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스태프들과 함께한 극장 인터뷰]
장시간 노동·쪼개기 계약·임금체불 만연한 영화제
“영화제가 사람 손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못해요…
“이 모든걸 겪고 영화제를 즐겁게 즐길 수 있을까요”
장시간 노동·쪼개기 계약·임금체불 만연한 영화제
“영화제가 사람 손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못해요…
“이 모든걸 겪고 영화제를 즐겁게 즐길 수 있을까요”
영화제에서 일만 하던 사람들이, 자신이 일했던 극장에 다시 모였습니다. 화려해보이는 영화제 뒤에는 영화를 선정하고, 상영본을 수급하고, 자막을 검수하는 노동자들의 손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노동조건은 ‘6대 영화제’라는 이름과는 걸맞지 않게 열악합니다. 영화제가 가까워오면 야근이 빈번해지지만, 야근수당은 받아본 기억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영화제들이 1년 미만의 단위로 쪼개기 계약을 하는 탓에 스태프들은 본격적으로 영화제가 시작하면 또 다른 영화제로 옮겨타기 위해 구직활동을 시작합니다.
영화제에서 일했던 스태프들의 입을 통해 영화제 실상을 들여다봤습니다. 지난 한 달동안 영화제 스태프들의 제보를 받고 이들의 노동조건을 조사했던 청년유니온도 함께 했습니다.
#1. 영화제 뒤에 사람이 있다
지난 5년간 여러 영화제를 전전하며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일했던 아이언맨은 “작은 영화제일수록 코디네이터의 역할이 광범위하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을 적게 쓰는 탓에 영사 프린트, 감독 초청, 카탈로그 제작 등 많은 역할들이 코디네이터들에게 몰리기 때문입니다. 아이언맨은 “작은 영화제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상영작이 100편 가까이 있었다. 그 자료를 다 받아서 웹페이지에 올리고, 카탈로그를 만드는 등 모든 과정을 혼자 했었다”며 “영화제가 시작하기 전까지 거의 한 달동안 퇴근을 하지 못했다”고 기억했습니다. 아이언맨이 말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영화제는 영화제 기간동안 영상사고 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저한테 감사해야해요.”
‘영화제’에서 일하기 시작하는 사회초년생 스태프들이 그렇듯, 스크림 역시 그저 ‘영화가 좋아서’ 부산국제영화제 스태프에 지원했습니다. 영화제가 열리기 전 상영작들의 자막에 문제가 없는지, 화면에 문제가 없는지 검수하는 영사자막팀이었습니다. 스크림은 하루에 네편 이상의 영화를 보며 검수작업을 해야했는데, 한 작품당 기본 3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검수하다 문제라도 생기면 그때부터 근로시간이 쭉쭉 늘어나는거에요. 본격적으로 검수작업 시작하고 나서 정시 퇴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스크림이 덧붙였습니다.
#2. 만연한 장시간 노동과 임금체불
청년유니온의 조사를 보면, 영화제 스태프 34명의 영화제 개막 전 1개월간 하루 평균노동시간은 13.5시간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영화제 개막이 가까워질수록 총 노동시간은 증가하고,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연장·야간·휴일근로 모두 증가했던 것이죠. 특히 인터뷰를 한 34명 가운데 법정근로시간인 주68시간 이상 일했다는 사람은 절반인 17명, 주90시간 이상 일했다는 사람도 5명에 달했습니다.
스태프들의 장시간 노동은 임금체불로 이어졌습니다. 6대 국제영화제(부산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디엠지(DMZ)다큐멘터리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가운데 디엠지다큐영화제를 제외한 5곳이 시간외 수당의 전부를, 혹은 일부를 미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청년유니온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일했던 비정규직 스태프들의 체불임금을 추산한 결과, 영화제가 진행된 열흘간 149명의 스태프들이 받지 못한 임금은 약 1억2천400여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영화제 감독이나 배우들만 참석하는 비공개 행사인 ‘리셉션’ 행사에만 1억8천700만원의 예산을 편성한 것과는 대비되는 현실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쪽은 시간외 수당 미지급에 대한 질문에 이같이 답했습니다. “저희 직원들은 ‘시간외 수당 필요없다, 좀 자율적인 문화로 창의적으로 일하고 싶다’고 대부분 동의를 했어요. 그래서 시간외 수당을 안 받고 있거든요.” 언제부터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조직 문화’가 ‘임금체불’과 동의어가 됐을까요?
#3. 쪼개기 계약, 영화제엔 미래가 있을까
4개월, 1개월, 11개월… 디엠지(DMZ) 국제다큐영화제에서 1년 6개월동안 일했던 ㄱ씨가 3번에 걸쳐 영화제쪽과 쪼개기 계약을 맺은 기간입니다. 영화제에서 스태프들의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최소한으로 계약기간을 잡다보니, 상시적으로 필요한 인력도 근로계약을 쪼개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청년유니온이 인터뷰한 34명 가운데 32명은 임시직 근로자였고, 이들의 평균계약기간은 4.4개월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같은 영화제에서도 2번에 걸쳐 계약을 맺은 경우는 15건에 달했고, 3번에 걸쳐 근로계약을 맺은 경우도 7건이나 됐습니다. 고용보험 수급조건을 충족하는 최소기간(주5일 기준, 최소 7.5개월 이상)동안 고용되지 못해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스태프는 절반에 가까운 16명이었습니다. 청년유니온 나현우 팀장은 “경력이 쌓인 스태프들은 이곳저곳 영화제를 옮겨다니면서 일하고 있지만, 심층면접 결과 단기계약으로 인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분석했습니다.
“처음 영화제 스태프로 들어왔을때는 영화를 좋아하든 영화제를 좋아하든 다들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들어오잖아요. 그런데 이 업계 자체에 대해서 질색하고 손을 떼고 나가는 경우가 안생겼으면 좋겠어요.” 5년째 영화제에서 일하고 있는 스태프의 호소입니다. 장시간 노동, 임금체불, 쪼개기노동…영화제 뒤에서 묵묵히 노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미래도, 영화제처럼 화려해질 수 있을까요.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등장인물
.아이언맨: 올해로 영화제 경력 5년차. 친구따라 영화제 일을 시작했지만 열악한 노동조건을 견디지 못한 친구는 떠나고 혼자 남았음. 가끔 “앞으로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같은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옴.
.스크림: 올해 처음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일했음.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야근수당 없다”는 말을 듣고 17일만에 퇴사. 영화제쪽에 야근수당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너같은 애는 23년만에 처음봤다”는 답변만 들음.
.나 팀장: 청년유니온 기획국장. 어쩌다 영화제 스태프들의 제보를 받는 바람에 이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조사함.
.아이언맨: 저는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어요. 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영화제에서 틀 영화를 선택을 하면, 그 영화를 틀 때까지의 자료수급, 상영본 확보, 감독 초청 등 전반적인 업무를 하는 직책이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입니다.
.스크림: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사자막팀의 프로젝션 오퍼레이터로 일했고요. 주로 담당했던 일은 영화제 시작하기 전에 상영작들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보는 검수 작업을 해요. 그리고 영화제가 시작하면 영사실에 들어가서 영화를 틀고, 영사에 문제가 있을 때 바로 조처를 취하는 일까지 했습니다.
.아이언맨: 작년에 영화제를 전전하다 한 영화제에서 제안을 받았는데, 거기서 제시한 금액이 세 달에 200만원이었어요. 석달 통틀어서 200만원. ‘그렇게 받고는 일 못한다’고 얘기했더니 오히려 적반하장식으로 “네가 원하는 금액을 말해보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아직도 ‘내 인건비를 이렇게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는 업계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죠.
.스크림: 처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오리엔테이션을 할 때 계약서에는 야근수당이나 초과수당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주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야근을 할 경우 식대로 만원 정도만 나오더라고요. 담당 팀장님에게 “적어도 일한 시간만큼 최저시급은 맞춰주셔야 하는거 아니냐”라고 말했더니, 팀장님이 “이미 계약서에 사인을 했으니까, 이대로 일을 할 거면 하고 아니면 그만두라”고 하시더라고요.
.스크림: 사실 영화제에서 계속 일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거든요. 학교 졸업하면 구직을 해야하니까요. 그런데 이번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일을 해봤더니 고참급들을 보더라도 노동 조건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현실을 느꼈죠. 이제 다시는 영화제를 못 가겠더라고요.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먼저 드니까요.
.아이언맨: 상시 사업이 있는 영화제들은 영화제가 끝나고 나서도 할 일이 있어요. 그렇지 않은 경우라고 하더라도 최소한으로 필요한 스태프들은 계속 고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거죠…보통 지역 영화제의 경우 지자체 지원금을 받는데, 일하는 사람들의 고용을 보장해주면서 인건비를 주느니 차라리 그 돈으로 다른 사업을 더 하는게 낫다는 입장이 많아요. 영화제가 사람 손으로 굴러간다는 생각을 안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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