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4일 보건의료단체 대표 등과 민갑룡 경찰청장이 응급실 폭력 사건 방지 대책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경찰청 제공
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을 폭행해 다치게 한 경우 최소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는 방향의 법 개정이 추진된다. 벌금형 등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의 여지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와 경찰청은 11일 ‘안전한 응급실 진료 환경을 위한 응급실 폭행 방지 대책’을 내놓았다. 우선 폭행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로 했다. 현행 응급의료법은 폭행·협박·위계·위력, 그 밖의 방법으로 응급실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진의 진료를 방해한 사람을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형법상 폭행죄(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보다 강화된 처벌 규정이나, 실제론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복지부는 설명했다. 이번 대책은 응급실에서 의료진을 폭행하는 사건이 잇따르는 데 대한 대응책 차원에서 나왔다.
복지부는 앞으로는 응급실 의료진을 폭행해 ‘상해에 이르러 진료를 방해한 경우’ 1년 혹은 3년 등 일정 기간 이상의 징역형을 부과하는 법 조항을 신설해 처벌을 강화할 방침이다. 복지부 응급의료과 관계자는 “응급실 진료 방해에 대해선 기존 법 조항을 적용하되 상해에 이르는 폭행의 경우 가중 처벌하는 형량하한제를 도입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경찰청은 응급실 폭행 신고 접수시 신속하게 출동하고, 중대한 피해가 있을 경우 공무집행방해에 준한 구속수사 원칙 등을 담은 응급의료현장 폭력행위 대응지침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또 응급의료기관에 전담 보안인력 배치를 의무화하고, 병원에 지원하는 수가를 올려 인력 채용에 들어가는 비용을 일부 보전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규모가 작은 병원 응급실에는 보안인력이 부족해 폭행 사건이 일어났을 때 대응이 미흡하다는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국적인 현황을 보면, 중증응급환자 진료를 중심으로 하는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응급실 전담 보안인력을 배치한 경우가 97.2%였으나 지역응급의료센터는 79.3%, 지역응급의료기관은 23.2%에 그쳤다. 지난해 응급실에서 진료 방해로 신고·고소된 893건 가운데 폭행은 365건(40.9%)이었다. 전체 진료방해 행위의 67.6%는 술에 취한 사람들이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응급실에서 폭행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은 대기시간이 길고 진료에 대한 충분한 정보 제공이 이뤄지지 못하는 환경인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는 환자나 보호자에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응급진료 안내·상담 책임자 배치 여부를 응급의료기관 평가 지표에 반영하는 것을 검토하기로 했다. 더불어, 응급실 구역에 동선을 표시하거나 실시간 진료 현황판 설치 등 응급실에 적용 가능한 표준 서비스 디자인을 개발할 계획이다.
이날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 대해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위원장은 “폭행 가해자 엄벌 추진은 의사들을 안심시키는 효과가 있겠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선 좀더 근본적인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복지부가 음주를 줄이는 방향의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며 “상시적으로 증상을 논의할 주치의 제도가 없으므로 환자들이 야간에 응급실에 너무 많이 오는 경향이 있다. 응급실 출입 단계에서 중증·경증 환자 분류를 해 경증 환자는 돌려보내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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