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13일 평양 여명거리 준공식이 끝난 뒤 주민들이 새로 건설된 고층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고 있다. 평양/로이터 연합뉴스
북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뒤에 탈북한 20~30대 청년들에게 “핵무기는 자랑이고 자긍심의 상징”이지만, 이들은 동시에 “대북제재로 인해 굶어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탈북 청년 10명을 인터뷰한 결과다. 북한에서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전후 시기에 태어났거나 유년기를 보낸 세대는 이른바 ‘장마당(시장) 세대’ 또는 ‘8090 세대(1980~1990년대에 태어난 세대)’라고 불린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은 26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열린 ‘2차 통일사회보장세미나’에서 이같은 내용을 담은 ‘도시에 사는 아이들-평양에 사는 8090세대의 생활과 의식’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평양과 남포, 회령 등의 대도시와 국경선 근처 소도시에 거주했던 20~30대 탈북 청년 10명(남성 5명·여성 5명)을 심층인터뷰한 결과를 담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도시의 8090세대에게 핵무기는 “북한을 미국의 위협에서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최후의 보루”와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대북제재로 인해 은행 거래가 차단되고 노동자들이 외국에 파견되는 길도 막히면서 평양에서는 “굶어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위기감이 퍼졌다고 한다. 특히 대북제재는 “부유한 계층이나 가난한 계층보다는 소액의 투자금을 가지고 시장에 투자했던 중간계층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혔다”.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 이후에 장마당(시장)이 확대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8090세대에게 이러한 경제적인 변화는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여졌던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태어난 이른바 ‘장마당 세대’는 부모와 함께 어린 시절에 경제적 궁핍기를 겪었고, 성인이 된 그들 앞에는 자본주의 사회와 별다를 바 없는 ‘시장’이 놓여 있다. 이들은 시장에서 다양한 인생 경험을 한다. 김은주 소장은 “8090세대에게 북한의 현실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사이 어디쯤에 자리잡고 있는 듯 하다”고 해석했다. 배급제의 붕괴, 시장의 등장 등은 북한 주민들에게도 자본주의 분배 매커니즘인 ‘시장’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는 인식을 자리잡게 했다는 것이다. 현재 북한에는 약 500여 곳의 공식 시장이 존재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이들의 태도는 매우 호의적이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일화’ 또는 ‘미화’ 정치 덕분인지 북한 주민들에게 “따뜻하고 포용적이고 믿음직한 지도자”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고 한다. 인터뷰에 참여한 청년들은 김정은의 ‘공포 정치’에 대해서는 “권력층을 대상으로 한 것일 뿐 북한 주민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며 “(친인척들이) 김정은의 권력을 위협하기 때문에 불가피한 행동이었다”고 옹호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김은주 소장은 “(청년들은) 북한이 독재 국가이기는 하지만 비정상국가는 아니라고 항변한다. 북한의 대주민 상호 감시 시스템은 외부세계에서는 비정상적으로 보일 수는 있으나 북한 주민들에게는 정상적이며 완벽하다. 따라서 북한 사회 내부에서의 변화는 불가능하며, 오직 유일한 변화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예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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