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공권력에 의해 타지로 끌려가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제주4·3 생존 수형인 18명이 70년 만에 사실상 무죄를 인정받았다. 17일 오후 제주시 지방법원에서 법원의 공소기각 판결로 사실상의 무죄를 선고받은 피해자들인 제주4·3 생존 수형인 18명이 만세를 부르고 있다. 제주/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합니다. 더는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지난해 4월3일 ‘제70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약속했다. 여야 지도부도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특별법)을 개정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발의된 지 1년이 넘은 4·3특별법 전부개정안은 지난해 9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올라온 뒤 더는 진척이 없는 상태다. 4·3 생존자와 희생자 유족 등은 17일 4·3 당시 수형자들에게 사실상 무죄 판단(공소 기각)을 한 제주지법의 재심 선고를 지렛대 삼아,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4·3특별법 개정 논의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2017년 12월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60명이, 지난해 3월에는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 등 11명이 4·3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1999년 김대중 대통령 재임 때 제정돼 이듬해 시행된 4·3특별법을 크게 손질하는 내용이다. △군사재판 결과 일괄 무효화 △특별사면과 복권 건의 △수형인 명예회복 △추가 진상조사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배상 △생존자와 유족을 위한 트라우마 치유센터 설립 △4·3 왜곡 시도 처벌 등을 담고 있다.
이 법안들은 국회에 표류 중이다.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고 지난해 4·3사건 70주년으로 여론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연내 처리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지만, 정부와 국회의 열띤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해 10월 고령의 4·3 수형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제주시청 주변 2㎞를 행진하며 정부와 국회에 4·3특별법 개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더구나 이날 법원의 공소기각 판결의 효과가 재심을 청구했던 18명 이외의 생존자나 희생자, 유족에게까지 미치는 것은 아니다. 당사자와 유족이 일일이 재심 청구에 나서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4·3특별법 개정을 통해 70여년 전 제주도민들을 폭도로 만든 군사재판 결과를 일괄 무효로 해야 한다는 특별법 내용이 힘을 얻는 이유다.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제주4·3희생자유족회 법률지원단)는 “재심을 청구한 18명의 수형인 일부는 피해자로서 당시 상황에 대한 진술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 밖의 고령의 수형인과 이미 세상을 떠난 희생자들은 재심 청구가 불가능하거나, 청구하더라도 이번 재심 선고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특별법 개정을 통한 일괄 해결을 촉구했다. 박찬식 제주학연구센터장(제주 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운영위원장)은 “군사재판 희생자는 2500여명이다. 모든 이를 재판으로 해결할 수 없다. 입법으로 일괄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관련 시민단체는 4·3 71주년인 올해 4월3일까지 특별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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