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부 살해 혐의로 15년 8개월째 복역 중인 무기수 김신혜씨의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지난 9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8년째 복역 중인 김신혜(41)씨가 재심을 받게 됐다. 김씨는 2000년 3월 자신을 성추행한 아버지를 수면제가 든 술을 먹이고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기소돼 2001년 3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하지만 지난 9월28일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경찰 수사의 위법성과 강압성을 인정하는 원심 판결을 인용해 검찰의 재항고를 기각하고 재심 개시를 확정했다. 복역 중인 무기수의 첫 재심 확정 사례였다.
문제는 지방법원이 재심개시 결정을 하고, 이 결정이 대법원에서 확정할 때까지 3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는 점이다. 김씨는 2015년 1월 ㄱ지방법원에 형사소송법상 재심 사유가 있다고 주장했고, 그해 11월 ㄱ지방법원은 김씨의 청구를 일부 인용해 재심개시 결정을 했다. 이후 검찰이 즉시 항고를 했으나, 2017년 2월 항고기각 결정이 났고, 검찰이 다시 재항고했으나 대법원은 지난 9월 재항고를 기각해 재심개시 결정을 확정했다. 재심개시 결정부터 확정까지 3년 가까운 시간을 기다린 김씨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원 법원의 재심개시 결정이 내려진 뒤 재심개시 결정 확정까지 3여년(실제로는 2년 10개월 걸림)이 걸렸다. 재심재판 지연과 인신 구속 상태 지속은 부당하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인권위는 법무부 장관에게 형사사건 재심절차 개선을 위해 법원 재심개시 결정에 따른 재심 심판이 신속하게 진행되도록 검사의 불복제도를 개선하는 형사소송법 개정 방안을 마련하고, 법 개정 때까지 검사의 불복권 행사를 신중하게 할 것을 3일 권고했다. 또 대법원장에게는 재심개시 결정에 대한 즉시항고와 재항고 재판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고, 재심결정 시 형의 집행정지 결정을 적극적으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애초 인권위는 김씨가 진정을 통해 밝힌 주장과 내용이 재판에 관한 사항으로 인권위의 조사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각하했지만, 검토과정 중 형사사건 재심절차가 지나치게 오래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권고를 내기로 했다. 인권위 조사 결과, 형사사건 재심청구 뒤 재판부의 재심개시 결정까지 가장 오래 걸린 경우는 7년 12일이었다. 재심개시 결정에 대한 항고기각 결정까지는 최장 9년 32일이 걸렸으며, 재항고 기각 결정은 최장 3년 182일이 걸렸다. 예컨대, 24년 만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이른바 ‘유서대필사건’의 경우 재심개시 결정 뒤 최종 재심개시 결정 확정까지 3년 3개월이 걸렸다.
문제는 재심개시 확정이 장기화할수록 재심 청구인의 구금 기간도 길어진다는 점이다. 인권위는 “계속되는 구금 상태에서는 재심 청구인이 새로운 사실 주장이나 사실오인 다툼 등 방어권 행사가 어려울 뿐 아니라 헌법상 무죄추정 원칙에도 반한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인권위는 “인권 보장과 사법정의의 실현, 신속하게 재판받을 권리 보장을 위해 재심개시 결정 즉시항고권 폐지나 재항고 사유 제한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사법적 구제절차로서 재심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재심 청구인이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을 경우 형 집행정지가 원칙적으로 적용되도록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법원이 재심 재판을 일반 사건과 동일하게 처리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으므로, 별도 처리기한 규정을 두는 등 신속 처리를 위한 제도 개선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라고 이번 권고의 취지를 설명했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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