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봉근 전 비서관(왼쪽)과 이재만 전 비서관. 한겨레 자료사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가정보원장 특수공작사업비(특별사업비) 수수에 관여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방조 및 국고손실 방조)로 재판에 넘겨진 ‘문고리 3인방’ 안봉근, 정호성 전 비서관이 2심에서 더 높은 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국정원에서 청와대로 전달된 특별사업비 일부가 뇌물에 해당한다는 첫 판단을 내놨다.
4일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김문석)은 안봉근(53) 전 국정홍보비서관에게 징역 2년 6개월, 1350만원의 추징과 1심(2700만원)보다 많은 1억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1심에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정호성(50) 전 비서관에게는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 벌금 1억원을 선고했다.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이 선고됐던 이재만(53)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대한 항소는 기각했다.
재판부는 2016년 9월 국정원이 청와대에 전달한 2억원이 ‘뇌물’에 해당한다는 새로운 판단을 내놨다. 검찰은 국정원장이 건넨 특별사업비는 업무상 편의를 기대하고 청와대에 건넨 뇌물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지만 1심 재판부는 이를 뇌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바 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국정원이 건넨 특별사업비 33억여원 중 2억원은 뇌물에 해당한다고 봤다. “국정원에 막대한 영향력을 갖는 대통령이 거액의 금품을 제공한 것만으로도 직무집행의 공정성을 의심받을 만하다. 특혜를 주지 않더라도 뇌물로 볼 수 있다”는 취지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자 국정원의 자금지원이 일시 중단됐다. 국정원은 청와대에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무엇을 해드리면 좋겠냐”고 물었고 “명절에 쓸 돈을 지원해달라”는 요구에 따라 2억원을 정 전 비서관을 통해 청와대에 전달했다. 재판부는 “2016년 9월 국정원은 ‘박 전 대통령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진해서 1억원 증액된 돈을 내놨다. 정기 상납받던 돈이 이 전 비서관을 통해 전달된 것과 달리 정 전 비서관이 이를 직접 전달했던 점도 기존 상납 방식과 다르다”고 덧붙였다.
문고리 3인방의 1심, 전직 국정원장들, 박근혜 전 대통령 관련 재판에서 특별사업비는 뇌물이 아니라는 판단이 잇따른 바 있다. 정해진 예산의 목적과 다르게 사용됐지만 직무와 관련이 없고 대가 관계도 없어 뇌물은 아니라 본 것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에 전달된 특별사업비 일부가 처음 뇌물로 인정되면서 박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 혐의 유·무죄 판단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국정원장이 회계 업무를 담당하는 ‘회계관계 직원’이라고 판단한 1심 판단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국고 등 손실죄(특정범죄 가중처벌법 제5조)는 ‘회계관계 직원’이 국고 또는 지방자치단체에 손실을 입힐 것을 알면서 횡령을 저지를 경우 가중처벌하게 돼 있다. 국정원장이 회계관계 직원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문고리3인방의 국고등 손실 방조죄 성립 여부가 달라진다.
재판부는 국정원 특별사업비 집행계획서에 국정원장 결재란이 있고, 국정원장이 직접 결제를 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국정원장의 지시에 따라 특별사업비를 집행했다’는 국정원 직원의 진술도 참고했다. 재판부는 “국정원장에 배정된 특별사업비 일부는 국정원장이 집행을 지시하고 승인하는 방법으로 권한을 행사했다. 국정원장은 여전히 관련법이 규정한 회계관계 직원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국정원장을 회계관계 직원으로 볼 것인지 여부는 재판부마다 판단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조영철)은 “국정원장은 회계관계 직원이 아니라”며 특별사업비 상납 혐의로 기소된 전직 국정원장들의 형량을 감형한 바 있다. 국정원으로부터 특별사업비를 상납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 또한 “국정원장은 회계관계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관련 혐의가 성립할 수 없다”며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정호성 전 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은 박근혜 정부 당시 2013년 5월부터 2016년 9월까지 모두 33억여원의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청와대에 건네는 데 관여한 혐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국고 등 손실 방조)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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