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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2·8선언엔 ‘독립운동의 남녀동등’ 외친 여성들 의지도 담겼죠”

등록 2019-01-29 19:33수정 2019-01-29 21:30

[짬]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신영숙 기획위원장

신영숙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기획위원장.                  강성만 선임기자
신영숙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기획위원장. 강성만 선임기자

사단법인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이하 사업회·회장 김희선)는 새달 8일 서울 서소문로 배재어린이공원에 항일독립운동여성상을 세운다. <거사 전야>란 이름의 이 조형물은 한복을 입은 여학생이 등불을 비춰주고 요즘 복장의 여학생이 유인물을 등사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김운성·김서경 작가 부부의 작품이다. 부부는 사업회의 기획위원이기도 하다. 지난 25일 서울 신설동 사업회 사무실에서 신영숙 기획위원장을 만났다.

애초 조형물을 서울역 앞에 세우려고 검토했으나 유관기관 협의 등이 쉽지 않았단다. “사업회 뜻에 공감한 서양호 중구청장의 도움이 컸어요.” 왜 조형물을? “항일 운동을 한 여성들이 많은데 너무 알려져 있지 않아요. 교과서에도 여성 독립운동가는 유관순 열사만 나오잖아요.” 지난해 국감 자료를 보면, 여성 독립운동가가 1명만 나오는 고교 국사 검인정 교과서가 3종이나 된다.

왜 2월 8일에 제막식을? “3·1 독립선언서 이전에 2·8독립선언서가 나왔어요. 4월엔 대한독립여자선언서 발표도 있었죠. 두 선언이 3·1혁명에 영향을 미쳤고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꼭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지만 우리는 잘 몰라요.”

항일독립운동여성상 <거사 전야>의 밑그림.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제공
항일독립운동여성상 <거사 전야>의 밑그림.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사업회는 지난 18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2·8 독립선언과 항일여성' 세미나도 열었다. 신 위원장은 주제 발표를 맡아 1919년 2월 8일 도쿄 유학생들의 독립선언서가 나오기까지 김마리아(1891~1944)와 황에스터(1892~1971) 등 여자 유학생들이 기여한 행적을 자세히 살폈다. “김마리아와 황에스터는 2·8선언 사전 준비모임에도 나가고 토론에도 참여하죠. 도쿄여자유학생친목회 이름으로 독립운동 기부금 125원을 내기도 했고요. 친목회 여학생 25~30명이 십시일반 모았어요. 그때 남학생들의 기부금 기록은 지금껏 보지 못했어요. 여학생들의 독립선언에 대한 참여 의지를 보여주는 자료이죠.” 황에스터는 ‘거사’ 한 달 전쯤 유학생 모임에서 ‘수레도 두 바퀴로 가야 잘 굴러간다. 여성도 독립운동을 할 자격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단다. “선언 준비가 남학생 중심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해서죠. 8일 선언식에도 일본 전역에서 온 여학생 40~50명이 참여했어요. 전체 참여 학생의 10% 정도 되지요.”

하지만 2·8선언을 다룬 주요 참고문헌엔 이런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2·8선언의 주체로 조선청년독립단 소속 실행위원 11명이 나오는데 다 남성이다. “김마리아와 황에스터가 왜 11명에 끼지 않았는지 연구가 필요해요. 하지만 자료가 부실합니다. 그때 도쿄여자유학생친목회가 <여자계>란 잡지를 만들어 7호까지 냈는데 지금 2·6호만 남아 있거든요.”

신 기획위원장은 한국 근대여성사 전공자다. 서울여대 영문과를 나와 교사로 일하다 뒤늦게 이화여대 사학과 대학원에 들어가 1989년 만 40살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제시기 한국여성사회사 연구’가 박사 논문 주제다.

‘2·8독립선언과 항일여성’ 세미나
‘김마리아·황에스터 등 활약’ 발표
도쿄여자유학생친목회 독립기금도
“선언 실행위원 11명엔 남성들만…”

‘일제시기 한국여성사회사’로 박사
새달 8일 ‘항일독립운동여성상’ 제막

“3·1혁명의 의미는 여성사 측면에서 더 획기적이죠.” 왜? “1920년대 초부터 우리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신여성’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3·1혁명이 계기였죠. 시위에 여학생이나 교사 등 엘리트는 물론 기생이나 장터의 농민여성 등 민중들도 많이 참가했어요. 3·1혁명을 계기로 제정된 임시정부의 첫 헌법에도 남녀평등 규정이 들어가요. 이게 참정권으로 이어지죠. 물론 유명무실한 것이지만 그래도 남녀평등을 공인한 싹을 틔운 계기가 3·1혁명입니다.” 1919년 이전에도 여성운동은 있었지만 남녀평등 주장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단다. “1894년 동학 폐정개혁안에도 축첩반대, 조혼금지와 같은 여성인권 조항이 있었죠. 1898년엔 첫 여성단체 찬양회가 생겨 여성교육을 앞세웠어요. 순성여학교도 세웠죠. 하지만 남녀평등까진 말하지 않았어요.” 그가 독립운동에서 남녀동등 자격을 주장한 도쿄 여자 유학생의 발언을 두고 “남녀의 동등한 사회적 평등권 주장은 이때가 아마 처음이 아닌가 싶다”고 논평하는 이유다.

그는 2014년 사업회 창립 때부터 참여했다. 그리고 1년 뒤 생애 첫 단독 저서 <일제 강점기 한국여성사-여성이 여성을 노래하다>를 냈다. 만 66살 때였다. 최초의 한인 볼셰비키 혁명가 김알렉산드라, 독립의열투쟁의 여전사 남자현 등 여성 독립운동가와 신여성 22명의 삶을 시로 정리했다. 지난 연말엔 11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를 더해 모두 33명을 수록한 전자책 <항일여성의 꿈과 사랑을 노래하다>도 냈다. 왜 시로? “성격상 길게 쓰고 말하는 걸 싫어해요. 2014년에 평생교육원에서 시 작법 강의를 12주가량 들었어요. 대학 때부터 시와 소설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마침 2015년이 광복 70주년이라 여성 독립운동가를 시로 다루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사업회가 하는 추모문화제에 매년 청소년 100여 명이 참여하는데, 이들에게 읽힐 자료로도 유용하겠더라고요.”

신영숙 위원장.                   강성만 기자
신영숙 위원장. 강성만 기자
여성 독립유공자는 지난해 60명을 서훈해 357명으로 늘었지만 여전히 전체 유공자(1만5180명)의 2.4%에 불과하다. 사업회의 일 중 하나가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과 서훈 신청이다. 그는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한 민영애(1927~2013) 선생이 ‘인우보증’(이웃이나 친구 등 제삼자가 독립운동 행적을 증언하는 것)이 없다는 이유로 서훈을 받지 못해 안타깝다고 했다. “민 선생은 임정 요인들을 찍은 사진에 두 번이나 나와요. 상하이에서 활동을 하다 결혼한 남편(이윤철)은 서훈을 받았어요. 이럴 땐 부부 모두 독립운동가로 인정하자는 게 사업회의 요구죠. 최근 보훈처에 사업회 차원에서 재심을 요청했어요.”

인터뷰 말미에 신 위원장의 친정 아버지 얘기가 나왔다. “제가 늦깎이로 박사 공부까지 한 데는 아버지 덕이 크죠. 신혼 때 남편(고 최강호 선생·서울대 법학과 67학번)이 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3년 넘게 옥고를 치렀어요. 그 시절에 저는 아이를 낳고 포항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했어요. 아버지가 당시 ‘네가 갈 길은 공부’라며 박사과정 진학을 권유하셨죠.” 민주 정부가 들어선 뒤 민주화유공자로 인정받은 남편은 지난해 10월 오랜 투병 끝에 아내 곁을 떠났다.

그는 대학 시절 남산(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공포 속에서 하룻밤을 보낸 일도 있다고 했다. “서울여대 학내 서클 소식지에 ‘북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머리에 뿔이 달리지는 않았다’는 내용의 글을 썼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중정 요원들이 찾아왔더라고요. 이것저것 캐묻더니 다음날 풀어주더군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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