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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속수무책 당하는 여성들에게 ‘법률 예방접종’ 해주고파”

등록 2019-01-09 16:40수정 2019-01-09 20:04

[짬] 법률 해설서 함께 펴낸 이찬숙·송지혜 변호사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대에게’ 출간
일상 피해·부당대우 ‘법적 대응’ 안내
불법촬영·성폭력·이혼 등 사례별로

‘성추행 사건 목격’ 법률 조언 계기
크라우드펀딩 통해 출판비용 모금
후원자·독자들과 북토크도 예정
지난 5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책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대에게>를 집필한 송지혜(왼쪽), 이찬숙 변호사를 만났다. 고한솔 기자
지난 5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책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대에게>를 집필한 송지혜(왼쪽), 이찬숙 변호사를 만났다. 고한솔 기자
지하철에서 계단을 오르다 불법촬영 피해를 당했다. 가해자는 마지못해 촬영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저장 버튼도 누르지 않고 핸드폰을 꺼버렸다”, “문제 될 게 없다”고 맞섰다. 가해자의 말이 맞을까?

‘몰카’라는 비범죄적 용어로 불리는 ‘불법촬영’ 피해는 속출하지만 범죄자는 기상천외한 방식과 변명으로 법망을 빠져나간다.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까. 책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대에게>(페이퍼타이거) 설명에 따르면, 법원은 “저장을 안 했어도 일단 촬영을 시작했으면 범죄”라고 본다. 저장 버튼을 누르지 않고 촬영을 종료하더라도, 촬영을 시작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영상이 주기억장치에 임시저장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조언도 건넨다. “가해자들은 범죄용 휴대폰을 따로 가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범행에 사용한 휴대폰이 어떤 색깔이었는지, 어느 정도 크기였는지 최대한 구체적으로 수사기관에 알려줍시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대에게>는 여성이 일상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문제들을 법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쉽게 풀어썼다. 한 손에 잡히는 아담한 크기의 법률 기본서다. 이 책을 공동집필한 이찬숙(33·변호사시험 6회)·송지혜(36·변호사시험 2회) 변호사는 “미투, 리벤지포르노, 몰카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은 높아졌지만, 법은 여전히 어려운 존재다. 여성들이 법률을 어려워하지 않고 (자신을 지킬) 무기라고 생각하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대에게> 공동집필한 이찬숙 변호사.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대에게> 공동집필한 이찬숙 변호사.
두 변호사가 의기투합한 것은 지난해 봄이다. 출판사 <페이퍼타이거>를 운영하는 김은선 대표는 소속 대학원에서 성추행 사건을 목격했다. 한 교수가 제자들을 상대로 상습적인 추행과 희롱을 저지른 사실이 폭로됐지만, 피해자와 목격자들은 선뜻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교수의 행동이 범죄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무고죄로 처벌받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때문이다. 목격자 증언에 나선 김 대표에게 법률 조언을 해준 두 변호사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알리고 법적인 도움을 받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한 것일까’, ‘피해자일뿐인데, 왜 주변 시선과 오해들을 걱정해야 하는 것일까’. 법은 가깝고도 멀었다.

“법률사무소에서 무료 법률 상담을 해준 적이 있어요. 성범죄·이혼 등 여성들의 문의전화가 상당히 많이 오는데 정작 사무실에는 찾아오지 않더라고요. ‘수임료를 내야 하지 않을까’ ‘법적인 조치를 취했다가 보복당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드는 거죠.”(이찬숙 변호사) “인터넷 커뮤니티만 봐도, ‘이런 일을 당했다. 고소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올라오면 답글은 많이 달려도 속시원히 해결이 안 돼요. 법률 상식이 말만 상식이지, 아직 상식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송지혜 변호사)

두 변호사는 여성들이 법률을 두려워 하지 않고 얼마든지 활용 가능한 든든한 무기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뭉쳤다. 각각 기업 사내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이들은 퇴근 후 시간을 내야 했다. 지난해 5월부터 꼬박 반년이 걸려 원고를 썼다. 야간집필 덕분에 음식배달 앱 이용 우수회원은 덤으로 따라왔다. 출판 비용을 모으기 위한 텀블벅 펀딩(창작자를 위한 크라우드 펀딩)도 시작했다. 모금 28일 만에 516명이 참여해 800만원 넘는 돈이 모였다. 애초 목표액은 200만원. 400% 성공률이었다. “나 말고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참여한다”, “자주 가는 카페에 놓고 싶다” 등 응원 메시지도 쏟아졌다고 한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대에게> 공동집필한 송지혜 변호사.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대에게> 공동집필한 송지혜 변호사.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대에게>는 성범죄뿐 아니라, 결혼 생활, 직장 생활 등에 대한 법률 조언도 담았다. “남성이 연봉과 승진을 논할 때 여성은 결혼 후에도 이 직장에 더 다닐 수 있을지, 단절된 경력을 들고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잖아요. 이혼할 때도 남편이 ‘소송으로 가면 네가 지게 돼 있다’는 말을 그냥 믿는 경우도 많아요.”(이찬숙 변호사)

두 변호사는 양육비를 주지 않는 전 남편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법원을 통해 전 배우자의 회사를 상대로 양육비를 지급하게 하라”고 조언한다. ‘경단녀’는 있어도 ‘경단남’이란 단어는 없다는 사실에 씁쓸해하며 육아휴직을 거부하는 회사에 대한 대응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법률 기본 용어, 상대 변호사가 나를 공격하는 논리, 법정 시뮬레이션까지 설명해 준다. 생전 처음 겪는 일에 당황할 피해자를 염려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담겼다.

두 변호사는 북토크를 통해 펀딩에 참여한 독자들도 만날 예정이다. “부당 대우받을 때 이게 잘못된 건지 모르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때가 많잖아요. ‘이럴 때는 이렇게 대처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예방접종을 받는 것처럼 여성들 마음에도 예방접종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송지혜 변호사)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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