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숙아로 태어나 뇌병변장애를 앓고 있는 홍아무개양이 지난 18일 오후 전북 전주시 덕진구 집에서 아빠 홍아무개씨와 함께 미끄럼틀을 타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버지 홍씨는 딸의 다리가 엑스(X)로 교차되지 않게 두 발을 잡고 있다. 전주/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 18일 오후 3시께. 전북 전주시의 한 빌라 가정집 거실에 놓인 뽀로로 미끄럼틀 위로 아빠 홍아무개(36)씨가 딸 다은(4·가명)이를 번쩍 들어 올려줬다.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다은이가 기분이 좋은 듯 꺄르르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아빠의 얼굴에도 슬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아빠는 다은이가 내려오면 다시 번쩍 들어서 미끄럼틀 위로 올려주고, 내려오면 또다시 다은이를 들어 미끄럼틀 위에 올려줬다. 미끄럼틀을 오르내리길 10여차례. 다은이의 양 다리가 미끄럼틀을 내려오다가 엑스(X)자로 교차됐다. 아빠가 다은이의 다리를 잡고 다시 11자가 되도록 풀어줬다. “다은이 다리가 힘이 들어가서 뻣뻣하거든요. 잘 굽어지지가 않으니까 자꾸 엇갈리는 거예요.” 엄마 심아무개(36)씨가 아빠와 딸의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손에도 힘을 빼지를 못해서 오른손은 계속 주먹을 쥐고 있어요. 왼쪽은 좀 낫긴 한데, 오른쪽은 손하고 다리에는 힘을 주는 것만 하지 힘을 푸는 건 못해요.” 엄마, 아빠가 누나 다은이와 놀아주는 모습을 본 쌍둥이 동생 다민(가명)이도 “까까까” 소리를 내며 달려와 아빠 품속을 파고들었다. “다은이만 안고 있으니까 질투하는 거예요.” 다민이의 머리를 쓰다듬던 아빠가 말했다.
다은이의 팔다리는 늘 뻣뻣하고 경직되어 있다. 뇌의 문제로 팔다리에 기능저하가 나타나는 뇌병변장애 때문이다. 거의 태어나자마자 뇌병변장애 1급 판정을 받은 다은이는 손발에 자유자재로 힘을 빼거나 굽히기가 어렵다. 만 36개월, 네 살이지만 굽히기가 잘 되지 않으니 걷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혼자 힘으로 앉을 수도 없어서 늘 엄마나 아빠가 다은이를 번쩍 들어 의자에 앉혀줘야 한다. 의자에 앉을 때에는 다리가 엑스자로 교차되지 않게 고정하는 보조기를 항상 찬다. 그래도 1년 전쯤부터는 배를 깔고 누우면 양팔을 써서 앞으로 전진하는 ‘배밀이’를 할 수 있게 됐다. 엄마 심씨가 “이것도 재활 치료 덕분”이라고 설명해줬다. 일반적으로 배밀이는 생후 6개월쯤 하지만, 혼자서 거동을 거의 하지 못했던 다은이 엄마, 아빠에겐 소중한 “치료 성과”였다.
다은이는 이란성 쌍둥이 동생 다민이와 함께 미숙아로 세상에 나왔다. 다은이가 태어났을 때 몸무게는 1.47kg, 다민이는 1.38kg였다. 남들보다 조금 이른 27주 9일만에 세상에 나와서일까. 다은이는 태어나자마자 피가 정상적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동맥경화증 판정을 받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다행히 다은이는 큰 수술을 무사히 넘겼다. 하지만 수술 중 피를 너무 많이 흘렸고, 그 결과 뇌병변 장애를 얻게 됐다. “너무 어릴 때 받은 수술이었고, 뇌세포가 죽어서 뇌병변 장애가 됐어요. 수술 중 피를 많이 흘려서 영양 공급이 안 됐다고 하더라고요”. 엄마가 덤덤하게 말했다. 옆에서 듣던 아빠도 말을 이었다. “너무 일찍 태어나서 그렇대요. 원망은 안 하는데, 걷지 못하고 몸을 끌고 다니는 거 보면 마음이 아프죠.” 아빠가 고개를 떨궜다.
미숙아로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 남매 다은·다민이. 다은이는 뇌병변 장애 진단을 받았고
다은이는 뇌병변 장애로 3~4일에 한번씩 경기를 일으킨다. “뇌에 스파크가 튀면 경기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엄마 심씨가 설명했다. 다은이는 한번 경기를 일으키기 시작하면 길게는 30~40분씩 상태가 지속된다. 잘못하면 치명적인 뇌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서둘러 병원에 가야한다.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아빠가 집에 없으면 경기를 일으키는 딸을 데리고 병원에 가야 하는 건 오로지 엄마의 몫이다. 심씨는 매주 경기를 일으킨 딸을 안고 3층 빌라를 걸어 내려와 택시를 잡아타고 20분 거리에 있는 전북대병원 응급실로 향한다.
가슴이 철렁한 순간도 있었다. 작은 충격에도 경기를 일으키곤 하는 다은이가 한번은 카메라 플래시에 놀라 경기를 일으켰다. 여느때처럼 엄마가 다은이를 안고 병원에 가려 했지만, 그날따라 택시가 안 잡혀 길에서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너무 당황해서 119를 부르는 것도 생각을 못했어요. 남편한테 전화를 했더니 ‘119를 부르라’고 말해줘서 그제서야 119를 불러서 병원에 갔죠. 병원 가는 게 쉽지 않아요. 장애인콜택시는 예약을 해놔야 하는데, 언제 경기를 일으킬지 모르니까요.”
다은이보다 더 작게 태어난 다민이는 인큐베이터에서 한 달만에 2.9kg까지 성장해 건강하게 퇴원했다. 하지만 미숙아로 태어나 다른 아이보다 발달이 느린 게 엄마, 아빠의 걱정이다. 돌이 되어서야 기어다니고, 두 돌쯤 됐을 때 걷기 시작한 다민이는 신체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언어발달이 아직 돌 수준에도 이르지 못했다. 다은이가 ‘엄마’, ‘아빠’, ‘이거 뭐야’ 같이 돌 수준 아이의 언어표현을 하고 있는 것과 달리, 다민이는 ‘엄마, 아빠’도 말하지 못할 정도로 언어 발달이 느리다. 엄마 심씨는 “배가 고프거나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큰 소리로 울거나 ‘까까’, ‘꼬꼬’ 같은 소리로 의사표현을 한다”고 설명했다.
다민이는 두 돌이 되기 전에 ‘언어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전문가 소견을 받았다. 여섯 번 치료를 받았지만, 비용 부담때문에 더이상 진행하지 못했다. 회당 2만5천~4만원에 이르는 치료비용은 이미 다은이의 치료비로도 허덕이고 있는 이들에게 큰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지자체의 언어치료비 지원을 받는 것도 쉽지 않았다. “2년 전쯤 (동주민센터에서) ‘예산이 없다’고 해서 그 다음해로 넘어왔는데, 대기자가 많아서 그해도 지원을 못 받고 지나갔어요. 속이 타서 동사무소에 가서 ‘시장님을 뵙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어요.” 아빠가 답답한 듯 얘기했다. 한달쯤 전부터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지원을 받아 일주일에 이틀씩 언어치료를 받고 있지만, 다민이의 언어발달이 많이 늦어서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다은이와 다민이의 사정을 아는 김정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사회복지사는 “다민이의 경우 지원만 가능하다면 매일 언어치료를 받는게 가장 좋다. 어릴 때 치료를 받는 게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라면서 “다민이가 지금 주2회씩 치료를 받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1년에 360만원 정도가 들어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매일 치료를 받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민이는 최소 10살때까지 꾸준히 언어치료를 받아야 한다.
더 염려되는 부분은 다민이의 정서적인 부분이다. 커가면서 원하는 것도 많아지고 고집도 세 지고 있는데, 원하는 걸 말로 표현하지 못하니 스스로 답답해하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고 했다. 다민이는 최근들어 ‘까까’ 소리를 점점 더 많이 내고 있다. 이날도 다민이는 엄마, 아빠를 향해 “까까, 꼬꼬” 소리를 내며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엄마 심씨는 “말을 하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고 추측했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로 표현하는 게 아니다보니 다민이의 부모들은 몇 년째 눈치로 아이의 요구사항을 파악하고 있다. 심씨는 “한달 정도 언어치료를 받아서 요즘엔 뭔가를 원하면 두 손을 모으고 ‘주세요’ 하듯이 손을 내미는 정도로 발전했는데, 그래도 뭘 원하는지 알지 못하니까 답답하면서도 어쩔때는 짜증이 날 때도 있다”면서도 “그래도 말을 이해해주지 못하니까 미안하다”고 말했다.
부모님의 관심이 누나 다은이에게 쏠리다보니 다민이의 행동이 거칠어지고 있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최근에 다민이는 머리를 바닥에 찍거나 엄마가 보지 않을 때 누나 손가락을 물어 울리기도 했다. 엄마가 다은이 쪽을 보며 누워있으면, 엄마가 자기 얼굴을 보도록 고개를 돌린다고도 했다. “교수님이 다민이는 정신과 쪽으로도 상담을 받아보라고 얘기했어요. 언어 치료 선생님도 다민이랑 엄마랑 매일 한시간씩 둘이서만 노는 시간을 가지라고도 했고요. 근데...” 엄마가 말을 잇지 못했다. 다은이와 다민이 둘다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다민이만을 위해 시간을 내기도, 정신과 상담 비용을 추가로 부담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날도 다민이는 부모님과 쌍둥이 누나가 짐볼 위에 엎드려 팔이 땅에 닿을 때마다 팔에 힘을 줘서 버티게 하는 운동치료를 하는 모습을 보고, 누나의 짐볼을 빼앗아 올라탔다.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입 속에 넣기도 했다. “다은이가 손이 많이 가니까 다은이를 질투하고 자기한테도 애정을 달라는 듯한 행동을 자주 해요. 방금도 아마 부모님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네요.” 다민이를 지켜보던 김정기 사회복지사가 설명했다.
다은·다민이네 가족의 2019년 소원은 “행복하게
다은이와 다민이 둘 다 재활치료와 언어치료 등 각종 치료가 시급하지만 상황은 좋지 못하다. 건설현장에서 주 6일씩 일하며 한달에 152만원을 버는 아빠의 수입으로는 13살 큰딸까지 다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기에 한참 모자라다. 아빠의 월급으로는 쌍둥이의 치료비도, 다은이의 약값과 20만원의 임대료, 식비, 각종 공과금 등을 내기에도 빠듯하기 때문이다. 가스 안전관리, 목수 등의 일을 했던 아빠는 지난해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차량 운전으로 업무를 바꿨다. 큰 딸 홍아무개양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웹툰 작가를 꿈꾸기도 하지만 형편 때문에 학원도 보내지 못하고 있다. 심씨는 “큰 딸이 한 번도 불평을 한 적이 없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바로 동생을 돌보는데 늘 미안한 마음이 크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취재 나흘 뒤인 22일 다은이는 집중치료를 받기 위해 전북대병원에 입원을 앞두고 있었다. 다은이는 반년마다 3주간 입원해 전기치료, 놀이치료 등 집중치료를 받는다. 병원비는 국가 지원 등을 받아 해결하지만, 병원에서 필요한 각종 물품 구입과 엄마아빠의 교통비 등으로 50~60만원 정도를 부담해야 한다. 엄마는 “내가 병원에 있으면 나가는 돈이 줄텐데, 다민이도 돌봐야 해 매일 병원을 왔다갔다해야 하다보니 돈이 그만큼 든다”고 설명했다. “마음같아서 다은이는 서울에서 치료를 받아보고 싶기도 하죠. ‘누구는 (서울 병원에서) 걸어서 퇴원했다더라’ 하는 소리를 들으니까 혹시나하는 기대감도 있고요. 다민이도 한달정도 언어치료를 받으면서 산만했던 게 많이 줄어들고 30분, 40분씩 얌전히 기다리는 것도 가능해졌거든요. 가능하면 주5일 치료를 받게 해주고 싶은데 형편이 그렇지 못해서…”
한때 다은이와 다민이를 종일 돌보면서 온 우울감과 무기력함으로 죽으려고 한 적도 있다는 심씨는 다은이와 다민이가 치료를 받고 다섯 가족이 오순도순 건강하게 사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다은이 다민이에게 바라는 점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심씨는 “혹시 다은이와 다민이를 내가 이렇게 만든건가 싶어서 죄책감이 컸다”며 “그저 건강했으면 좋겠다. 다른건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아빠 홍씨도 “다은이가 지금은 장애가 있다는 걸 모르는데, 나중에 커서 장애가 있다는 걸 알고 혹시 상처받을까봐 걱정된다”며 “아이들이 건강하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씨가 그림그리길 좋아하는 큰딸 홍아무개양이 지난 14일, 쌍둥이의 네 번째 생일에 쌍둥이를 그린 그림과 함께 쓴 편지를 보여줬다. 편지에는 “우리 귀엽고 이쁜 내 동생 다은아 다민아 생일축하해. 2019년에는 가족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아프지말고 건강하게 넘기자!” 라고 써 있었다. 온 가족이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는 이들 가족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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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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