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양 조씨와 대원군 연합 왕위 올라
아버지와 아내 사이에서 권력 위태
죽음 많이 두려워 한 유약한 성정
고비마다 외세에 기대 반전 도모
개혁 기회 잃고 망국 초래한 군주
서양식 제복을 입은 광무황제. 한겨레 자료
<편집자주>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역사적인 해를 맞아 <한겨레>는 독자 여러분을 100년 전인 기미년(1919)의 오늘로 초대하려 합니다. 살아숨쉬는 독립운동가, 우리를 닮은 장삼이사들을 함께 만나고 오늘의 역사를 닮은 어제의 역사를 함께 써나가려 합니다. <한겨레>와 함께 기미년 1919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준비, 되셨습니까?
【1919년 1월22일 경성/오승훈 기자】“황제는 죽음을 많이 두려워하는 인상이다.”
광무황제를 알현한 적잖은 외국인들은 이런 평을 남겼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돌이켜보면 황제는 중요한 순간에 결단력 있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국운이 저무는 시절에 임금이 되었지만, 황제 퇴위를 거부하던 때를 제외하곤 시대가 요구한 단호함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봉건시대의 임금이 대부분 그러하듯 황제도 자신의 능력으로 왕이 된 인물이 아니었다. 계해년(1863) 세도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색에 빠져 정치를 바로잡지 못한 철종이 병사하자, 신정왕후 조씨가 내린 전교로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 명복(아호)은 12살의 나이에 왕이 되었다. 세도가인 안동 김씨 세력을 견제하려는 풍양 조씨와 대원군의 연합이었다.
대원군의 섭정 11년을 숨죽여 지낸 임금은 부인인 민비와 아버지의 권력갈등 구도 속에서 갑술년(1874) 대원군을 축출하고 민비 세력과 함께 친정체제를 구축하였다. 개항 초기 개화정책에도 관심을 가져 관제와 군제를 개혁하는 한편, 일본에 신사유람단과 수신사를 파견하였다.
왕의 치세는 늘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민비 세력의 부정부패로 임오년(1882) 군란이 일어나자 구식 군대를 등에 업은 대원군이 다시 권력을 잡았고 갑신년(1884) 정변 때는 김옥균을 위시한 개화세력에게 정권이 흔들리는 등 왕권은 늘 휘청거렸다.
청일전쟁 당시 조선에 진주하고 있는 일본군. 독립유공자유족회 제공
임금은 그럴 때마다 외국 군대의 힘을 빌려 반전을 도모하고자 했다. 계사년(1893) 동학농민군이 보은집회를 열자 외국 군대의 준동을 우려하는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청국 군대를 끌어들인 것도 그였다. 외교정책에서는 ‘반청’ 성향을 보였던 임금이 동학군 봉기에는 청군의 도움을 받으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이중성의 배경에는 ‘왕권이 곧 국권’이라고 여긴 봉건적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결국 청군의 진출은 일본의 참전으로 이어져 청일전쟁의 도화선이 됐다. 외세에 기댄 군주 탓에 동학농민군은 외국 군대에 무참히 학살되었고 나라는 마지막 개혁의 기회를 잃었다.
을사년(1905)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되던 조약 체결 과정에서도 황제는 오락가락하였다. 반대 의사를 피력하다가도 현실론을 제시한 학부대신 이완용의 주장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소심하고 유약한 성정의 그는 조약이 노예의 길로 가는 관문임을 모르지 않았지만 결코 목숨을 걸고 맞서지 않았다. 이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밀사를 보내 조약의 부당함을 알리려 했지만 냉엄한 국제사회는 약소국의 처지를 외면하였다.
이 일로 이토 히로부미의 사주를 받은 친일파 대신들에 의해 퇴위를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던 그는 덕수궁에서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과정을 무력하게 지켜보았다. 식민 지배 9년, 파리강화회의 개최와 함께 독립의 기운이 예사롭지 않은 기미년 정초에 경기 남양주 금곡동에 한 많은 육신을 누이게 되었다.
일국의 영수가 민중의 지지를 구하기보다 외세에 의존해 국가를 운영할 때, 망국은 시나브로 다가온다는 역사적 교훈을 후대는 잊지 않아야 한다. 황제의 부음에서 이제 ‘제국’의 시대가 저물고 ‘민국’의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깨닫는 것은 신민에서 인민이 된 우리의 당연한 ‘불충’이다.
을사조약 체결 뒤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중명전 앞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친일파들의 축하 촬영 모습. 국가보훈처 제공
△참고문헌
하원호, ‘망국의 리더십, 고종의 리더십’(내일을 여는 역사·2015)
교수신문 기획·엮음, <고종황제 역사 청문회>(푸른역사·2005)
손영숙, ‘대한제국기 고종의 정치사상 연구’(한국근현대사연구·2009)
〈한겨레좌담〉 https://youtu.be/5dEVIKF0rcc
△참고문헌
하원호, ‘망국의 리더십, 고종의 리더십’(내일을 여는 역사·2015)
교수신문 기획·엮음, <고종황제 역사 청문회>(푸른역사·2005)
손영숙, ‘대한제국기 고종의 정치사상 연구’(한국근현대사연구·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