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을 비롯한 71개 단체가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낙태죄 위헌 결정과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전국총집중집회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우리나라 만 15∼44살 여성 10명 가운데 7.5명은 인공임신중절을 한 여성과 의료진을 처벌하는 형법 제269조·270조에 대해 개정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만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며, 인공임신중절 처벌로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 노출된다는 이유였다. 임신 경험이 있는 여성 10명 가운데 2명은 임신중절을 한 적이 있으며, 임신중절 수술이 가능한 의료기관이나 비용, 부작용·후유증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고 답했다.
14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보건복지부의 위탁을 받아 진행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18년 9월20일부터 10월30일까지 만 15∼44살 여성 1만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로, 2011년 이후 7년 만에 나온 실태조사다. 2017년 11월 청와대는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 합법화’ 국민청원 참여자가 20만명을 넘자 실태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헌법재판소는 인공임신중절을 한 여성과 의료진을 처벌하는 형법 조항의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이다.
응답자 1만명 중 임신 경험이 있는 여성은 3792명(38%)이었으며 756명이 인공임신중절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전체 임신 경험자의 19.9%였다. 연구진은 이 수치를 토대로 2017년 인공임신중절 건수를 약 5만건으로 추정했는데, 2010년 추정 건수인 16만8738건에 견줘 크게 감소했다. 이소영 보사연 연구위원은 “콘돔 사용률이 2011년 37.5%에서 지난해 74.2%로 높아지는 등 피임률이 상승했고, 응급(사후)피임약 처방 건수 증가와 만 15~44살 여성 인구 감소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인공임신중절에 부정적 시선이 많은 사회 분위기를 고려하면 실제보다 적게 집계됐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정확한 실태 파악을 위해선 처벌을 면하는 조건으로 산부인과 전수조사 등을 고려해봐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인공임신중절을 한 이유(복수 응답)로는 △학업·직장 등 사회활동에 지장 있을 것 같아(33.4%) △경제 형편상 양육이 힘들어(32.9%) △원하지 않거나 터울 조정 등 자녀 계획(31.2%) 등이 꼽혔다. 현재 이러한 사회경제적 요인에 따른 임신중절은 모두 불법이다. 모자보건법은 임신 24주 이내에 우생학적·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강간·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 등 극히 제한적인 사유만 본인·배우자의 동의를 전제로 임신중절을 허용한다. 이런 모자보건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이는 48.9%였다.
임신중절을 한 756명 가운데 수술을 받은 경우는 682명(90.2%), 미프진 등 자연유산 유도약이나 자궁수축 유발 약물 사용자는 74명(9.8%)이었다. 약물을 사용한 74명 중 53명은 의료기관에서 추가 수술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윤정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장은 “현재 미프진 등 약물을 이용한 인공임신중절이 불법이다 보니 음성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약물을 사용하거나 정확한 복용량을 안내받지 못해 건강을 해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이날 “인공임신중절 범죄화로 여성들이 의료기관에 접근하거나 의료정보를 제공받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다”며 “낙태죄 폐지는 임신 중지를 원하는 판단을 그 누구도 심판할 수 없다는 선언일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인공임신중절률을 낮추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박현정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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