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는 이보배(2)양. 어머니 천새롬씨 제공
올해 두살 된 이보배양은 평일에 재활병원에 다니고, 2주에 한번 대형병원에 외래 진료를 다닌다. 보배의 심장 구조는 거울에 비친 듯 거꾸로 뒤집혀 있다. 우심실은 미처 완성되지 못해 제구실을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머리까지 깨끗한 피가 전달되지 않아 뇌가 자라지 않고 있다. 보배의 엄마 천새롬(27)씨는 7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수술은 5번, 시술은 수도 없이 받았을 정도로 중증의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다”며 “최종 수술을 할 적당한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고어사가 인공혈관 공급을 중단했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야 알았다”고 말했다. 천씨는 “아이의 뇌에 깨끗한 피가 흘러가지 않아 뇌 손상, 발달장애, 간질 등이 악화하고 있다. 절박하다”고 했다. “나라에서 대책을 마련한다고 했는데 2년 동안 뭘 했나 싶다”는 원망도 했다.
아이들의 선천성 심장병 수술에 사용되는 인공혈관을 독점 생산하는 ‘고어’(Gore)사 의료사업부가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 지 2년 만에 재고마저 바닥나 국내 대형병원에서 더는 수술을 하지 못하는 사태(
▶관련 기사 : “인공혈관 수가 낮다”며 ‘고어’ 철수…3살 민규의 위태로운 생명)가 알려지면서, 시급한 환아들의 수술에 필요한 인공혈관을 공급할 방법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회원수 1만5165명인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카페에는 환아 부모들의 우려가 속속 올라오고 있다. 경북 지역에서 투병중이라는 한 환아 엄마는 “2년 전 고어사 철수 때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지만, 막상 닥치니까 두렵다”며 “아이들에게 더 이상 고통을 주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함께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했다. 충남 지역에서 투병하고 있다는 또 다른 환아 엄마도 “우리 아이는 이미 두 번의 심장 수술을 받았지만 아직도 폰탄(Fontan) 수술이 남아 있고, 그 후에도 몇번의 수술을 더 받아야할지 모른다”며 “적기에 수술을 받지 못하면 당장 급사하여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 아이들인데, 곧 내 아이에게도 다가 올 시간인데, 저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만 난다”는 글을 올렸다. 환우회 안상호 대표가 조만간 서울시 중구 고어코리아 본사 앞에서 진행할 집회 참가를 호소하는 글을 올리자 50명의 환아 부모와 환아 등이 집회 참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환우회와 전문가,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현재 거론되는 대안은 두가지 정도다. 첫번째 해법은 국내 병원 간에 인공혈관을 주고받는 것이다. 인공혈관이 바닥났을 때 재고가 있는 다른 병원에서 우선 가져다 쓰는 방식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당장 수술이 급한 병원에 인공혈관 등의 치료재료를 공유할 수 있게끔 의료기관에 협조 요청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체 병원의 재고가 부족해 이 대안은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우회 안상호 대표는 “대부분의 병원이 인공혈관이 넉넉하지 않아 다른 병원에 의료기기를 내어주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태윤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이사장도 “어디까지나 임시 대책”이라며 “이대로 가다가는 서울보다 수술이 적은 지방 병원도 사정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인공혈관을 대신 구매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산하기관과 같은 정부 소속 기관에서 일종의 ‘해외 직구’를 하자는 얘기다. 식약처 관계자는 “식약처 산하의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에서 인공혈관과 같은 희소한 치료재료를 사올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 오는 6월에 시행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방법도 실현이 가능할지 알 수 없다. 식약처의 다른 관계자는 “고어사와 이야기가 돼야 일을 진행하는데 거의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어 어려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환우회 등 환자단체와 전문가들은 결국 고어사가 한국 시장에 인공혈관 공급을 재개하는 게 가장 확실한 해법이라고 강조한다. 안 대표는 “고어사의 인공혈관을 대신할 만한 게 없는 상태에서 언제까지 ‘언 발에 오줌 누기’만 계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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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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