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부터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 관련 글 5건 게시
마지막까지 응급의료체계 개선 고민하는 모습 보여
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 페이스북 갈무리
“업무 범위의 한계에서 시달리는 사람은 응급구조사이지만,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의 몫이다.”(2018년 11월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설 연휴 근무 중 돌연 숨진 윤한덕(51)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은 마지막까지 환자를 우선시하며 더 나은 응급진료 체계를 만들기 위한 고민을 멈추지 않았다.
의료계 반대에도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를 조정해야 한다는 소신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밝힌 게 대표적이다. 응급구조사는 응급환자가 발생한 현장에서 응급환자의 상담·구조 및 이송 업무를 수행하는 이들로 소방공무원 구급대원, 응급의료센터 종사자, 해경 등이 대표적이다. 윤 센터장은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 25일까지 관련 내용을 담은 글을 연속해서 올렸다. 응급의료 전용 헬기를 도입하고 재난·응급의료상황실과 응급진료 정보망 시스템 등을 구축하는 데 앞장서온 윤 센터장에게 이 문제는 “보건의료의 큰 틀을 그리는 분들에게는 미미한 언급으로 보이겠지만 내 관점에서는 큰 문제”였다.
윤 센터장은 응급구조사인 119구급대원이 심근경색 환자를 이송하면서 ‘12유도 심전도 검사’(팔과 다리 4개, 가슴 6개에 연결된 총 10개의 전극을 통해 12 방향에서 심장의 전기신호에 이상이 있는지 파악하는 검사)조차 할 수 없고 사고로 뼈가 부러진 환자에게 진통제 한알 줄 수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 윤 센터장은 “벌에 쏘여 과민성 쇼크로 119를 불러도 에피네프린 0.3㎎을 피하로 투여받기 위해서는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살아 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윤 센터장은 “심근경색 치료시간을 단축하려면 구급대원이 심전도 검사를 실시한 뒤 이를 의사에게 전송, 확인해 만약 시술이 필요한 심근경색이라면 심혈관센터로 이송시키면 되는데 이 간단한 절차가 우리나라에서는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환자는 가까운 병원에 이송되어야 하고, 심전도를 비롯한 각종 검사를 받아야 하고, 그다음 ‘전원’을 통해 심혈관센터로 다시 이송된다. 윤 센터장은 “의료비도 낭비고, 의료 자원도 낭비고, 무엇보다 환자에겐 ‘황금 같은 시간’이 버려지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병원에서 일하는 응급구조사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윤 센터장은 “응급실에서도 전극 붙이는 것까지는 응급구조사가 하되, 실행 버튼은 의사가 와서 누르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며 “환자의 몸에 흐르는 전기신호를 검출할 뿐인 심전도 검사는 응급구조사 자격을 가진 사람이 해도 불법인데, 환자의 몸에 전기 충격을 가하는 ‘위험한’ 제세동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또 윤 센터장은 “응급실 인턴(수련의) 수가 급감하면서 인턴 업무 중 상당 업무가 응급구조사의 업무가 되었다. 그 업무 중 하나가 환자의 비뇨기에 관을 넣어 소변을 배출시키는 ‘도뇨관 삽입’”이라며 “응급구조사들은 적법인지 불법인지 알지도 못한 채 그 일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센터장은 “일방적으로 응급구조사에게 많은 행위를 허용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나라 의료 여건에 맞도록 타당한 업무 범위와 그 업무를 하기 위한 기준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업무 영역의 다툼을 떠나 환자의 편익을 목표로 하자”는 것이다. 윤 센터장은 응급구조사 처치 지침 마련, 교육·수련 과정 확대, 구급차와 현장에 대한 의료 전문가의 개입 확대 등을 제안하며 “그 전에, 환자에게 필요하면서 할 수 있는 행위라면 할 수 있도록 업무 범위부터 조정하는 게 단초”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윤 센터장은 의사 단체, 간호사 단체, 의료기사 단체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아니라, 언제든 응급 상황에 처할 수 있는 사람 중의 하나로서 간청한다”며 “여러분이 소중해하시는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응급구조사가 파트너로서 필요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윤 센터장은 지난 4일 오후 5시50분께 서울 중구 을지로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2층 자신의 사무실에서 의자에 앉아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 원인은 급성 심장마비로 추정된다.(▶관련 기사:응급진료 시스템 구축 앞장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센터장 돌연사)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