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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열심히 일하던 청년, 발전소가 살해했다”

등록 2018-12-13 20:45수정 2018-12-16 20:27

고 김용균씨 추모 촛불문화제
광화문광장·태안터미널 사거리서 동시에 열려
또래 청년들 “김씨의 죽음 남 일 같지 않다”
지난 11일 새벽 홀로 일하다 숨진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 추모 문화제가 13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고인을 추모하는 촛불과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11일 새벽 홀로 일하다 숨진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 추모 문화제가 13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고인을 추모하는 촛불과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3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농성장. 이곳에 3평(9.9㎡) 남짓한 작은 분향소가 차려졌다. 영정 사진 속 안경을 쓴 앳된 청년은 마스크와 안전모를 쓰고 팻말을 들고 있었다. ‘나 김용균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 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지난 11일 새벽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 9·10호기에서 순찰 업무를 하던 도중 석탄운송설비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된 24살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의 분향소에 선 시민들은 향을 피우며 묵념을 하다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끊이지 않는 분향객들의 추모 행렬을 따라 영정 앞에는 국화가 차곡차곡 쌓였다.

지난 11일 새벽 홀로 일하다 숨진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 추모 문화제가 13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11일 새벽 홀로 일하다 숨진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 추모 문화제가 13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날 저녁 7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과 태안화력이 있는 충남 태안군 태안터미널 사거리에서 ‘태안화력 비정규직 24살 고 김용균님 추모문화제’가 동시에 열렸다. 영하 2도의 한겨울 삭풍 속에서 광화문광장 추모제에 모인 200여명의 시민들은 저마다 손에 촛불을 들고 김용균씨처럼 손팻말을 들었다. 손팻말에는 ‘언제까지 일하다가 죽어야 합니까?’, ‘죽음마저 외주화한 차가운 세상 속 노동자는 하나둘씩 쓰러져갑니다.’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우리 모두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 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등과 같은 문구가 씌어 있었다.

발언대에 선 고인의 동료들은 한동안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발전소 동료 천아무개씨는 “지금 법을 제정하든, 대책을 세우든, 비상계획을 세우든, 그 어떤 행위를 한다 하더라도 저희에겐 위로가 되지 않는다”며 “하지만 오늘만큼은 여러분들과 함께 김용균씨를 위로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 김용균씨와 이름이 같은 발전소 동료는 사고 전 발전소의 무책임에, 사고 후 발전소의 무신경함에 분노했다고 했다. “고 김용균씨의 생일 저녁에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웃던 동료”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용균씨는 “이번에 세상을 떠난 용균씨는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회사가 발전소였고, 누구보다 꿈을 갖고 열심히 일하던 청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김씨는 “그런 그가 불과 3개월 만에 하청업체의 인력들을 소 돼지 보듯 하는 발전소 관리자들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라며 “회사는 사고 수습인력이 부족하다며 불과 몇 시간 전에 같이 저녁밥을 먹었던 동료들에게 시신을 수습하라고 명령했다”고 분노했다.

지난 11일 새벽 홀로 일하다 숨진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 추모 문화제가 13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고인을 추모하는 촛불과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11일 새벽 홀로 일하다 숨진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 추모 문화제가 13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고인을 추모하는 촛불과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시민들은 추모제에 마련된 엽서에 저마다 추모의 글귀를 적어 김씨의 명복을 빌었다. 시민 박은수씨는 “우리 모두는 타인의 고통에 너무 무감하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차별에 촛불을 들어야 한다”고 적었고, 한 시민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더 이상 죽지 않게 해달라는 당신과 당신 동료, 나와 우리의 요구를 기억하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추모제에는 김씨 또래의 젊은 청년들도 여럿 보였다. “문재인 정부는 죽음의 외주화 지금 당장 중단하라”는 팻말을 든 대학생 김연수(25)씨는 자신보다 불과 한 살 어린 김씨의 죽음이 남 일 같지 않다고 했다. 김씨는 “생명 관련 전공자라 현장실습에 가면 기계를 다뤄야 하는 일을 할 때가 있다. 제가 대학을 가지 않고 바로 취직을 했다면 저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며 “촛불 무렵에도 구의역 김군이 김용균씨처럼 2인1조로 일하지 않다 세상을 떠났다. 이후에 무엇이 바뀌었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김씨는 김용균씨의 죽음이 결국 나의 일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공기업이 비용절감을 위해 하청을 주고 혼자서 일하게 한 거잖아요. 저를 비롯해 공기업을 선망하는 청년들 누구에게나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또래 슬픔의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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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시민들도 촛불 들었다

같은 시간 충남 태안군 태안터미널 사거리에도 시민과 김용균씨가 속해 있던 한국서부발전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의 동료들, 민주노총 관계자 등 200여명이 모여 추모 문화제를 열었다.

이들은 “사람이 먼저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촛불을 들었다. 이태의 태안화력 사망사고 시민대책위원회 임시 대표는 “잠잘 때 엄마 배를 만지며 잠들던 아들, 그 아들이 죽었으니 이제 나도 이 세상에 없다는 부모에게 회사 사람들은 시키지도 않은 일인데 혼자 그곳에 들어가서 이 지경이 됐다고 얘기했다”며 “대통령 만나자고, 피켓 들자고 제안한 사람이 저다. 해결 못 해서 이 죽음을 만들었으니까 저도 죄인”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끝까지 진상 조사하라고 시민대책위에 위임해주셨다”며 “제대로 된 진상 조사해서 다시는 이런 죽음이 발생하지 않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다음 주에 상여를 메고 청와대 쳐들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13일 태안화력이 있는 충남 태안군 태안터미널 사거리에 20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태안화력 비정규직 ‘24살 고 김용균님’ 추모문화제를 열었다. 태안/선담은 기자
13일 태안화력이 있는 충남 태안군 태안터미널 사거리에 20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태안화력 비정규직 ‘24살 고 김용균님’ 추모문화제를 열었다. 태안/선담은 기자
김용균씨의 죽음을 세상에 알린 이태성 발전노조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는 “(숨진 김용균씨를) 발견한 건 119 센터나 경찰이 아니다. 동료들이 죽은 그의 몸을 구출했다. 신고도 발전사가 아니라 하청 노동자가 했다. 이게 과연 믿어지시냐”라며 “고용노동부가 작업 중지 명령을 내렸음에도 발전사는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기계를 돌렸다. 발전사는 그런 기록이 저희 모니터에 그대로 남는다는 것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이 간사는 “원청은 우리를 개같이 이용하면서도 우리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며 “더 이상 죽지 않도록 우리 이번에 반드시 죽음의 외주화를 종결하자”고 호소했다.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도 현장을 찾아 “앞으로 이 정부는 함부로 노동존중 사회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라”라며 “이 죽음에 정치인들이 와서 조의를 표하는 거 존중하지만 그들은 국회에 가서 또다시 탄력근로제를 확대하자고 주장할 거다. 이것이 대한민국 국회다. 저는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용납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10대들도 촛불을 들었다. 태안여고 2학년 정소진(17)양과 백경문(17)양은 입을 모아 “김용균씨가 우리와 나이 차가 얼마 나지 않아서 그런지 안쓰러웠다”며 “졸업하고 취업하는 선배 대부분이 은행 등에 비정규직으로 취업한다. 취업한 선배 중에 서부발전에 취업한 언니도 있다. 학교 졸업하고 대학 진학 대신 취업을 할 거라 취업을 할 거여서 비정규직 문제가 남 일 같지 않다. 그래서 이번 일에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임재우 기자, 태안/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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