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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KTX·반올림·쌍용차 …끝내 승리한 사람들의 송년회

등록 2018-12-30 20:13수정 2018-12-31 10:00

한겨레 사옥 앞에서 조촐한 송년회
노동자들 “승리 아니라, 이제 시작”
“서로의 얘기 들어주는 연대가 가장 큰 힘”

12년2개월(케이티엑스), 11년8개월(삼성전자 백혈병), 9년2개월(쌍용자동차).

열 손가락으로는 가늠도 되지 않는 긴 시간 동안 거리에서, 굴뚝 위에서, 법정에서 싸웠던 노동자들에게 2018년은 ‘특별한’ 해였다. 케이티엑스(KTX)와 쌍용자동차의 해고 노동자들은 직장으로 돌아갔고,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들은 회사 쪽의 사과와 피해 보상 중재안을 받아냈다.

잊지 못할 한 해를 보낸 김승하 전 케이티엑스 열차승무지부 지부장,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지난 19일 저녁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앞 식당에서 조촐한 송년회를 열었다. 이들은 “해고자 복직과 중재안 마련이 활동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라며 “오랜 시간 지지해준 시민들에게 감사하다”고 입을 모았다.

함께 거리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만큼 서로를 향한 마음도 애틋했다.

“올해 ‘쌍차’가 해결됐다는 얘길 듣고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황상기) “저도 정작 저희 문제가 해결됐을 때는 별로 기쁘지 않았는데 쌍차가 해결됐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분이 좋더라고요.”(김승하)

김득중 지부장도 “(쌍용차 복직 때는) 눈물이 안 났는데 케이티엑스 복직 기자회견에 가서 울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케이티엑스 승무원 180여명은 해고된 지 12년 만인 지난 7월 사쪽과 정규직 전환 복직에 합의했다. 9월 회사와 복직에 합의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2009년 해고된 뒤 9년 만에 첫 출근을 앞두고 있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은 지난 11월 삼성전자와의 중재안을 수용하며 11년 만에 사과를 받아냈다.

이들의 긴 싸움은 ‘동료의 죽음’을 빼고는 말할 수 없다. 2015년 대법원이 하급심 판결을 뒤집고 회사(코레일)의 손을 들어주자, 이를 비관한 동료 승무원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친구가 딸이 하나 있어요. 꼭 이겨서 그 딸에게 ‘엄마는 불의에 저항하다가, 옳은 일을 하다가 희생됐다’는 얘기를 꼭 해주고 싶었어요.”(김승하) 9년간 30여명의 동료와 그 가족 등을 먼저 떠나보낸 김득중 지부장도 “어떻게든 또 다른 죽음만큼은 막아야겠다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고 했다. 황씨도 말을 보탰다. “삼성에서 사람 죽었다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릴 때마다 참 가슴이 아팠어요.” 딸 유미씨는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반도체라인에서 일하다 입사 2년 만인 2005년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2년 뒤 끝내 숨졌다. “다들 살기 위해서 일한 건데 병에 걸려 죽은 거잖아요. 나중에는 이 문제를 꼭 풀어야겠다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긴 시간을 버티는 일은 시민들의 지지와 연대가 있기에 가능했다. “어떤 분은 농성장을 지나가다가 같이 앉아서 한참 얘기하고 (삼성을) 비판하고. 그럴 땐 엄청 힘이 솟는 거죠.”(황상기) “저희도 서울역에서 서명할 때 굳이 가던 길 돌아와서 서명해주시는 분들 보면 ‘이런 분 있어서 세상이 돌아가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김승하 전 지부장도 덧붙였다. 복직이 합의된 9월까지 79일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숨진 동료의 분향소를 차렸던 김득중 지부장은 “조용히 서로의 얘기를 들어주는 게 가장 힘이 되는 연대였다”고 했다.

승리한 사람들의 송년회. 한겨레TV
승리한 사람들의 송년회. 한겨레TV
“저희도 짠 한번 할까요?” 김승하씨의 제안에 불판 위에서 잔 3개가 사이좋게 부딪쳤다. ‘마침내 승리한’ 이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다. “반올림이나 쌍용차, 케이티엑스가 승리했다고 해서 끝이 절대로 아닙니다. 아직 투쟁하고 있는 사업장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희도 열심히 노력할 겁니다.”(황상기) “파인텍처럼 지금도 고공에서 단식하며 투쟁하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연말이니까, 힘들게 싸우고 있는 주변 노동자들에게 좀 더 따뜻한 관심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김득중) “맞아요. 연말이니까. 주위에서 지지해주시는 분들과 서로 의지하고, 모두 행복한 시간 보내셨으면 좋겠네요.”(김승하)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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