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기계에 끼어 숨진 하청노동자 김용균(24)씨의 생전 모습. 지난해 9월 김씨가 취업면접을 위해 마련한 정장을 입고 집에서 찍은 영상을 갈무리했다. 태안화력 시민대책위 제공
충남 태안화력발전소가 지난 11일 새벽 기계에 끼여 숨진 하청노동자 김용균(24)씨 사고 이후 고용노동부의 작업중지 명령을 어기고 80분간 컨베이어벨트를 재가동한 사실이 밝혀진 가운데,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이 김씨의 사망을 확인하고도 30분 만에 ‘악마의 벨트’ 재가동을 결정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경찰에 사고 신고도 하기 전이었다. 주검 수습 과정을 보며 컨베이어벨트 복구작업을 해야했던 하청노동자들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17일 ‘태안화력 시민대책위’의 설명을 종합하면, 서부발전의 하청업체인 한전산업개발 ㄱ차장과 재하도급업체 신흥기공 ㄴ과장은 11일 새벽 4시부터 4시10분 사이 두 회사의 직원 4명에게 ‘긴급작업을 위해 발전소로 들어오라’고 급히 연락을 돌렸다. 이 시간은 서부발전과 김씨의 동료들이 그의 시신을 확인한 새벽 3시23분으로부터 불과 30여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시점으로, 최초 경찰 신고 시간인 4시 25분보다 앞선다. 서부발전이 경찰에 김씨의 사고를 신고하기도 전에 예비 컨베이어벨트 재가동을 결정했던 것이다.
회사의 중간관리자로부터 지시를 받은 하청 노동자 4명은 이날 새벽 5시께 태안화력에 도착해 김씨가 사망한 컨베이어 벨트(CV-09E)에서 약 1m 떨어진 예비 벨트(CV-09F)를 원상 복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당시 CV-09F는 정비를 위해 가동이 중단된 상태였다. 이들은 작업을 마친 뒤 새벽 6시께 철수했다. 김씨의 사망을 보고받은 고용노동부 보령지청이 새벽 5시37분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린 뒤에도 20여분 동안 예비 컨베이어벨트를 가동시키기 위한 작업이 진행됐던 것이다.
김용균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현장조사가 열려한 노동자가 탄을 치우기 위해 좁은 틈으로 진입을 시도하는 모습을 재연하고 있다. 태안화력 시민대책위는 “반대편 컨베이어 벨트를 점검하기 위해서는 규격에 맞지 않는 계단을 기어 다녀야 한다“고 설명했다. 컨베이어 벨트 곳곳을 확인하기에는 실내 밝기도 어둡다. 태안화력 시민대책위 제공
김씨의 죽음을 세상에 알린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하청업체 중간관리자들이 11일 새벽 4시에 직원들을 불러 긴급작업에 투입시켰다는 것은 이미 4시 이전 원청인 서부발전이 컨베이어벨트 재가동을 위해 정비인력 투입을 하청업체에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태안화력 하청업체 정비노동자 ㄷ씨도 “하청업체인 한전사업개발이나 신흥기공은 자체적으로 (컨베이어벨트) 복구 작업을 결정할 수 없다”며 “감독기관인 서부발전이 지시 없이는 그러한 작업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서부발전 관계자는 “고용노동부의 작업 중지 명령 뒤에도 컨베이어벨트가 작동한 것은 맞지만, 서부발전 차원의 재가동 지시는 없었다. 이와 관련해선 보다 자세한 조사가 필요하다”라고 해명했다.
당시 김씨의 주검이 수습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컨베이어벨트 복구작업을 해야 했던 하청노동자 4명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ㄷ씨는 “당시 예비 벨트(CV-09F) 상단 부분에서 작업을 했던 동료들은 300~400m 아래 사고현장에서 경찰과 소방인력이 김씨의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을 모두 볼 수밖에 없었다”며 “소속 회사는 달라도 엊그제까지 얼굴 보며 인사했던 동료였는데, 고인의 죽음에 예의를 갖추지 못한 채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작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괴로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현재 작업이 중지된 태안화력 9·10호기가 재가동하게 되면 하청노동자들은 다시 김씨가 사망한 장소에서, 사고 이전과 똑같은 일을 해야 한다”며 “현장에 갈 때마다 김씨의 죽음이 생각날텐데, 겁이 난다”고 덧붙였다.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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