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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26년 전 ‘사형수’ 된 방화범…지금 재판 받았으면 달랐을 운명

등록 2018-11-07 05:00수정 2018-11-08 10:00

사형제, 폐지할 때 됐다 ③
판결문으로 생존 사형수 55명의 삶 돌아보니

<한겨레>는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사형제 폐지를 위한 기획 보도를 연재하고 있다. “사형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의 대답을 찾기 위해서 현재 살아 있는 사형수 57명(군 사형수 4명 제외)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기초 자료는 판결문이었다. <한겨레>는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사형수 57명 가운데 55명의 1·2·3심 판결문 150여건을 입수해 사형수들의 범죄 유형과 삶의 궤적 등을 분석했다. 판결문은 익명 처리되어 있어 당시 사건 기사 등으로 신원을 확인했다. 판결문에 기재되지 않은 내용이나, 판결문이 없는 2명의 생존 사형수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사형 제도를 연구해온 김상균 백석대학교 경찰학부 교수의 연구 자료와 기사 등을 참고해 보강했다.

<한겨레> 자료 사진
<한겨레> 자료 사진
“피고인을 사형에 처한다.”

<한겨레>가 금태섭 의원실에서 입수한 생존 사형수들의 판결문 ‘주문’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문구다. 판결문에는 피고인이 받아야 할 형벌을 적는 ‘주문’에 이어 ‘범죄사실’이 적힌다. 생존 사형수들의 범죄사실은 ‘주문’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하다. 하지만 판결문 마지막에 있는 ‘양형 이유’에 담긴 피고인의 삶을 보면, 끔찍한 범죄의 책임을 모조리 피고인 한명에게 물은 뒤 생명을 앗는 것이 “반인륜적이고 흉악한 범죄에 대하여 경종”을 울리는 유일한 방법인지 의문이 든다. 흉악 범죄의 책임을 피고인에 대한 ‘엄벌’로만 묻는 것은 그 범죄가 발생하게 된 사회적 문제를 가리는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 흉악한 범죄에 앞선 끔찍한 삶

범행 당시 서른살이었던 강민창(가명)씨는 자신이 살던 고시원에 불을 지른 뒤 도망 나오는 이들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6명의 안타까운 생명이 그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판결문을 보면, 용서받지 못할 범죄의 이면에 그만큼 끔찍했던 강씨의 삶을 읽을 수 있다.

강씨는 4남1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2월에 태어나 다른 친구들보다 한해 일찍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몸집이 작고 운동신경이 나빠 친구들에게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했다. 중학교에 가서는 같은 반 친구들에게 볼펜이나 가시 같은 것으로 손톱 밑부분을 찔렸다. 가슴을 압박해 기절시키는 ‘기절 놀이’의 단골 대상이었다. 고등학교 때도 성적이 나빠 선생에게 맞았고, 친구들에게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했다. 성실히 살려고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일반판금기능사 2급 자격증을 따 냉장고 부품 생산라인에서 조립 및 용접 일을 했다. 입사 8개월 뒤에는 자신의 생산라인에서 조장을 맡아 조원 4명을 책임지기도 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사태가 터지면서 월급과 보너스가 절반으로 줄었다. 회사를 그만뒀다. 그 뒤 단란주점 웨이터와 다단계 회사 등을 전전하며 살았다.

그는 여러번 세상을 떠나려 했다.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던 중학교 1학년 때가 처음이었다. 농약을 마셨지만 응급실로 옮겨져 살아남았다. 이듬해에도 집에 있던 외양간에서 목을 맸다. 입대를 위해 고향에 돌아가서도 수면제를 먹었다. 강씨는 그렇게 여러차례 세상을 떠나려 했고, 또 실패했다. 범행 직전 그는 고시원에서 자신의 삶이 막다른 곳에 이르렀다고 생각해 불을 지르고 사람들을 해했다.

6명의 목숨 빼앗은 ‘고시원 방화범’
학창시절 왕따·구타·괴롭힘…
사회 나와서도 다단계회사 전전
삶이 막다른 곳 이르자 범행

용서받지 못할 범죄의 이면에는
그만큼 견디기 힘든 삶이 있었다

불우한 시절을 보냈다는 것이 잔혹한 범죄의 변명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범죄는 사회와 무관하게 홀로 태어나지 않는다. <한겨레> 분석 결과, 생존 사형수 57명 가운데 판결문에 불우한 어린 시절이나 어려운 경제형편 등이 언급된 경우는 27건(미확인 23건)이었다. 재판부가 피고인의 삶이 평범했다고 판단한 경우(7건)보다 4배 가까이 많았다.

특히 사형수들의 판결문에서는 가정폭력을 경험한 사례가 자주 확인된다. “사망한 피고인의 부친은 생전에 피고인의 모친을 심하게 구타하는 습벽이 있었고 이를 목격하며 자라온 피고인의 성격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이는 사실” “양부모의 친자들로부터 주워온 자식이라는 놀림을 받는 등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라 (중략) 오로지 피해의식과 공격적 성향만이 남아 이 사건의 먼 동기가 되었다” “아버지의 심한 폭력을 겪게 되면서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충동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피고인의 어머니를 자주 폭행하는 아버지와 피고인을 학대하는 형의 영향” 등의 대목이 그 흔적이다.

모든 일을 사회의 책임으로 떠넘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일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떠넘길 수도 없다. 사형수들을 오래전부터 연구해온 김상균 백석대학교 경찰학부 교수는 “사형수 중에는 부모에게 학대를 당하거나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란 경우가 많다. 이들은 사회가 자신이 당한 폭력에 무관심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회적 환경이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떨어뜨리고 공격성을 부추기는 등 사이코패스적인 경향을 띠게 하는 것이다. 많은 강력 범죄를 사회가 배양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사형은 범죄가 낳는 다양한 문제를 가장 쉽게 해결하는 방식이다. 강력한 처벌로 국가의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엄벌주의’는 국가가 범죄 피해자를 지원해야 하는 책임을 소홀하게 여기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외국 연구를 보면 사형은 범죄 피해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있다. 하지만 그 영향이 긍정적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연구의 결론이다. 많은 사형제 폐지론자가 정부가 사형이라는 손쉬운 방법이 아니라 피해자 지원 등 범죄 문제 해결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죗값은 누구에나 공평한가

<한겨레> 분석 결과, 1심 재판을 기준으로 생존 사형수의 70% 넘는 40명이 국선 변호사의 변호를 받았다. 1심에서 사선 변호사를 선임한 경우는 19%인 11명에 불과했고, 6명은 국선·사선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국선 변호사가 사선 변호사보다 변호 실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뛰어난 국선 변호사도 많다. 하지만 국선 변호사는 여러 사건을 동시에 담당해야 하므로 한 사건에 집중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중요한 사건일수록 재판을 대형 로펌에 의뢰하거나 사선 변호사를 여럿 선임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생존 사형수 대부분은 자신의 생명이 오가는 재판에서도 따로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아 국선 변호사의 변호를 받았다. 형사 재판에서는 피고인이 별도로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을 경우, 국선 변호사가 자동으로 선임된다.

사형수 사선 변호사 19%뿐
“경제적 실패로 범행” 이유 많아
대기업 사주처럼 ‘변호’ 받았더라면…

양형기준 마련 이후 사형선고 줄어
‘종교시설 방화 14명 사망’은 사형
‘대구지하철 192명 참사’ 무기징역
사형 선고 형평성에 의문도

이들이 사선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한 것은 가난 때문으로 보인다. <한겨레> 분석 결과, 생존 사형수의 40%인 23명이 범행 당시 무직이었다. 직장인 등은 18명이었지만, 이들 가운데 여럿은 산업연수생이거나 식당 종업원, 대리운전 기사 등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지 못했다. 경제적 곤란이 범행을 저지른 이유가 된 경우도 많았다. “군 복무 후 의류매장에 취업하여 업무능력을 평가받아 점장으로 승진하였고, 자신의 사업체를 차리는 등 (중략) 거액의 부채만 남긴 채 사업에 쉽게 재기할 수 없는 여건에 좌절한 나머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된 점” “다니던 회사마저 부도가 나 직업을 잃고 집과 자동차 등이 압류, 경매됨으로써 가족의 부양과 자녀 교육이 더욱 어렵게 되어 절박한 심정” 등이 경제적 실패로 인해 범행을 저지른 경우다. 이들이 대기업 사주나 유력한 정치인들처럼 최선의 변호를 받았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변론에 따라 2~3년의 형량 차이가 나는 것은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생명을 박탈하는 사형과 무기징역이 변호사의 역량이나 어떤 재판부를 만나느냐 등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한민상(가명)씨는 생존 사형수 가운데 유일하게 살인이 아닌 현주건조물 방화치사상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부인이 가정을 소홀히 하자 특정 종교 때문이라고 생각해 1992년 해당 종교 시설에 불을 질러 14명을 숨지게 했다. 반면 2003년 192명의 사망자를 낸 대구지하철 참사의 범인은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됐다. 사형수들의 판결문을 분석하고 있는 이덕인 부산과학기술대 경찰경호과 교수는 “한민상씨 사건과 대구지하철 참사 사건을 비교해보면, 사형 선고에 형평성이 있는지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법원에서 (사형이 주로 선고되는) 살인죄에 대한 ‘양형 기준’(형량을 정하는 기준)을 마련한 것이 2009년이다. 그 뒤 사형 선고가 많이 줄어드는 추세다. 형량을 엄격하게 보니 사형 선고 사건이 줄어든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2009년 이전에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은 그 뒤에 재판을 받았다면 무기징역을 선고받을 수도 있었다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 사형은 흉악 범죄를 막을 수 있나

사형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요 근거 가운데 하나는 ‘위하(위협) 효과’다. 사형이 범죄를 억제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실제 생존 사형수들의 판결문을 보면, 위하 효과를 염두에 둔 대목이 여럿 나온다. “황금만능주의와 인명 경시현상이 만연되어가는 현대에서 사회를 방위하기 위하여서는 이 사건과 같이 반인륜적이고 흉악한 범죄에 대하여는 경종을 울리지 않을 수 없다” “죄책이 심히 중대하여 죄형의 균형이나 범죄의 일반예방적인 견지에서도 극형이 불가피하다” “인간의 생명을 부정하는 극악한 범죄에 대한 일반예방을 위하여” 등이 사형을 선고한 재판부의 판단이다.

하지만 사형이 종신형 등에 견줘 위하 효과가 크지 않다는 반론은 법조계에서도 나오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10년 2월 5(합헌) 대 4(위헌)의 의견으로 사형 제도가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당시 김종대 재판관은 소수의견에서 “사형 제도를 통해 일반예방의 목적이 달성되는지도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김희옥 재판관은 “사형 제도는 범죄인을 사회 전체의 이익 또는 다른 범죄의 예방을 위한 수단 또는 복수의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제도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사형 제도 연구가 가장 활발히 진행되는 미국에서도 사형 집행과 살인 범죄 증감의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실제 미국 콜로라도대학 연구진이 2008년 범죄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사형 제도가 범죄예방에 효과적이라고 믿지 않는다”는 응답이 88.2%로 압도적이었다. 김준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은 “사형이 (종신형 등) 장기형보다 범죄예방 효과가 크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 국외 주요 연구 결과이다. 이런 상황에서 위하 효과 때문에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적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범죄예방을 위한 다른 노력이 더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환봉 신민정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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