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국제연대가 제공하는 플래카드 양식. “모든 좌파 활동가들을 석방하라”는 요구를 담고 있다.
지난해 12월26일, 중국 북경대에서 학생 한명이 연행됐다. 그는 대학 내 마르크스주의 학회 회장이었다. 대학 관료들은 새로운 마르크스주의 학회를 만들겠다고 통보했다. 다음날 새 학회가 만들어졌고, 기존 학회 학생들은 이에 항의했다. 대학당국은 18시간 동안 이 학생들을 강의실에 감금했다. 해가 바뀌어 1월10일, 중국의 노동운동가 푸창궈씨는 어머니를 잃었다. 중국 정부는 그의 장례식 참석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자쓰(Jasic) 공장의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다 지난해 8월 구금된 상태다.
중국에서 노동자와 학생, 활동가들이 사라지고 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자 했던 노동자들이 해고당하고, 대학 내 마르크스주의 학회는 등록이 취소됐다. ‘농민과 노동자의 당’이라는 중국 공산당 정부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정확히 확인되진 않지만, 지금까지 50명 가까운 사람들이 체포되고 구금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중국에서 <전태일 평전>을 보고 중국의 노동 현실을 고민하며 노동운동에 참여해왔다고 한다. 일부 학생들은 1980년대 한국의 ‘학출’들처럼 대학에서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한 뒤 공장에 취업했고, 노동운동에 참여했다. 방학이면 대학생들이 ‘노동자투쟁성원단’을 꾸려 연대활동을 떠났다. 하지만 이들이 갑자기 체포되고 구금되는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석방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준희 기자
이런 사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전태일의 나라’ 한국에서도 연대의 목소리가 나왔다. 국제민주연대와 민주노총 등 33개 단체는 31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명동 주한중국대사관 앞에서 ‘JASIC 노동자와 학생 및 활동가 석방과 탄압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 및 학생 활동가 즉각 석방’을 요구했다. 기자회견 내내 중국인 관광객들이 대사관 앞을 지나다녔다. 기자회견 전, 온라인에서도 연대의 움직임이 있었다. 중국 정부를 비판하거나 수감자들을 석방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피켓을 든 ‘인증샷’ 110개가 모였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중국 정부가 당장 수감자들을 석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지윤 다른세상을향한연대 활동가는 “중국에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와 학생들에게 강력한 연대의 마음을 느낀다”면서 “<전태일평전>, <한국노동자계급의형성> 같은 책을 읽고 토론·활동했던 것이 바로 한국의 활동가와 학생이었는데, 지금 같은 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이 중국에서 엄청난 탄압을 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정의당 국제연대 당원모임 김지문씨는 “(중국 정부는) 노동자들을 강조하는 사상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대학생들이 이를 실천하자 짓밟았다”며 “중국이 이들을 석방하고 활동을 보장할 때까지 끝까지 전진하겠다”고 했다.
농민공 문제에 주목한 발언도 있었다. 정영섭 이주공동행동 집행위원은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는 중국 농민공들은 이주노동자와 같은 처지에 있다”며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이들의 처지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중국 정부는 지금 상황을 억누르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한국의 인권·노동·시민사회 단체들은 한국 기업들도 대거 진출해 있는 중국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중국의 노동자·활동가·학생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하며 연대한다”며 “중국 정부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포함하여 이들의 인권을 억압하면서 기약 없는 구금을 지속하고 있는 것에 강력히 항의하며, 이들을 중국에서도 큰 명절인 설날 전에 석방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회견을 마친 뒤 참가자들은 국문·영문·중문으로 된 성명서를 우편함에 넣어 중국대사관에 전달했다. 이들은 이번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한국에서 중국의 노동자·학생들과 지속적으로 연대할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인증샷 릴레이도 계속 진행한다. 참여방법은
구글 드라이브에서 원하는 파일을 다운받아 출력하거나 직접 연대의 말을 적은 피켓 등을 만들어 인증샷을 찍은 뒤 #jasic #중국은노동자와학생을석방하라 #FreeCNmissingActivists 등의 해시태그를 달고 SNS에 올리면 된다. 이 인증샷 캠페인은
페이스북 동아시아국제연대에서도 동시 진행된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