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에서 배송업무를 하는 이종진(36)씨는 얼마 전 3살 난 딸아이가 40도에 이르는 고열증세를 보여 병원 응급실에서 밤을 새야 했다. 뜬눈으로 밤을 샌 이씨는 배송차량을 운전하다 졸음운전으로 사고가 날 것을 우려해 당일 새벽 연차를 신청했다. 그러나 회사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이씨를 ‘결근’ 처리했다. “연차휴가는 사용 3일 전까지 회사 시스템에 신청해 승인된 것만 인정한다”는 취업규칙 때문이었다. 이씨는 “아이가 몇 월 며칠 아플 예정인지 미리 알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당일 연차를 신청하면 결근 처리가 된다는 회사의 통보에 화가 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쿠팡맨’들이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휴가권을 박탈당하고 있다며 회사를 상대로 문제제기에 나섰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이하 쿠팡노조)는 “쿠팡 본사가 근로기준법 제60조에 따른 연차휴가의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며 고용노동부 서울동부지청에 진정서를 접수했다고 1일 밝혔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60조 5항은 ‘사용자는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휴가를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 한정해 예외를 인정한다.
쿠팡이 지난 8월 공지한 ‘연차휴가 사용 원칙 재확인’ 내용. 쿠팡노조 제공.
그러나 쿠팡이 지난 8월 전국 40여개 캠프(지점)에 보낸 ‘연차휴가 사용 원칙 재확인’ 공지를 보면, “3일 전까지 회사 시스템에 신청하지 않은 근태 사항은 증빙 여부에 따라 ‘무단결근 또는 결근’으로 처리한다”고 나와 있다. 특히 무단결근 또는 결근 등이 발생하면 “인사상의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내용도 명시돼 있다.
쿠팡은 이 같은 방침이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쿠팡 쪽은 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병원 진료나 가족을 돌봐야 하는 등의 긴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 진료내역 등 증빙자료를 제출하면 결근 처리는 되지만 업무평가에 영향을 주진 않는다”고 해명했다. 쿠팡맨들의 배송업무 특성상 계획되지 않은 당일 연차는 다른 동료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만큼 이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하웅 쿠팡노조 위원장은 “정규직은 물론이고, 전체 쿠팡맨의 70%가량을 차지하는 비정규직들은 정규직 전환의 기준이 되는 인사평가에 민감한 만큼 정말 긴급한 상황이 있더라도 당일 연차를 신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질적인 연차 신청 마감이 휴가일로부터 ‘4일 전’이라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하 위원장은 “금요일날 연차를 사용하려면 월요일 자정까지 신청을 하고, 화요일에는 회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쿠펀치’(근태관리 프로그램)에서 오늘(1일)로부터 3일 뒤인 4일 연차를 쓰겠다고 설정을 하면 시스템상 등록 자체가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김영관 변호사는 “쿠팡처럼 취업규칙에서 회사의 사전승인을 받은 경우에만 연차휴가를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은 근로기준법 제60조의 원칙과 예외가 전도된 것”이라며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볼 여지가 높다”라고 지적했다.
실제 앞서 2016년 8월 서울행정법원은 운전기사들의 연차휴가로 버스운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며 직원들의 휴가시기를 제한한 버스여객운송업체에 대해 ‘근로자의 연차휴가는 통상 예견되는 일인 만큼 결원을 예상해 대체 근로자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것은 회사의 잘못’이라며 근로자가 자신이 신청한 휴가일에 출근하지 않은 것은 무단결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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