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학살 관련자 조사한 문건의 목록
1·2심 모두 “문건 목록 공개하라” 판단
‘외교적 이유’ 들어 거부하던 국정원
20일 상고기한까지 상고장 제출 안 해
“법원 판단 존중해 신속히 정보공개해야”
1·2심 모두 “문건 목록 공개하라” 판단
‘외교적 이유’ 들어 거부하던 국정원
20일 상고기한까지 상고장 제출 안 해
“법원 판단 존중해 신속히 정보공개해야”
‘베트남민간인 학살 관련 정보를 공개하라’는 법원 판단이 국정원의 상고 포기로 확정됐다. 국정원이 관련 정보를 즉각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3일 법원에 따르면, 소송 당사자인 국정원은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김우진)에 상고 기한인 20일까지 상고장을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보공개 취소 처분이 확정된 경우 해당 기관은 관련 정보 공개 여부를 재심사해야 하는데, 이전과 같은 이유를 들어 정보 비공개 처분을 내릴 수 없다. 행정기관이 다른 사유를 들어 다시 비공개 처분하는 ‘꼼수’를 부린다 해도 행정소송에서 패하는 경우가 많아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남주 변호사(민변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TF)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1968년 퐁니·퐁넛 사건 조사가 이뤄졌다는 사실이 한국정부 공식자료를 통해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정원은 법원 판결에 따라 관련 정보를 신속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은 국정원 주장은? “NCND 기조 유지할 수밖에”
지난 7월 베트남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에 가담한 한국군을 조사한 신문조서가 국가정보원(국정원)에 보관된 정황이 재판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지난해 8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임재성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국정원을 상대로 “(퐁니·퐁넛 학살에 가담한) 최영언 중위 등 3명을 조사한 뒤 작성한 문건을 공개하라”는 정보공개 청구를 냈지만 비공개 처분을 받았다.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낸 끝에 1972년 8월14일 마이크로필름화 작업부서에서 이 조서 등을 장기간 보관하기 위해 마이크로필름 형태로 촬영·보관하는 작업을 하면서 ‘관련 문서 목록’이 만들어진 사실이 드러났다. 1·2심 법원은 연이어 “관련 정보를 공개하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외교적 불이익’을 이유로 정보공개가 어렵다는 국정원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정원측은 “(문건 목록이)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보공개법(제9조제1항제2호)은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는 비공개할 수 있다고 본다.
국정원은 그 과정에서 ‘엔시엔디(NCND·시인도 부인도 안 함)’ 기조를 언급하기도 했다. “한국이 해당 사항(베트남 민간인 학살 관련 정보)의 존재나 진위를 외국에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거나 확인하지 않는 것이 외교정책상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국정원측 설명에 따르면, 베트남 정부가 사과나 배상을 요구하더라도 한국 정부가 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로드맵’ 자체가 마련돼있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밝히면서 국정원측 주장에 이유가 없다고 봤다. “대한민국 정부와 베트남 정부 사이에 민간인 학살 문제가 외교 이슈로 부각되어 있지 않고 베트남정부가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정부에 의사를 묻는 등 의사를 표명하고 있지 않다. 대한민국 외교적 협상력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단하기 어렵다.”
■ ‘베트남 민간인 학살 조사’ 정부공식 인정·진상규명 단초
퐁니·퐁넛 민간인학살 사건’은 1968년 2월 12일 베트남전쟁에 투입된 한국군 청룡부대(해병제2여단)가 베트남 중부 꽝남성의 퐁니·퐁넛마을 주민 74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당시 참전군인인 최영언 중위(당시 해병 포항상륙전기지사령부 훈련 교장관리대 사격장 보좌관), 이상우 중위(경남 진해 해병학교 구대장), 김기동 중위(포항 파월특수교육대 근무) 등을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신문조서 등이 작성됐다. 1972년 8월14일 마이크로필름화 작업부서에서 이 조서 등을 장기간 보관하기 위해 마이크로필름 형태로 촬영·보관하는 작업을 하면서 ‘관련 문서 목록’도 만들어졌다.
이 문건 목록이 공개될 경우, 정부기관이 퐁니사건과 관련된 조사를 진행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하는 셈이 된다. 최 중위 등 3명은 2000년 5월 <한겨레21>을 통해 ‘1969년 중앙정보부에서 민간인학살 사건 조사를 받았다’고 최초 증언했지만 정보당국은 침묵한 바 있다. 베트남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국가 배상청구도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문건을 통해 조사 대상자, 조사 범위, 조사 방향 등을 파악하고 진술조서 외에 다른 문건이 작성됐는지 추가 정보공개 청구에 나설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베트남을 국빈방문해 “우리 마음에 남아있는 양국 간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지만 한국 정부가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학살 사실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공식으로 사과한 적은 없다. 한국군은 1964년 9월부터 1972년까지 31만2천여명을 베트남에 파병했는데 이 기간에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학살은 80여건, 피해자 수는 9천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대한민국과 베트남 사이에 ‘베트남전 민간인 희생사건’에 대한 어떤 합의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관련 정보에 대해)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NCND(Neither Confirm Nor Deny)의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지난 4월22일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베트남전쟁 당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에 원고 응우옌티탄(앞줄 왼쪽과 오른쪽·동명이인)이 참석해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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