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서울시가 청년수당에 대한 정부의 직권취소 조치에 항의하는 대형 펼침막을 서울시청 외벽(왼쪽 사진)에, 정부가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외벽에 정부 입장을 알리는 펼침막을 내걸었다. 김명진 기자 liittleprince@hani.co.kr
최근 서울시가 ‘조건 없는 청년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정책실험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청년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근로능력이 있는 청년을 지원하는 게 맞냐, 무조건 현금을 주는 방식이 적절하냐. 2016년 서울시가 ‘청년수당’ 제도를, 성남시가 만 24살 청년에게 연간 100만원을 지급하는 ‘청년배당’ 제도를 시행한다고 했을 때와 비슷한 논쟁이다. 서울시 청년수당 제도의 성과와 함께 논란이 된 청년기본소득에 대해서도 각각 다른 기사로 짚어본다.
“청년수당을 받은 지난 6개월 내내 집중한 것은 ‘내 안에 작은 아이에게 귀를 기울이기’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했다. 작은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예전부터 꿈꿔왔던 문학인의 꿈을 이뤄봐.’”
황인경(23)씨는 특성화고 3학년인 열아홉살 때부터 회사에 다녔다. 첫번째는 금융회사, 두번째는 유통업체였다. 2년여 쫓기듯 회사에 다녔다. 퇴근하면 지쳐 곯아떨어지기 바쁘다 보니, 꿈이라는 단어는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지난해 3월 회사를 그만뒀다. 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공부할 돈이 없었다. 자발적 퇴사라서 실업급여도 못 받는 처지였다.
그즈음 서울시 청년수당 제도를 알게 됐다. 서울시에 거주하는 만 19~29살 미취업 청년에게 6개월간 월 50만원을 지급하고 심리상담, 진로탐색, 지역별 청년모임 등의 프로그램을 지원해주는 제도다. 신청자를 대상으로 가구소득(60%), 미취업 기간(40%), 부양가족 수(가점 12%) 등을 따져 1차 평가하고 활동계획을 2차 평가해 최종 대상자를 뽑는다. 고용노동부의 청년구직활동지원금 등 일자리에 초점이 맞춰진 기존 정책과 달리, 공부·예술활동·창업 등 청년들의 다양한 사회 진입을 돕기 위해 마련된 정책이다. 황씨 같은 ‘고용안전망 밖 청년’들을 위한 일종의 사회안전망이다.
지난해 황씨를 포함해 모두 6338명이 청년수당을 받았다. 2016년 청년수당 등 청년활동지원사업이 처음 시작된 이후 사업에 참여한 청년은 총 1만3663명이다. 서울시는 3년간 450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서울시에 거주하는 만 20~34살 청년은 210만여명, 이 가운데 미취업 상태인 청년은 50만여명으로 추정된다. 미취업 청년의 2.7%가량이 지원 혜택을 받은 셈이다.
3월이면 황씨는 대학생이 된다. 원하던 문예창작학과에 합격했다. “청년수당을 받아 경제적 여유, 시간의 여유가 생긴 덕분”이다. 청년수당은 글쓰기 공부에 투자했다. 모자라는 생활비는 아르바이트해서 보탰다. 청년수당을 받기 전에 황씨는 ‘실패할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내가 넘어져도 일으켜줄 제도”가 있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청년활동지원사업에 참여했던 청년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2017년 참가자 2002명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참여를 권하겠냐”고 물었더니 응답자의 93.9%가 “권유하겠다”고 답했다. “서울시의 청년수당이 목표 달성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매우 도움’이라는 응답이 64.4%에 달했다. 32.8%는 ‘도움 되는 편’이라고 답했다.
가난한 청년들은 이런 도움이 더 절박했다. 김준석(가명·27)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어머니와 단둘이 산다. 한겨울에도 온기 없는 지하방에 익숙했고, 급식비와 교복값 걱정이 떠나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뒤에 군대를 다녀와 백화점 판매직으로 1년여 일했다. 월 150만원을 벌었지만, 미래가 보이는 일자리는 아니었다. 2017년 일을 그만두고 경찰관 시험 공부를 시작했다. 가난한 형편에 월 50만~60만원 학원비를 내야 하는 노량진 고시학원은 꿈도 못 꿨다. 암 투병 중인 어머니께 손을 벌릴 수도 없었다. 평일에는 혼자 공부하고, 주말에는 편의점, 피시방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몸과 마음도 지쳐갈 때쯤, 친구한테 서울시 청년수당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해 청년수당을 받은 6개월간 김씨의 책상에는 두껍고 비싼 수험서들이, 밥상에는 매일 먹던 라면 대신 밥이 올라왔다. 김씨는 “누군가 말하듯이 청년수당이 술이나 먹고 게임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서, 꿈을 이루기 위해서 너무나도 절실하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소외계층에 복지 비용을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이지, 근로능력 있는 청년들에게 꼭 소득보장제도가 필요하냐는 회의론도 만만찮다. 하지만 20대 청년의 빈곤율은 7%대에 이른다. 학업과 취업 사이의 이행기에 놓여, 돈벌이를 못 하는 청년이 많은 탓이다. 일자리를 찾는 만 30~34살이 되면 빈곤율은 3.7%로 떨어진다. 청년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한 까닭이다. 청년수당 등의 활동지원사업을 위탁 운영하는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 기현주 센터장은 “저소득 청년만을 지원하는 사회부조 형태보다는 미취업 상태라면 누구나 지원받을 수 있는 ‘수당’이라는 제도를 택한 것은 사회 진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낙인’찍힌다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박광수(가명·28)씨는 자신의 서울살이를 ‘궁상 서울라이프’라고 불렀다. 2017년 취업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6개월 만에 직장을 그만뒀다. 아르바이트하며 취업 준비를 계속했지만, 아무리 씀씀이를 줄여도 궁핍했다. 스트레스는 불면증으로 나타났다. 지쳐가던 때에 청년수당을 받게 되었다. 박씨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울에서 점점 조급한 마음이 들던 차에 큰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실제 청년수당을 받은 대상자들이 심리적으로 건강해졌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서울대 교육학과 라수현 박사가 서울시 의뢰를 받아 펴낸 보고서를 보면, 청년수당을 받은 564명 모두 청년수당을 받고 나서 ‘심리·정서 건강성’ 영역의 불안 점수가 유의미하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에 대한 신뢰감도 높아진다. 지난해 2월 심리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이하영(28)씨는 보통의 청년들이 그러하듯,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고, 가장 싼 것들만 골라 의식주를 해결했다. 취업을 못 하니, 정규직이나 안정적인 노후 따위의 미래는 자신의 것이 아닌 듯 느껴졌다. 청년수당을 받은 뒤 이씨는 달라졌다. 청년정책의 대상이 되는 새로운 경험이 자존감 회복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대부분 어떤 복지정책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아동에게는 아동수당, 노인에게는 기초노령연금이 있지만, 청년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사회보장 제도는 없다.
“청년수당은 청년들에게 ‘나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준다. 실제로 청년수당을 받은 많은 청년이 희망을 얻고, 삶의 조력자가 되어줄 사람을 찾고, 나아가 사회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이씨는 청년수당을 받고 난 뒤에 정규직은 아니지만 일자리를 찾았다. 이달 말에는 청년수당으로 받은 돈을 합쳐 ‘조금 더 나은’ 원룸으로 이사할 계획이다.
최근 ‘조건 없는 청년수당’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이하영씨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나는 이렇게 힘들고 불행한데’라는 요즘 청년들의 마음이 청년정책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드러난 것 같아서다. ‘기회의 공정성’ 논란과 젠더 갈등, 결혼과 출산에 대한 거부 등의 사회 현상 역시 청년들의 팍팍한 삶과 무관치 않다. 우리 사회가 바로 지금 ‘청년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황예랑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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