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한 언론 보도로 촉발된 대법원 ‘전자법정 입찰비리’ 의혹. 대법원 자체 감사와 수사 의뢰, 그에 따른 검찰 수사를 거치면서 전·현직 법원공무원들이 수억원의 뒷돈을 주고받으며 나랏돈 수백억원을 부당하게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일로 현직 법원공무원 4명을 비롯해 현재까지 9명이 무더기로 구속되기도 했다.
그런데 최초 제보자인 이아무개씨가 이번 사건의 핵심 공범인 사실이 최근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이씨는 지난 25일 입찰방해,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횡령) 및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29일 검찰 및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진행된 검찰 수사 과정에서 “나는 공익제보자다. 공익제보자로 대접받길 원한다”고 요구했다고 한다. 다른 경로를 통해 이씨가 ‘로비 리스트’를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검찰은 제출을 요구했지만, 이씨는 일부 로비 대상들만 선별적으로 진술했다고 한다.
이씨를 수상하게 여긴 검찰은 강제수사에 돌입, 그가 이 사건 ‘주범’인 남아무개(전직 법원공무원)씨를 도와 드림아이씨티와 인포브릿지 등 2개사를 세우고, 인포브릿지의 대표를 맡는 등 2008~16년 부정입찰 전반을 주도한 ‘공범’이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2016년 말 수익금 배분 문제를 놓고 다투다 남씨와 결별하기 전까지 200억원대 입찰비리를 주도했다고 한다.
특히 이씨는 자신들이 세운 업체들이 전자법정 사업을 독점해 업계 주목을 받게 되자, 범행을 감추기 위해 다른 전자장비 업체들을 ‘들러리’로 세우고 커미션을 받아 챙기자고 제안한 ‘설계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이 업계에 마당발로 알려져 있던 외국계인 한국오라클㈜의 부장인 윤아무개(구속)씨를 영입해 들러리 업체들을 모은 것도 이씨라는 것이 검찰 판단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씨는 공익제보자라기보다는 사익제보자였다”며 “자칫 검찰 수사 자체가 ‘청부 수사’라는 의혹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14일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 구상엽)는 전·현직 법원공무원과 전산장비업체 관계자 등 10여명을 입찰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전직 법원공무원인 남씨가 2008~18년 현직인 강아무개씨 등 7억여원의 뒷돈을 건네고, 전자법정 사업 관련 내부 입찰 정보를 미리 받아 36차례에 걸쳐 497억원의 부당이익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또 남씨 일당으로부터 2015∼17년 뒷돈 6800만원을 받고 입찰 편의를 봐준 한국콘텐츠진흥원 정아무개 전 과장(뇌물수수 등)과 ‘제보자’ 이씨가 각각 지난 25일 구속됐다. 아울러 남씨 일당과 짜고 공사비를 부풀려 되돌려받는 방식으로 1천여만원을 가로챈 사법연수원 소속 법원공무원 윤아무개(지난 28일 구속영장 청구)씨가 적발되기도 했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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