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1천여명 참여…서울광장∼옛 일본대사관 행렬
‘단짝’ 길원옥 할머니 “왜 이렇게 빨리 가셨어…”
위안부 피해자 51명 영면한 ‘망향의 동산’에 안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발인식이 엄수된 1일 오전 운구행렬이 서울광장을 출발해 일본대사관으로 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1일 오전 10시8분,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실제 모델 이용수 할머니가 검은색 운구차에서 내려 무언가에 홀린 듯 평화의 소녀상으로 걸어갔다. 영하 7도의 날씨에 얼어붙은 소녀상의 ‘청동손’을 꼭잡은 이 할머니는 작심한 듯 말을 꺼냈다.
“우리는 아무 죄도 없습니다. 어린 나이 열다섯, 열여섯 때 그 폭탄이 빗발치는 데서 살아남았습니다… 그때는 조선이었습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입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우리의 죄는 모르고, 망언만 하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 너무너무 서럽고 안타깝습니다.”
20여분 뒤 시작될 일본군 성노예제(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을 앞두고 이 할머니는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원망을 쏟아냈다.
지난 28일 끝내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아흔셋 평화운동가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이 이날 오전 엄수됐다.
이날 오전 8시30분부터 진행된 노제는 시민 1000여명(주최 쪽 추산)이 참여한 가운데 서울광장을 출발해 세종대로를 지나 지난 27년 동안 수요시위가 열렸던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까지 행진하며 거행됐다.
노제에 참석한 시민들은 ‘일본군성노예 진상규명’, ‘나같은 희생자가 다시는 없기를’ 등의 글귀가 적힌 94개의 만장(고인을 기리는 글귀를 적은 천이나 종이)과 500여개의 나비 푯말을 들고 1.4㎞의 추모행렬을 이어갔다.
오전 9시45분께 일본대사관이 입주해 있는 트윈트리타워 앞에 멈춰선 추모객들은 “일본은 공식 사과하라”, “법적 배상을 이행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법적배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발인식이 엄수된 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에서 길원옥 할머니가 김 할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다. 평화의 우리집은 김 할머니가 생전에 머물던 곳이다. 연합뉴스
이날 영결식에서 생전 김 할머니의 건강을 돌봤던 권미경 연세대학교의료원노동조합 위원장은 “김 할머니는 위안부 시절 군 병원에서 간호사로 위장해 일했던 기억 때문에 병원에 가는 걸 무척 힘들어 하셨다”며 “그런 김 할머니가 문병 온 대통령에게 ‘일본의 사죄를 받게 해달라’고 말하기 위해 그토록 거부했던 진통제를 맞춰달라고 했을 때를 잊을 수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김 할머니의 상주 역할을 맡은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김복동 할머니의 삶을 통해 평화와 인권이 무엇인지, 상처 입은 사람을 함께 껴안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날 어머니와 함께 김 할머니의 영결식에 참석한 중학생 허아무개(15)양은 “올해 제 나이가 김 할머니가 ‘위안부’로 끌려갔을 때 나이와 같은데, 할머니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상상이 잘 안 간다”며 “오늘 김 할머니 영결식에 참석해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게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앞서 이날 김 할머니의 빈소가 차려졌던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은 이른 새벽부터 할머니의 발인을 지켜보기 위해 모인 추모객 100여명의 발길이 이어졌다.
발인이 예정됐던 오전 6시30분께 윤홍조 마리몬드 대표가 담담한 표정으로 김 할머니의 영정과 위패를 들고 빈소를 나섰고,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이용수 할머니 등이 그 뒤를 따랐다. 발인장에서 김 할머니의 관을 운구차량으로 운반하기 전 윤 이사장은 김 할머니의 관 위에 매직으로 “훨훨 날아 평화로운 세상에서 길이길이 행복을 누리소서”라고 마지막 편지를 썼다.
이어 운구차는 김 할머니가 생전에 머물렀던 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으로 향했다. 김 할머니와 함께 ‘평화의 우리집’에서 지냈던 ‘단짝’ 길원옥 할머니는 영정을 양손으로 어루만지며 희미한 미소를 띤 얼굴로 “왜 이렇게 빨리 갔어. 이렇게 빨리 안 갔어도 좋은데... 먼저 좋은데 가서 편안히 계세요. 나도 이따가 갈게”라고 말했다.
노제가 끝난 11시30분께 장지로 떠난 김 할머니는 충남 천안에 위치한 국립 망향의 동산에 안치된다. 이곳은 김 할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51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영면에 든 곳이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