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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검찰 “살해범 사형” 요구에, 법원 “실질적 사형폐지국”

등록 2018-11-14 11:06수정 2018-11-14 20:08

엔씨소프트 사장 부친 살해 사건 항소심서
검찰 “1심 무기징역 1심 형량 적다” 사형 구형하자
법원 “사형은 극히 예외적 형벌…올바른 검찰권 아냐”
법원 청사.
법원 청사.
“우리나라는 국제사면위원회에 의해 실질적인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돼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법무부는 명시적으로 사형제도 존치나 폐지를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피고인을 사형에 처해달라고 항소까지 하는 것이 올바른 검찰권, 항소권 행사인지 의문입니다.”

14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 303호 법정. 윤송이 엔씨소프트 사장의 부친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허아무개(42)씨의 항소심 선고공판이 열렸다. 이날 선고에서 이목을 끈 것은 유명인과 관련한 사건 내용이나 형량이 아닌 재판장인 형사1부 김인겸 부장판사의 ‘소신’이었다. 그는 허씨에게 1심과 마찬가지로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국제사회가 인정한 실질적 사형제 폐지국인데도 대중의 이목을 끈 잔혹 범죄에 ‘일단’ 사형을 구형하고 보는 검찰의 행태를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허씨는 지난해 10월 경기도 양평의 전원주택에 살던 피해자를 죽이고 승용차 등을 훔쳐 달아난 혐의(강도살인)로 재판에 넘겨졌다. 강도살인이 인정될 경우 법정 형량은 무기징역 아니면 사형뿐이다. 검찰은 1심에서 허씨에게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지만 이에 못 미치는 무기징역이 선고되자, ‘형량이 적정하지 못하다’(양형부당)며 항소했다. 이어 항소심에서도 재판부에 사형 선고를 요청했지만, 이날 김 부장판사는 1심과 같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를 죽이지 않았다’는 허씨의 무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1심의 형량이 너무 적다”는 검찰 항소이유에 대해서는 쓴소리를 쏟아냈다. 김 부장판사는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법무부 장관의 명령에 의해 사형이 집행되며, 그 사형집행의 명령은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해야 한다”고 짚은 뒤, “법무부는 1997년을 마지막으로 20여년 째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피고인을 사형에 처해달라며 항소하는 게 과연 올바른 검찰권 행사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검찰 상급기관인 법무부가 사형제 논란에 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으며 사실상 ‘무기한 집행 연기’를 택한 상황에서, 검찰이 흉악 범죄에 계속해서 사형을 구형하는 모순된 상황을 꼬집은 것이다. 김 부장판사는 이어 “사형은 인간의 생명을 영원히 박탈하는 극히 예외적인 형벌”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법원에서는 각종 강력범죄에서 검찰의 사형 구형을 물리치고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일이 잦다. 지난 1월 여관에 불을 질러 7명을 숨지게 한 유아무개씨에게도 1·2심 모두 “사형은 궁극의 예외적 형벌이어야 한다”, “사형이 반드시 피해자와 유족에게 완전한 위로가 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고민을 털어놓으며 무기징역을 선고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30일 23명의 사형을 집행한 뒤 이후 20년 넘게 사형집행을 하지 않고 있다.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기준에 따라, 1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실질적 사형제 폐지 국가’로 분류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을 맞이하는 오는 12월 국가 차원의 사형제 중단 공식 선언(모라토리엄)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달 국가인권위가 발표한 사형제 폐지 관련 여론조사에서 사형 대체 형벌이 마련될 경우 사형제 폐지에 동의한다는 응답이 과반을 훌쩍 넘는 66.9%에 달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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