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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100년 만에 찾은 증조부 ‘독립투사 마춘걸’ 자랑스러워요”

등록 2019-03-10 18:56수정 2019-03-12 14:18

[짬]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유스베틀라나 이고레브나

독립운동가 마춘걸의 증손녀 유스베틀라나가 지난달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독립운동가 마춘걸의 증손녀 유스베틀라나가 지난달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내 아이들이 조상의 땅, 진짜 고향인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유스베틀라나 이고레브나(36)는 지난 2010년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왔다. 수많은 ‘고려인’들이 그렇듯, 그도 일자리를 얻기 위해 취업 비자를 받았다. 하지만 처음 한국땅을 밟을 때까지 그는 자신이 목숨으로 나라를 지킨 청년 독립군의 증손녀라는 사실은 잘 몰랐다. 지난달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유스베틀라나는 “증조할아버지가 군인이었고, 독립투사였다는 정도만 할머니, 할아버지에게서 들어 알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2010년 취업비자로 입국해 결혼·정착
3년 전 정부 광고 보고 ‘뿌리찾기’
“증조모한테 들었던 기억 더듬어”

1921년 대한의용군 소대장 마춘걸
일본군과 동맹 ‘러시아 백위군’ 맞서
‘이만 전투’ 최후 생존자…간첩 누명으로 처형
3·1절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받아

1921년 대한의용군 2중대 소대장이자 ‘이만 전투’ 생존자인 마춘걸. 독립기념관 제공
1921년 대한의용군 2중대 소대장이자 ‘이만 전투’ 생존자인 마춘걸. 독립기념관 제공
조선의 청년 독립군 마춘걸. 1902년 경성에서 태어난 그는 러시아의 이만(현재 달네렌첸스크)에서 한인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가 살벌했던 ‘이만전투’에 참가했던 1921년은 조선반도를 점령한 일제가 내친김에 시베리아까지 출병해 소비에트 적위군과 전쟁을 하던 때였다. 러시아혁명 ‘간섭군’으로 1918년 에 파병했던 미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은 1920년 초 이미 철수했지만, 일본군만은 남아 전쟁을 계속한 것이다. 혁명에 반발해 내전을 일으킨 러시아의 백위군은 일본군의 동맹군이었기에, 마춘걸을 비롯한 조선인에게 백위군은 ‘왜적의 동지’였다.

유스베틀라나는 약 3년 전 우연히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찾는다’는 정부 광고를 봤다고 했다. 어려서 들은 ‘투사 마춘걸’이 떠올랐다. 국내 고려인들을 지원하는 단체인 ‘고려인너머’에 “마춘걸이 증조할아버지”라는 사실을 알렸다. 큰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기록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전화를 걸어 묻고 또 물었고, <사진으로 본 러시아 한인의 항일 독립운동 1910~1945>을 펴낸 최발렌티노비치 선생님이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내용을 모스크바에서 보내주는 등 도움을 줬다”며 “간신히 수집한 조각 정보를 모아보니 ‘그림’이 나왔다”고 말했다. 최발렌티노비치는 1910년대 연해주 한인 독립운동 지도자 최재형 선생의 손자다.

‘그림’은 치열했고, 또 처참했다. 유스베틀라나의 설명과 윤상원 전북대 교수(사학과)의 2009년 논문 ‘러시아 지역 한인의 항일무장투쟁연구(1918-1922)’를 종합해보면, 마춘걸은 1921년 한운용 중대장이 이끄는 대한의용군 2중대 소속 소대장이었다. ‘군비단’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대한의용군은 상하이 임시정부와 연계돼 간도에서 활동하던 독립군이 연해주로 옮겨간 뒤, 최초의 조선인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 계열 인사들을 만나 확대·개편된 독립군 부대다. 마춘걸은 지역 청년·학생들과 함께 대한의용군에 가세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만은 극동공화국과 백군 정부 사이의 접경 지대이자, 강 하나만 건너면 일본군 최후의 거점 지역이 나오는 치열한 전투지였다.

1921년 12월5일 정오께 포연이 가득한 이만 시가지. 밤새 대포와 기관총 포격, 극한의 추위를 버텨 낸 대한의용군 2중대 50명이 백위군 1500명에 포위됐다. 승산이 없었고, 전장에 함께 나선 러시아 적위군 30명 중 절반이 항복했다. 그러나 조선의 독립군들은 총알이 떨어진 뒤에도 백위군과 백병전으로 맞섰다. 일본 정보당국이 1922년 작성한 문서를 보면, 당시 백위군은 대한의용군 부대원들을 ”총검으로 난자하여 살해하고 혹은 개머리판 등으로 쳐서 죽이는 등 참학이 극에 달해서 안면 등은 형체도 없었다”고 했다.

1921년 12월 러시아 ‘이만 전투’에서 순국한 대한의용군 제2중대 강위, 박홍 소대장의 주검을 이듬해 4월 눈 속에서 찾아내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 다큐사진가 류은규씨 제공
1921년 12월 러시아 ‘이만 전투’에서 순국한 대한의용군 제2중대 강위, 박홍 소대장의 주검을 이듬해 4월 눈 속에서 찾아내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 다큐사진가 류은규씨 제공
한운용 중대장을 비롯해 47명이 죽고 3명이 생존했다. 김치율·김덕현, 그리고 마춘걸은 18군데나 찔린 채로 시쳇더미 속에 누워있다가 극적으로 탈출했다. 그해 12월28일 소비에트 인민혁명군이 이만을 탈환한 뒤, 대한의용군은 50명을 다시 보내 현지 한인들이 눈 속에 임시로 매장해 둔 전사자들의 주검을 찾아내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마춘걸은 그러나 해방을 보지 못한 채 36살 젊은 나이에 순국했다. 스탈린 체제의 소련은 그를 간첩 혐의로 체포했고 1938년 1월13일 법정최고형을 선고한 뒤 5일 만에 처형했다. 부인 마신헌도 같은 혐의로 ‘10년 중형노동형’을 받고 노동수용소 ‘굴라그’로 보내졌다.

13살·6살, 두 자녀는 헤어져 각각 다른 고려인 가정에서 자랐다. 유스베틀라나는 “두 자녀는 양아버지와 다른 고려인들의 도움으로, 10년 넘게 지나서야 엄마를 다시 만났다고 들었다”고 했다.

유스베틀라나의 할머니 마소피야(1925년생)가 바로 마춘걸·마신헌 부부의 딸로, 그의 부친 유이고리 마트예비치(1955년생)를 낳았다. 우즈베키스탄 출신인 그가 러시아 정부로부터 부모·조부모·증조부모의 출생증명서나 결혼증명서들을 받는 데에는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는 “증조할머니께서 우리와 가까운 곳에 살았는데 예전 이야기를 꺼렸다. 너무나도 힘든 기억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증조부에 대해 더 많이 물어봤어야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마춘걸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지난달 26일 국가보훈처로부터 4등급 건국훈장인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러시아는 이미 1957년 그의 간첩 혐의를 취소하고 복권했지만, 조국에서는 무려 81면이나 걸렸다. 그 증손녀는 아직 국가보훈처의 후손 인정을 기다리고 있다.

유스베틀라나는 한국에 일하러 온 고려인과 결혼해 경기도 남양주에서 살고 있다. 그는 “나의 증조할아버지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이곳을 떠나고 그 뒤에 몇대를 지나 후세가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거의 100년이 걸렸다”며 “나의 증조할아버지가 용감한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 그리고 내 아이들이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기쁘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유학생들이 만드는 <연해주뉴스> 기자단의 통번역 등에 힘입어 작성되었습니다.

최하얀 기자, <연해주뉴스> 기자단 chy@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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