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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랑아 강제수용해 인권 유린한 선감학원, 인권위 “특별법 제정하라”

등록 2018-12-14 12:00수정 2018-12-14 15:32

행안부 장관과 경기지사에게도 피해 생존자들 지원 방안 마련 촉구
경기도 고위 공무원 시찰단이 선감학원을 방문한 모습으로, 시기는 1960년대로 추정된다. 선감학원에 수용 중이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머리를 빡빡 깎은 채 교복을 입고 도열해 이들을 맞고 있다. 경기창작센터 제공
경기도 고위 공무원 시찰단이 선감학원을 방문한 모습으로, 시기는 1960년대로 추정된다. 선감학원에 수용 중이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머리를 빡빡 깎은 채 교복을 입고 도열해 이들을 맞고 있다. 경기창작센터 제공
“가끔 60대 전후 노인들이 와서는 방 잡아놓고 바다와 선착장, 경기창작센터를 하염없이 보다가, 울다가 가곤 해요. ‘어렸을 때 잡혀 와 고생 많이 했다. 많이 맞고 죽어 나간 사람들도 많았다’며 혼자 이야기를 하다 가죠.”

경기도 안산시 ‘선감도’의 선착장에서 칼국숫집을 운영하는 배아무개(55)씨는 2015년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전했다. 현재 경기창작센터가 있는 자리에 과거에는 부랑아 수용시설인 ‘선감학원’이 있었다. 1955년부터 1982년까지 ‘복장이 남루하거나, 행동이 불량하고, 주소를 모른다’는 이유로 모두 4691명의 ‘부랑아’들이 이곳 선감학원에 수용됐다. 수용 아동들은 상습적인 중노동과 구타·폭행에 시달렸고, 탈출을 시도하다 사망하면 암매장됐다. 당시 수용된 아동들의 약 41%는 8~13살이었다.(▶관련기사: “경찰들이 어린이 강제 납치”…40년간 그 섬엔 무슨 일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14일 선감학원 아동침해 사건 진상규명과 피해 생존자 구제를 위해 국회의장에게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개정하거나 특별법 제정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또 행정안전부 장관과 경기도지사에게는 현재 피해 생존자 대부분이 고령이고 질병과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고 있으므로 관련 법안 마련 전에라도 지원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을 함께 표명했다.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인 1942년 5월 조선총독부가 군인을 양성한다는 목적으로 당시 경기도 부천군(지금의 안산시 대부면) ‘선감도’에 설립한 시설이다. 해방 이후인 1946년 2월에는 경기도가 인수해 국가의 부랑아 정책에 따라 부랑아 강제수용 시설로 이용하다 1982년 10월이 되어서야 폐쇄했다. 피해 생존자 다수의 진술과 선감학원 관련 자료를 보면, 선감학원 수용자들은 이른바 ‘부랑아’라는 이유로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수용, 강제노동, 폭행, 상해를 겪어야 했다.

선감학원에 강제로 수용된 아동들은 염전, 농사, 축산, 양잠, 석화 양식 등 강제노역에 시달렸고, 일괄적으로 부과된 노동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쉬는 시간을 얻지 못하거나 폭행을 당했다. 선감학원의 자립을 위해 제정된 ‘경기도 선감학원 특별회계 조례’에 따라, 수용 아동들에 의해 생산된 생산물로 선감학원 운영비를 충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제노역을 마친 수용 아동들에게는 꽁보리밥, 강냉이밥과 함께 소금, 간장, 곤쟁이젓, 새우젓 등 한 가지 반찬만 조금씩 제공됐다. 식사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수용 아동들은 열매, 들풀, 동물 사료, 곤충, 뱀, 쥐를 먹어야 했다.

외부와의 교류가 차단된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수용 아동들은 폭행과 구타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 선감학원 직원들은 힘센 수용 아동을 골라 ‘사장’ 또는 ‘반장’으로 임명했으며, 다른 수용 아동들을 관리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구타와 폭행은 물론 성폭행도 일어났다. 2017년 경기도의회의 조사 자료를 보면, 1963년 수용됐다 3년 만에 선감도에서 탈출한 ㄱ(65) 목사는 “낫으로 협박하거나 탈출시켜주겠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간부들이 원생들을 수시로 성폭행했다. 나도 당시 당한 후유증으로 지금 몸이 망가졌다. 지금 같으면 M1 소총으로 다 쏴 죽였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생존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폭행과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섬을 탈출하려다 목숨을 잃은 수용 아동들은 ‘가마니에 둘둘 말린 채’ 야산에 암매장되기도 했다.

인권위는 이번 의견 표명에서 선감학원 사건을 ‘국가폭력에 의한 기본권 침해’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인권위는 “해방 이후 정부는 각종 훈령과 정부 대책을 통해 부랑아를 사회에서 격리되고 배제되어야 할 대상으로 규정했다”며 “부랑아의 수집(납치)과 단속, 입소 및 수용생활 등 전반에 걸쳐 불법적이고 인권 침해적인 행위를 자행 또는 묵인해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권위는 “국가의 부랑아 일소라는 정책과 국가기관으로 공적 업무를 담당하는 경찰과 공무원에 의한 부랑아의 수집과 단속, 시설 입소 등은 국가 범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에 인권위는 선감학원 피해 생존자들이 국가에 의한 심각한 인권 침해로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만큼 진상을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인권위는 “선감학원 사건은 과거 국가기관이 직간접적으로 인권 침해에 관여한 사건이나 현재까지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한 진상규명과 구제방안을 마련하지 않았다”며 “피해자 명예회복, 보상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냈다.

나아가 인권위는 특별법 제정 이전에도 과거 선감학원 운영에 1차적인 책임이 있는 경기도와 행정안전부가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보았다. 인권위는 생존자의 50%가 선감학원 퇴소 뒤 구걸 및 부랑 생활을 했고, 약 40%가 월 100만원 이하의 소득으로 생활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들어 지자체와 정부가 피해자들을 위한 쉼터를 제공하고 지속적인 심리상담을 지원하는 등의 조처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인권위는 이런 의견을 바탕으로 이달 17일 오후 서울 중구 인권위 인권교육센터에서 ‘선감학원 사건 특별법 제정 및 피해자 지원대책 마련 토론회’를 열 계획이다. 김영배 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 회장과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등과 함께 여는 이번 토론회에서는 선감학원 피해 생존자 주요 실태 및 현안, 특별법 제정과 피해자 지원 방안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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