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병준 조직국장
“일제강점기 때 강제징용 노동자 문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마찬가지로 민족의 문제입니다. 과거사를 인정하지 않고 반성 없는 일본 정부에 진심 어린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야 합니다. 이런 뜻을 담은 노동자상을 반드시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에 세울 겁니다.”
2일 민주노총 부산본부 사무실에서 만난 김병준 ‘적폐청산·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특별위원회’(건립특위) 위원장이 힘주어 말했다. 한진중공업 하청업체 노동자였던 그는 2008년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지금은 민주노총 부산본부 조직국장이다. 그가 강제징용 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을 알게 되면서다. 일본 군사시설에 끌려가 강제노동했던 조선인 노동자들을 태우고 우리나라로 향하던 우키시마호는 1945년 8월24일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폭발로 침몰해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그는 “2010년에서야 그 사건을 제대로 알게 됐다. 희생자는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었다. 자연스럽게 강제징용 노동자에 관심이 갔다. 같은 노동자로서 강제징용 노동자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강제징용 노동자 문제는 파고들수록 처참했다는 말도 했다.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뒤 국가총동원법을 만들어 패망 전인 1945년까지 조선을 수탈했다. 이 기간 강제동원된 조선인은 250만~800만여명으로 추정된다. 그는 “그들은 대부분 힘없고 가난한 청년과 청소년이었다. 폭행과 협박에 시달리며 길게는 하루 17시간 동안 일했다. 죽어 나간 노동자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일 정부는 진심 어린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또 “우리 정부도 피해자 회복엔 관심이 없었다. 박정희 정부는 1965년 한일 협정에서 5억 달러를 받고 국민 간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일 정부와 합의했다.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한을 풀기 위해, 역사를 바로잡으려고 (강제징용 노동자상 설립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강제징용 노동자상 1호는 조선인 노동자가 강제로 끌려가 노역을 했던 일본 단바 망간광산에 2016년 8월 세워졌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피해 노동자의 인권유린 실태를 알리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의도로 설립했다. 그 뒤 국내에서도 건립운동이 일었고, 지금까지 서울·인천·경남·제주 등에 설치됐다.
지난해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
강제징용 노동자상 설립 추진 주도
시민 6500여명 1억원 모금
작년 5월 건립시도 정부방해 불발 “전국 곳곳서 유족들 감사 인사
시민 뜻 모아 올핸 꼭 세울 것” 재작년 9월11일 민주노총 부산본부는 부산 동구의 일본총영사관 앞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을 발표했다. 이어 작년 1월 “5월1일 노동절을 맞아 일본총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옆에 노동자상을 세우겠다”고 선포했다. 시민단체와 함께 하는 건립특위도 꾸려졌다. 그는 “특히 부산은 강제징용 노동자들이 일본 등지로 끌려가기 전 마지막으로 밟은 우리 땅이다. 부산에 노동자상을 세우는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노동자상으로 국민이 마음을 모으고, 기억하고, 행동하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게 노동자상 건립의 본질적 목표”라고 했다. “왜 일본총영사관 앞이냐고요? 일제강점기 때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입니다. 또 다른 피해자는 노동자에요. 일 정부는 전쟁범죄에 사죄는커녕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죠. 그런 일본을 준열하게 비판하려면 여성과 노동자가 앞장서야 합니다. 여성을 상징하는 소녀상은 이미 그곳에 있어요. 노동자상이 그 옆에 나란히 서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건립 시민모금엔 220개 단체와 6500여명의 시민이 힘을 보태 목표치 8000만원을 넘어 1억원이 모였단다. 노동자상은 작가가 일본으로 끌려가 갱도에서 작업을 마치고 나온 조선인 노동자 모습을 형상화했다. 소녀상을 만든 김서경 조각가의 작품이다.
하지만 외교부 등은 작년 4월 “외교적 문제가 날 가능성이 크다”며 일본총영사관 앞 노동자상 설립을 반대했다. 대신 남구의 국립 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반대 의사에 황당했어요.” 이런 반대에도 건립특위는 작년 5월1일 일본총영사관 앞 노동자상 건립을 시도했다. 막아선 경찰과 몸싸움까지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노동자상은 결국 경찰이 확보했다. 그 뒤로도 한달 동안 건립 추진 시민들과 경찰은 노동자상을 놓고 대치했다. 경찰이 5월 31일 노동자상을 강제 철거할 때 시민들은 “일본 공무원이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김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도 부산 소녀상 건립을 막지 못했는데,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결국 노동자상 건립을 막았다.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노동자상은 일제강제동원역사관 1층 로비에 임시보관됐다가 지난 7월 건립특위에 반환됐다. 강제철거 과정에서 파손된 노동자상은 현재 수리를 마친 상태다. 그렇지만, 건립특위에 대한 강제징용 노동자 유족들의 감사 인사는 이어지고 있다. 이날도 사무실에 강제징용 피해를 본 재일교포가 찾아와 김 위원장에게 감사를 전했다.
“전국 곳곳의 강제징용 노동자 유족들로부터 많은 감사 인사를 받습니다. 재일교포분들도 함께 힘을 모으겠다고 격려해주세요. 그때마다 울컥합니다. 다시 부산 시민들과 힘을 모아 일본총영사관 앞에 노동자상을 세울 겁니다. 정부는 이런 민심을 제대로 파악해 받아들이기를 바랍니다.”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김병준 건립특위 위원장이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동 기자
강제징용 노동자상 설립 추진 주도
시민 6500여명 1억원 모금
작년 5월 건립시도 정부방해 불발 “전국 곳곳서 유족들 감사 인사
시민 뜻 모아 올핸 꼭 세울 것” 재작년 9월11일 민주노총 부산본부는 부산 동구의 일본총영사관 앞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을 발표했다. 이어 작년 1월 “5월1일 노동절을 맞아 일본총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옆에 노동자상을 세우겠다”고 선포했다. 시민단체와 함께 하는 건립특위도 꾸려졌다. 그는 “특히 부산은 강제징용 노동자들이 일본 등지로 끌려가기 전 마지막으로 밟은 우리 땅이다. 부산에 노동자상을 세우는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노동자상으로 국민이 마음을 모으고, 기억하고, 행동하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게 노동자상 건립의 본질적 목표”라고 했다. “왜 일본총영사관 앞이냐고요? 일제강점기 때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입니다. 또 다른 피해자는 노동자에요. 일 정부는 전쟁범죄에 사죄는커녕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죠. 그런 일본을 준열하게 비판하려면 여성과 노동자가 앞장서야 합니다. 여성을 상징하는 소녀상은 이미 그곳에 있어요. 노동자상이 그 옆에 나란히 서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김서경 작가가 만든 노동자상 모습. 건립특위 제공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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