선’인 양·박 두 사람과 임 전 차장이 ‘공모’ 관계라는 정도만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검찰은 ‘비장의 무기’를 구속영장에서 노출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직접 관련이 없으면 빼고 청구하는 일이 흔하다. 하지만 검찰 쪽 얘기를 종합해 보면, 아직 ‘결정적인 무엇’을 확보하지는 못한 듯하다.
“지금까지 수사에서 양승태, 박병대 두 사람에 대해서는 일부 진술 증거가 있지만, 대법원의 비협조로 자료가 부족하다. 아직은 취약하다.” (검찰 관계자) 게다가 “일단 기소되고 나면 검찰 손을 떠난 거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20일이 중요하다.” (검찰의 다른 관계자)
앞서 전한 ‘시한 폭탄론’은 단순한 우스개가 아닐 수 있다.
“야구에 비유하면 이런 거다. 그동안 법원은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하면서 계속 ‘삼진아웃’을 시켰다. 그러니 원성이 인 거지, 이게 뭐냐고. 가만 보다 안 되겠으니 전략을 바꿨다. 내보낸 뒤에 잡는 거로. 일단 ‘포볼’(영장)을 던져서 ‘출루’를 시킨 다음 맞춰 잡거나 도루할 때 잡자는 거지. 한마디로 본안 재판에서 보자는 거다.” (검찰 관계자)
그런데, 그 ‘본안 재판’을 하는 법원의 최근 태도 변화가 주목할 만하다.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에 대한 판단이 눈에 띄게 변화했다. 인정 범위를 크게 좁혔다. 직권남용 혐의자가 부당한 지시를 했더라도 ‘법적 직무권한’에 없는 일을 하면 직권남용을 인정하지 않는다. 직권이 없으니 남용도 없다는 식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소송 지원’ 지시를 무죄로 판단한 1심 판결이 대표적이다. 판결문 설명자료를 보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공무원이 형식적·외형적으로 자신의 일반적 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한 직무 집행을 하여야 한다.” 그런데 “다스 소송 지원 지시는 대통령의 직무권한에 속한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결론은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가 될 수는 있으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였다.
법원이 이 논리를 법원행정처 차장(임종헌) 혹은 법원행정처장(박병대)이나 대법원장(양승태)에게 적용한다면 어떤 결론이 나올까.
물론 최근 법원의 ‘협소한’ 해석이 사법 농단 사건 재판을 염두에 둔 ‘사전 포석’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어쨌든 검찰로서는 임 전 차장 구속으로 짐이 배가됐다. 결정적 증거(자료)를 찾아내고, 임 전 차장의 진술도 받아내고, 법원의 좁은 해석을 뚫을 논리도 개발해야 한다. 갈 길이 멀고 급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의 상황 전개에서 가장 주목되는 변수는 ‘특별재판부’ 도입 여부다. 해오던 대로 기존 법원의 재판부가 맡으면 결론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특히 이 사건의 핵심 죄명이 될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에 대해 최근의 협소한 해석이 그대로 유지될 공산이 크다. 그러나 반대로 특별재판부가 도입되면?
특별재판부 도입 논의는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합의한 여·야 4당과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이 팽팽히 맞서면서다. 법원은 물론 반대한다. 대법원의 입장은 29일 국회 종합감사에서 드러났다. 안철상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사건 배당이야말로 재판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별법에서처럼) 특정인이 (재판부를) 지정한다는 것은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박주민 의원: 불편부당한 재판이 이뤄지도록 특정 판사를 배제하는 것이 국회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안철상 처장: 소극적으로 법관을 배제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구체적으로 사건을 맡을 판사를 적극적으로 지정하는 것은 문제다. 특별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임 전 차장의 구속 만기는 11월15일. 그때까지 특별법이 처리되지 않으면 임 전 차장 재판은 기존 방식대로 재판부 배당이 이뤄진다. 물론 나중에라도 특별재판부 도입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재배당이 가능하다.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