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화력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숨진 곳에서 동료 노동자가 고착탄을 제거하는 모습을 재연하고 있다.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제공.
64살 ㄱ씨는 지난해 12월11일의 기억이 아직 또렷하다. 사라진 동료를 찾다가 기계에 끼어 숨져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몸은 두 동강이 나 있었다. 그래도 죽었을 리 없다고 생각하고 맥박을 짚었지만, 뛰지 않았다. 그래도 믿기지 않아 옷을 들춰보고, 이 일이 진짜 발생한 건지 확인했다. 마침내 죽음을 인정하게 된 순간, 분노가 치밀어올랐다고 했다. “처음 발생한 트라우마가 분노였어요. 박탈감이었어요.”
ㄱ씨는 충남 태안 서부발전에서 숨진 고 김용균씨 사고 현장을 최초로 목격한 이다. 그는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비상구 표지판을 봐도 가슴이 답답하고 손에 땀이 난다. 표지판 속 사람 형상 픽토그램이 분리된 걸 보면, 그때 본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사각으로 된 표지판 테두리까지, 화력발전소 점검구 안에 시신처럼 보인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이후로 일할 때 화력발전소 점검구를 들여다볼 생각도 하지 못한다. 귀에는 윙윙 소리가 난다고 했다. 김씨 장례식장 영정 앞에서 잠들 때 그 소리는 비로소 멈췄다. 한때 베란다 창문 너머로는 시커먼 것이 보이기도 했다. 불을 끄고 잠들지 못했다. 어디든 방안으로 들어가면 폐회로(CC)텔레비전이 있는지 확인한다. 최초 목격자라는 이유로 경찰서 취조실로 끌려가 사고가 일어난 다음 날 4시간 동안 취조를 받은 기억 때문이다. “최초 목격자라며 경찰서 취조실에서 장시간 계속 취조당하니까. 지금도 그게 뚜렷해서….”
그를 진찰하는 정신과 의사는 “용균이로부터 빨리 멀어져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아직 안 끝났어요.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내가 많이 아프죠. 여기를 빨리 벗어나야 하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미안하다는 생각에 주기적으로 용균이에게 찾아가고 보려고. 그게… 미안함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일 수 있으니까요.”
ㄱ씨 뿐만 아니다. 사고 석달이 지나고 장례까지 치렀지만, 고 김용균씨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여전히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다. 분노조절 장애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직접 사고 현장을 보지 못한 동료들도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김용균씨와 동년배인 한 노동자는 자신이 김용균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한동안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고 한다.
한국발전기술 노동자 고 김용균씨의 동료 ㄱ씨가 7일 국회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 ㄱ씨는 사고와 관련된 것들을 멀리하라는 의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김용균씨가 그려진 배지에 보라색 리본과 노란색 리본을 걸어 옷에 부착했다. 이정규 기자.
7일 오전 10시 국회 의원회관에서 ‘사고를 경험한 노동자의 트라우마는 어떻게 극복되는가-태안화력 트라우마 위기 대응 경과와 향후 과제를 중심으로-’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와 김용균의 시신을 처음으로 목격한 ㄱ씨, 사고 이후 트라우마를 겪는 다른 2명의 동료 등이 자리했다. 각계 트라우마 전문가가 모여 태안 서부발전 사고 이후 트라우마 상황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재해로 인한 트라우마 피해 사례와 대책 등을 공유했다.
대구근로자건강센터는 김용균씨가 소속됐던 서부발전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 직원 151명과 또 다른 하청업체 직원 8명을 대상으로 트라우마 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 결과 김씨의 동료 4명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게 됐다. 1명은 산재 신청을 했다. 대구근로자건강센터가 밝힌 한국발전기술 직원들이 겪는 외상후 스트레스(PTSD) 반응은 △사고 반복 가능성으로 인한 불안감 △열악한 노동조건·불충분한 회사 대응에 대한 분노 △동료에게 벌어진 사고에 대한 안타까움 △열악한 노동조건이 공개되면서 자신의 경제적 무능력이 드러나게 되는 수치감 △생각하고 싶지 않고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회피적 태도 등이 있었다. 몇몇은 사고장면이 떠오르고, 사건 처리 과정에서 조사를 받으며 불안감이 생겨 수면 장애를 겪기도 한다고 했다.
센터는 상담 전문가의 제안으로 사건 현장 초기에는 사건 현장과 사건을 연상시키는 사람과 장소 등과 떨어져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후에는 노동자에게 휴가를 제공하고, 상담을 받게 하고, 기존 업무에서 재배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선희 대구근로자건강센터 부센터장은 “심리적인 문제가 치유되지 않았을 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흔적으로 남는다”며 “그 흔적이 남는 사람들은 일도 못 하고 가정생활도 파탄이 난다. 정신질환으로 평생 고통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2차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산업재해 트라우마 관리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 직업적 트라우마를 관리하도록 시범운영 사업을 하는 곳은 대구근로자건강센터가 운영하는 직업트라우마 전문상담센터인 ‘마음쓰담’ 한 곳뿐이다.
류현철 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은 “(트라우마를 겪는 노동자에게는) 사회적 지지 결여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라며 “(그들은) 자기가 심리상담과 같은 도움을 받을 거란 생각도 못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동료의 산재를 본 노동자들은)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왜 내가 그날 일하자고 했는지 이런 죄책감이 있다”며 “오히려 나는 괜찮은데 다른 노동자들이 어떡하냐하고 더 걱정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하효열 심리치유네트워크 통통톡 운영위원장은 “사회적 지지의 출발점은 사용자”라며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의 트라우마와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인정하지 못한다면, 강제력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병권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 산업보건과 사무관은 “지금 전국에 전문트라우마센터는 1개이다. 대구에서 전국을 맡고 있다”며 “기획재정부에 센터 3개를 지어야 한다고 예산을 올렸지만 반영이 안 됐다. 올해도 연말에 전문트라우마센터를 3개까지 설치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ㄱ씨는 토론회가 끝나고 <한겨레>와 따로 만나 “토론회에서 말씀을 다 못 드려서 서운함이 있다”며 힘겹게 입을 땠다. 그는 “산재 사건이 발생하면
계속 최초 발견자를 부르는 대신 전문가들이 최초 발견자에게 설명을 듣고 진술을 대신 해줬으면 좋겠다”며 “목격자를 취조하는 경찰 입장도 이해는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가혹하게 참고인을 조사하게 된다. 변호사나 상담사가 최초 목격자와 함께 바로 투입되어서
지킴이를 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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