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부터 21일까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87차 인터폴 총회에서 김종양 인터폴 부총재가 발언하고 있다. 김 부총재는 21일 회원국의 투표를 통해 인터폴 총재로 선출됐다.
국제형사경찰기구인 ‘인터폴’ 총재로 김종양(57) 인터폴 부총재가 선출됐다. 한국인이 인터폴 수장을 맡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찰청과 외교부는 21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87차 인터폴 총회에서 김 부총재가 러시아 출신의 인터폴 부총재인 알렉산드르 프로코프추크와의 경선에서 이겨 새 인터폴 총재로 선출됐다고 밝혔다. 김 신임 총재는 이날 수락 연설에서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임을 약속드린다”며 “우리 공동의 목표인 ‘안전한 세상’을 위해 함께 갑시다”라고 말했다.
인터폴은 국제적 범죄 해결을 위해 1923년 설립됐으며, 프랑스 리옹에 본부를 두고 있다. 가입국은 194개국이다. 현재 인터폴에는 100여개 국가에서 파견된 95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멍훙웨이 총재가 프랑스 리옹에서 9월25일 중국으로 출장을 간 뒤 중국 수사당국에 부패 혐의로 체포되면서 공석이 된 인터폴 총재를 뽑기 위해 치러졌다. 멍훙웨이 총재는 중국 공안부 부부장을 지냈으며 중국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2016년 11월 4년 임기의 인터폴 총재로 선출됐다. 하지만 중국에서 체포돼 업무 수행이 불가능해지면서 지난달부터 김 부총재가 권한대행을 맡아왔다. 김 부총재는 멍훙웨이 총재의 잔여 임기인 2020년까지 인터폴을 진두지휘한다.
김 부총재는 경남 창원 출신으로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제29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경찰에서 근무했다. 경찰로 재직할 때 엘에이(LA) 주재관과 경찰청 외사국장 등을 거쳐 2012년부터 3년 동안 인터폴 집행위원을 지냈다. 이후 경기경찰청장에 재임하던 2015년 11월 인터폴 부총재에 당선돼 퇴직했다.
흥미로운 건 이날 김 부총재의 총재 선출과 관련해 국제적인 역학 관계가 작동했다는 점이다. 이날 인터폴 총재 선출에 앞서 러시아와 적대관계에 있는 국가들은 김 전 청장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현지시간으로 20일 기자회견을 열어 “인터폴에 속해 있고, 법치를 존중하는 모든 국가와 단체가 청렴한 지도자를 뽑길 권장한다. 우리는 김 부총재가 바로 그런 지도자가 되리라고 믿는다”며 강력한 지지를 표시했다.
앞서 미국은 프로코프추크 부총재의 인터폴 총재 선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직·간접적으로 밝혀왔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히는 프로코프추크 부총재가 인터폴 총재로 당선될 경우 푸틴 대통령에게 반대하는 정치 세력을 억압하는데 인터폴이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개릿 마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도 트위터 글에서 “러시아 정부는 정치적 반대자들을 위협하기 위해 인터폴의 절차를 남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공화·민주 상원의원들은 20일 발표한 서한에서 프로코프추크가 인터폴을 이끈다는 것은 “여우한테 닭장을 맡기는 꼴”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러시아는 일상적으로 정치적 반대자들과 반체제 인사들, 언론인들을 위협하는 데 인터폴을 이용해왔다”며 “프로코프추크도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푸틴의 전제적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위협 전략에 직접 연루돼왔다”고 주장했다. 이런 움직임은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러시아 반정부 인사 암살 사건 등으로 경계심이 높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올리버 리벨 전 미국 연방수사국(FBI) 부국장 역시 19일 <폭스뉴스>에 기고문을 보내 “인터폴의 권한을 가장 남용하는 국가는 이란, 베네수엘라, 카자흐스탄 등 독재 정권과 함께 러시아다”라며 “(인터폴은) 적색 수배 등의 제도를 활용해 190여개 회원국 중 어느 나라라도 다른 회원국에 있는 지명수배자들을 확보할 수 있는데 이 강력한 도구는 독재 정권들에 의해 반체제 인사, 언론인 또는 정적들을 상상 이상으로 괴롭히거나 침묵하게 하거나 응징하는 방식으로 오용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정환봉 기자,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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