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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억대연봉 #성공…신종 직업 ‘예비 부지점장’을 아십니까

등록 2019-01-21 07:09수정 2019-01-22 07:39

‘허세 인증샷’ 화제 된 일부 보험설계사들의 에스엔에스
“취업난 속 구직자들의 욕망 자극하는 것”이란 우려도
‘예비 부지점장’ 인스타그램 계정을 패러디한 게시물. 유튜버 김덕배 페이스북 갈무리
‘예비 부지점장’ 인스타그램 계정을 패러디한 게시물. 유튜버 김덕배 페이스북 갈무리
#1.

이마를 훤히 드러낸 리젠트 헤어스타일의 20대 남성이 ‘에지’있는 수트 차림으로 오른 팔목을 자랑스럽게 들어 보인다. 남자가 보여주고 싶었던 건 큼지막한 크기의 명품 시계. 인스타그램 속 흔한 ‘명품 자랑’이다. 사진에는 ‘성공’, ‘도전’, ‘억대 연봉’ 등 마치 자기계발서를 요약한 듯한 키워드가 해시태그(#)로 달렸다. 아울러 ‘예비 부지점장’이라는 해시태그도 달려 있다.

#2.

명품 가방을 든 20대 여성이 고가의 수입 외제차에서 내리고 있다. 이 여성은 사진 속 자신의 ‘성공’을 설명하며 “도전하세요, 꿈과 열정이 가득한 제2의 ○○○(보험설계사 이름)을 기다립니다”라고 글을 맺었다. 자신과 함께 일할 새로운 보험설계사를 모집한다는 ‘리쿠르팅 공지’다. 역시 게시물에 달린 해시태그는 ‘예비 부지점장’이었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예비 부지점장’이란 키워드가 화제다. 21일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를 달아 ‘예비 부지점장’을 검색하면 모두 6700여건의 사진이 나온다. 에스엔에스에서 ‘예비 부지점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이들은 주로 외국계 생명보험사 소속 20~30대 보험설계사들이다. 그런데 실제 이들 업체에 물어보면, ‘예비 부지점장’이란 직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지점장’과 ‘부지점장’만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공식 직책은 아니지만, 지점 등에서 ‘예비 부지점장’이란 호칭을 사용하는 업체로는 외국계 생명보험사 3~4곳이 거론된다. 이들 보험사 지점에는 팀원 급인 ‘파이낸셜 컨설턴트’(FC)와 부지점장인 ‘세일즈 매니저’(SM) 사이에 중간 관리자 격인 ‘어시스트 세일즈 매니저’(에이에스엠·ASM)가 있다. 바로 이 에이에스엠에 해당하는 보험설계사들을 관행적으로 ‘예비 부지점장’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예비 부지점장’들의 에스엔에스 홍보로 유명한 ㅇ사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엄밀히 말해 ‘에이에스엠’도 본사가 사용하는 공식 명칭은 아니다. 하지만 각 지점장의 운영 방식에 따라 일부 지점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회사 영업조직이 2000명 규모이다 보니 본사 차원에서 설계사 개개인의 ‘예비 부지점장’ 홍보를 통제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_________
허세에 대한 쓸쓸한 냉소

‘예비 부지점장’들의 에스엔에스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희화화의 대상이 되곤 한다. 이들의 에스엔에스 ‘인증샷’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에 ‘예비 부지점장’ 해시태그와 함께 올라온 사진 속 인물들은 대부분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외제차 또는 명품 시계의 로고나 브랜드를 뽐내며 이른바 ‘허세 가득한’ 사진을 게재하는 경우가 많다. 성공이나 도전 등 청년층의 동기 부여를 자극하는 단어를 해시태그로 달고 자기계발서에나 실릴 법한, 희망 가득한 글을 게재하는 것도 특징이다.

누리꾼들이 ‘예비 부지점장’이라는 키워드를 유머 소재로 쓰는 건 허세에 대한 일종의 냉소다. 에스엔에스 속 이들은 많은 돈을 벌거나 성공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예비 부지점장이란 ‘이름’만 그럴듯할 뿐 주변 인맥을 동원해 영업하면서 박봉에 시달리는 대다수 보험설계사의 삶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는 얘기다.

보험업계 내에서도 이를 우려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예비 부지점장’을 앞세워 판매 및 리쿠르팅 활동을 벌이는 일부 생명보험사들이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사실상 허위과장 광고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생명보험사가 판매하는 ‘종신보험’은 자동차, 실비보험처럼 필요할 때 바로 돈을 탈 수 없기 때문에 경기 침체기에 영업이 더 어렵다. 보험사 매니저 10년 경력의 박아무개(35)씨는 “보험 영업은 극소수의 전문가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주변 사람을 가입시켜 실적을 올리는 ‘네트워크 장사’인 만큼 실적을 올리려면 계속 사람을 뽑아 (이들의 지인) 시장을 개척하는 구조”라며 “‘예비 부지점장’들의 외제차나 명품을 보고 혹해 설계사 일을 시작하는 청년들은 대부분 월 150만~200만원의 적은 급여를 받았던 경우가 많은데, 이들 주변에 종신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고객이 얼마나 있겠나. 100명이 들어오면 1년 뒤 남는 사람은 30~40명뿐이고, 부지점장이 되는 건 3~4명에 불과하다”고 업계의 사정을 전했다.

이런 현상도 결국 청년 취업난이 낳은 어두운 일면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보험 중개 플랫폼인 인스토리얼의 김진수 대표는 “취업에 여러 번 실패하거나 스펙은 좋지 않지만 좋은 직장에서 많은 돈을 벌고 싶은 청년 구직자들의 욕망을 ‘예비 부지점장’들이 에스엔에스로 자극하는 것 아니겠냐”라고 말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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