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3·1 독립선언은 인류가 평등하다는 가치와 세계 평화의 의미를, 피지배 민족인 조선인의 육성으로 전세계에 최초로 알린 선구적 행동이었습니다.
역사적인 해를 맞아 <한겨레>는 100년 전 오늘로 돌아가 1919년판 <한겨레>를 만들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당시에 활약했던 다양한 독립운동가들의 삶도 영상으로 담았습니다.
100년 전인 1919년. 일본 동경과 서울, 충북 괴산에서 3·1운동을 주도한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후대에 ‘동경삼재’(개화기 조선의 세 천재)로 불리게 된 이들은 육당 최남선, 벽초 홍명희, 춘원 이광수입니다.
조선인 유학생이었던 세 사람은 1906년 ‘동양의 런던’이라고 불렸던 동경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서로 책을 소개하고 잡지 기고를 하며 우애를 쌓던 이들은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뒤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듭니다.
이들은 동경에서 일어난 2·8 독립선언부터 조선의 3·1운동까지 비폭력 만세운동을 주도합니다. 이광수와 최남선은 각각 2·8 독립선언서와 3·1일 독립선언서를 작성했고, 홍명희는 충북 괴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죠.
"홍명희, 최남선 두 분은 나를 아우로 사랑하고 나도 두 분을 형으로 경모했습니다." 이광수의 회고록에서도 드러나듯 세 사람은 서로에 대한 우정이 깊었지만, 일제의 식민 통치가 고조되면서 엇갈린 선택을 합니다. 친일과 항일 사이, 이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해방 이후 이들은 서로의 행적에 대해 어떻게 평가했을까요?
자세한 내용은 영상에서 확인하세요.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