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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임정 주춧돌 조소앙…조부님 재평가 위해 생업 접었죠”

등록 2019-03-03 19:32수정 2019-03-05 16:50

【짬】 조소앙선생기념사업회 조인래 사무총장

조인래 조소앙선생 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조인래 조소앙선생 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2017년 12월 19일. 독립운동가 조소앙(본명 용은·1887~1958) 선생의 공적을 기리는 기념사업회가 창립한 날이다. 한국전쟁 때 납북된 소앙 선생이 서거한 지 59년 만이었다. 소앙의 묘는 현재 평양 애국열사릉에 있다. 조소앙선생기념사업회는 지난 1월 사단법인 등록도 했다. 이 단체 사무총장 조인래씨는 “우리 가족은 한이 많다”고 했다. 소앙 일가는 모두 14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했다. 소앙은 6남 1녀 중 둘째인데, 이 가운데 여섯이 서훈을 받았다. 아내와 두 아들도 유공자다. 조 총장은 소앙의 두 번째 동생인 조용한(90년 서훈) 선생의 손자다.

사업회는 최근 3·1운동 100돌을 맞아 소앙이 기초한 대한독립선언서(1919년 2월) 육필 초고를 공개했다. 만주와 러시아 지역 독립운동가 39명이 중국 동북부 지린성에서 발표한 이 선언서는 이후 2·8독립선언서와 3·1독립선언서에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사업회 사무실에서 조 총장을 만났다.

“할아버지(소앙)는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설립 때 임정 헌장을 기초하셨어요. 대한민국 국호도 명명하셨죠. 조부 자전에 그렇게 나와요. 제헌헌법의 토대가 된 임시정부 건국강령(1941)도 작성하셨죠. 또 오랫동안 임정 외교를 총괄하셨어요. 임정의 초석을 만들고 다듬은 분이죠. 이런 업적에 비하면 저평가를 받고 있어요.” 가장 큰 한은 성묘를 못 하는 것이란다. “올해 94살인 숙모(소앙의 둘째 며느리)가 성묘를 원하는 데 들어드리기 쉽지 않아요. 가능하다면 제가 업고라도 갈 겁니다. 몸이 많이 편찮으세요.”

소앙은 임정의 최고 이론가로 꼽힌다. 임정 이름의 문건 상당수가 그의 손을 거쳤다. 그가 창안한 평등주의 사상인 삼균주의는 임정의 기본 정치 이념이었다. 삼균주의는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사이의 완전 균등을 주장하며 그 방도로 보통선거·국유제·국비 의무학제·민족자결 등을 내걸었다. 이 사상은 1930년대 이후 좌·우파 독립운동 진영을 묶는 접착제 구실도 했다.

소앙은 그의 큰 조부다. 그가 사업회를 이끄는 이유가 궁금했다. “(소앙) 직계로 현재 손녀 세 분이 계십니다. 모두 조용한 성품이죠. 저는 홍익대 도안과를 다니던 21살 때부터 삼균학회를 드나들며 심부름을 했어요. 후손 중에 집안의 독립운동 역사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죠.”

경기도 양주에 소앙기념관이 들어선 3년 전부터 생업을 접고 기념사업에 전념하고 있단다. “대학을 나와 광고대행사도 다녔고 회사를 차려 페트병 디자인도 했죠. 국내 페트병의 70% 정도는 제가 디자인했어요. 삼균학회 정비도 시급하고 기념사업회도 해야 할 것 같아 회사 문을 닫았죠.”

소앙 일가 14명 독립유공자 서훈
소앙 동생의 손자로 기념사업 주도
‘대동선언 100년’ 맞아 재작년 시작
최근 대한독립선언서 초고 공개

“조부 기초 건국강령 지금보다 앞서
북에 있는 산소 성묘길 열렸으면”

2년 전 기념사업회 창립은 소앙이 기초한 ‘대동단결선언’ 100년 기념식도 겸했다. 박은식, 신채호, 조소앙 등 독립운동가 14명은 1917년 상해에서 민족대회의의 소집을 제안하는 대동단결선언을 했다. 국민주권론을 앞세운 이 선언은 임시정부의 필요성을 제시한 최초 문건이란 평이다.

“2017년 8·15 행사 때 문 대통령이 대동선언을 거론하더군요. 속으로 ‘저분 대단하다. 역사인식이 남다르다’는 생각을 했죠. 그해가 가기 전에 제가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과 의논해 100주년 행사를 준비했죠. 기념식을 치른 12월 19일은 임정 요인 환국 때 환영대회가 열린 날입니다.”

문화재청은 지난 1월 소앙이 쓴 임정 건국강령 초안을 문화재 740호로 등록 예고했다. 소앙이 직접 쓴 그 숱한 독립운동 자료들은 잘 있을까? “양주시가 관리하는 회암사지 박물관에서 위탁 보관하고 있어요. 807종 4만쪽 정도의 분량이죠. 2년 전에 문화재청에서 전수 조사를 했어요. 일괄해 문화재 지정도 검토했으나 우선 급한 것부터 하기로 했죠. 건국강령 다음으론 조부가 20년대 초부터 양지에 쓴 삼균주의 메모의 문화재 지정을 준비하고 있어요.”

해방 뒤 회갑을 맞아 조소앙(왼쪽) 선생이 부인 오영선(오른쪽) 지사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1919년에서 48년까지 우리 헌법사는 조소앙의 절대적 영향 아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우철 중앙대 로스쿨 교수는 한 논문에서 유진오가 1948년 제헌헌법 초안을 만들 때 참고한 10종의 문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소앙이 단독·공동으로 직접 작성하거나 작성에 간접적으로 연관된 것들이라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조소앙이 자신을 국호 명명론자라고 한 것을 두고는 소앙은 대한독립선언서(1919년 2월)에서 “아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선포”한다며 ‘대한’을 국호로 택했다면서, 소앙은 국호 명명자의 영예를 최소한 공동으로 누릴 자격이 충분하다고 썼다. 1919년 4월 10일 임시의정원 기사록을 보면 대한민국 국호는 신석우의 동의에 이영근의 재청으로 가결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사진 조인래 총장 제공
해방 뒤 회갑을 맞아 조소앙(왼쪽) 선생이 부인 오영선(오른쪽) 지사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1919년에서 48년까지 우리 헌법사는 조소앙의 절대적 영향 아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우철 중앙대 로스쿨 교수는 한 논문에서 유진오가 1948년 제헌헌법 초안을 만들 때 참고한 10종의 문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소앙이 단독·공동으로 직접 작성하거나 작성에 간접적으로 연관된 것들이라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조소앙이 자신을 국호 명명론자라고 한 것을 두고는 소앙은 대한독립선언서(1919년 2월)에서 “아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선포”한다며 ‘대한’을 국호로 택했다면서, 소앙은 국호 명명자의 영예를 최소한 공동으로 누릴 자격이 충분하다고 썼다. 1919년 4월 10일 임시의정원 기사록을 보면 대한민국 국호는 신석우의 동의에 이영근의 재청으로 가결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사진 조인래 총장 제공

조소앙 선생의 부친 조정규·모친 박필양 선생. “일제 강점기 때 증조부(조정규)께서 가족을 이끌고 중국으로 가셨어요. 상하이로 가려고 했는데 가지 못하고 항저우로 가셨죠.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자녀들의 정신적 지주 노릇을 하셨어요. 이번 광복절에 자료를 모아 서훈 신청을 할 계획입니다.”(조인래 사무총장)
조소앙 선생의 부친 조정규·모친 박필양 선생. “일제 강점기 때 증조부(조정규)께서 가족을 이끌고 중국으로 가셨어요. 상하이로 가려고 했는데 가지 못하고 항저우로 가셨죠.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자녀들의 정신적 지주 노릇을 하셨어요. 이번 광복절에 자료를 모아 서훈 신청을 할 계획입니다.”(조인래 사무총장)

한지와 달리 양지는 쉽게 바스러진다면서 자료 훼손을 막기 위해 문화재 당국에서 적극 관심을 기울였으면 했다. “한국전쟁 때도 후손들이 조부 자료를 챙겨 양주로 피난 갔어요.” 이런 보존 노력에도 자료들이 손을 많이 탔단다. “1979년 전집을 만들 때도 자료 회수가 잘 안 돼 편찬을 맡았던 노산 이은상 선생이 펜을 집어 던지며 화를 내셨다고 해요. 대한독립선언서도 초고 5장 가운데 앞 1~2장이 없어요.”

자료 해제 작업도 곧 시작한단다. “시대나 연도별로 또 임시정부와 군, 외교, 개인 저술, 신문 스크랩 등으로 나눠 해제하려고 합니다. 요즘 안 쓰는 한자나 초서체가 많아 전문 학자들의 참여가 필요하죠. 자료 데이터베이스 목록은 제가 90년대 말에 만들어 스캔 작업도 해놓았어요.”

대한독립선언서엔 ‘일가를 희생하라’ ‘육탄 혈전으로 독립을 완성할 것’이란 내용이 나온다. 조 총장의 마음을 가장 격동시키는 문구다. “자신의 일가를 희생시키려 하지 않고 어찌 남의 희생을 말할 수 있었을까요. 할아버지 자신이 실천하셨죠. 서훈 받은 일가 14분 가운데 5분만 한국에서 돌아가셨어요.” 그는 소앙이 해방 뒤 처음으로 대국민 사과를 한 임정 요인이었다는 점도 짚었다. “해방 뒤 첫 3·1운동 기념식에서 ‘나의 독립군을 앞세워 일본 총독의 목을 베어 남산 소나무에 걸어 놓고 돌아오고 싶었다. (동포의) 부모 자매 형제들을 사지로 내몬 것에 대해 사죄하고 위로한다. 민주독립을 성공하지 못하면 나를 불태워 죽여달라’고 하셨죠.”

1945년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을 앞두고 찍은 사진. 김구(앞줄 왼쪽 네번째) 선생 오른쪽 뒤로 조소앙 선생이 보인다. 조인래 사무총장 제공
1945년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을 앞두고 찍은 사진. 김구(앞줄 왼쪽 네번째) 선생 오른쪽 뒤로 조소앙 선생이 보인다. 조인래 사무총장 제공

조소앙 선생의 후손이 보관하고 있는 ‘대한민국 임시헌법’ 육필 자료. 조인래 사무총장 제공
조소앙 선생의 후손이 보관하고 있는 ‘대한민국 임시헌법’ 육필 자료. 조인래 사무총장 제공

조소앙 선생이 1920년대 초 기록한 삼균주의 메모. 조인래 총장 제공
조소앙 선생이 1920년대 초 기록한 삼균주의 메모. 조인래 총장 제공

소앙 삼균사상의 현재적 의미는? “그간 삼균 사상을 주제로 한 석·박사 논문이 700건 가까이 됩니다. 지난해만 서강대 대학원생 다섯이 삼균주의와 민주공화정을 주제로 논문을 썼더라고요. 해방 공간에 정당 90개가 난립했어요. 이 중 상당히 많은 정당이 삼균주의를 내걸었어요. 삼균주의는 기회균등을 말했죠. 하지만 지금도 실현이 되지 않고 있어요. 삼균주의를 토대로 한 건국강령이 지금보다 더 앞서 있었죠. 진보적이죠. 정치인들이 건국강령을 읽어봐야 합니다.”

계획을 물었다. “오는 7월께 서울시와 함께 ‘임정 27년과 조소앙’ 혹은 ‘민주공화정과 조소앙’이란 주제로 전시회를 열려고 합니다.” 내년엔 윤봉길 등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함께 독립운동가를 알리는 토크 행사를 정례적으로 열 생각이란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하려고 합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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