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고려대서 열린 추모식 참석해 당부
“환자들 치료 잘 받을 수 있었으면”
41개 보건의료·환자 단체 공동결의문
국가 정신건강 제도 근본 개혁 촉구
지난 12일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고 임세원 교수 추모식이 열렸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를 비롯하 41개 단체 대표들은 이날 ‘안전하고 편견없는 치료환경’을 위한 결의문을 낭독했다. 사진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제공
지난달 31일 자신이 진료하던 환자의 흉기에 찔려 숨진 고 임세원 교수의 유족이 ‘안전하고 편견 없는 치료환경 구축을 위한 임세원법’ 제정을 촉구했다.
14일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 따르면, 지난 12일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열린 고 임세원 교수 추모식에서 고인의 아내는 인사말을 통해 “평소 알 수 없는 통증으로 힘들어 했던 남편이 그렇게 아프게 간 모습에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이는 평생 제 가슴에 담고 갈 아픔으로 생각합니다. 남편의 아픈 죽음이 꼭 ‘임세원법’으로 결실을 맺어 헛되지 않았으면 합니다”라고 당부했다. 또 “아직은 가해자를 용서하겠다는 말은 못하겠지만 남편이 항상 자랑스러워하고, 열심히 하였던 정신질환 환자들이 치료를 더 잘 받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대한신경정신의학회를 비롯해 한국정신건강사회복지사협회·보건의료노조 서울시정신보건지부·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등 정신건강 관련 41개 단체는 “정신건강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신체질환과 다름없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편견 없이 언제든 치료와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제도적·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의 공동 결의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정부에 진료 환경을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구체적인 대책 마련을 주문하는 한편, 국회·정부·사회가 정신건강 제도 전반에 대한 근본적 개혁을 해나가야 한다고 요구했다.
앞서, 지난 10일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안전한 진료·완전한 치료’ 환경 구축을 위해 여섯 가지 요구안을 마련해 제도화를 촉구했다. 정신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실태조사 및 문제 철폐를 통해 치료가 제 때 이루어지도록 하고, 강제입원이 필요한 경우 법원 판사 혹은 의료진·법률 전문가가 함께 적절성을 심사하는 ‘사법입원제’ 도입, 정신보건 예산 확대 등이 주요 내용이다. 올해와 지난해 보건 예산 가운데 정신보건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그쳤다.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사법입원제에 대해 “가족과 의사 판단으로 강제입원이 이루어지는데, 강제입원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겪게 된 환자들은 다시 가족과 의사들에게 적대감을 보인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가족 내 갈등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사법적 판단 개입은 환자 인권 보호와 가족 부담을 줄여주는 동시에 안전한 진료환경 기반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6년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보호 의무자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본인 동의가 없더라도 강제입원을 시킬 수 있었다. 헌법재판소가 이러한 제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자, 정부는 모든 강제입원에 대해 한달 내에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치도록 했다. 권역별로 5개 국립정신병원에 설치된 입원적합성심사위는 의사와 법조인, 당사자 및 가족, 정신건강전문요원, 관련 학과 교수 등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여전히 독립성이 부족한데다 환자들의 ‘말할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못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